실화 너의아버지의 나라는한국38 제49장 내친구(장광이) 49장 내 친구(장광이) 우리가 피난에서 돌아오니 피난 가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또 죽은 사람, 이북으로 간사람 들로 서울은 인구가 반도 차지 않았다. 희문학교는 그때까지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희문학교는 임시로 세종로 뒤에 있는 여자 중 고등학교에 입주하여 수업이 시작되었다. 교실엔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중에 나이가 많은 키도 크고 덩치도 큰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이장광! 장광이를 중심으로 그룹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전에도 낙제하였다고 하였고 매일 뒤에 앉아서 흐흐흐 하고 아이들을 못살게 굴었다. 힘 못쓰고 약한 애들은 대항할 염두도 못 내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시간이 닥치면 선생님은 책상을 간격을 주어 일 열로 앉게 하였다. 영어시험을 보는 시간이었다. 장광.. 2023. 2. 8. 제48장 새야새야 파랑새야 (작은누나) 48장 새야 새야 파랑새야(작은누나) 작은 누나 큰누나가 시집을 간 후에 작은누나가 집안 살림을 도왔다. 누나는 어여쁜 모습이 어머니의 젊은 때와 같았다고 하였다. 원산에 있을 때 누나는 한 청년을 사랑하였다. 청년은 가끔 뒷담에서 고개를 내밀고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나를 불러내었다. “얘야! 누나 좀 불러줘.” 나는 방에 뛰어 들어가 손짓으로 누나를 놀라게 하였다. 이 청년은 남쪽에서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가는 길에 원산에서 몇 달 머무는 동안, 누나와 눈이 마주치고 첫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누나에게도 그 청년은 첫사랑 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청년은 아버지를 찾아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내가 자네 신분을 어찌 믿는단 말 인가? 더구나 독립운동을 합네 하고 떠도는 자에게 .. 2023. 2. 7. 제46장 오서방 이야기 46장 오 서방 이야기 이 서방이 북으로 떠난 뒤 침울하던 오 서방도 세월이 흐르자 나아졌다. 나와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갔고 학교가 끝날 시간이면 학교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한 사투리를 쓰는 우리 형제는,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아이들이 우하고 둘러싸고 우리 어머니의 이북사투리를 그대로 히히거리며 흉내고 돌아다녔다. "넷째랑 선평이랑 밥 먹어 랑! 먹어 랑! 랑! 랑! 랑! 랭-!" 경호 녀석이 집적거리면 다른 아이들도 놀리고 발길로 차고 때리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가 맞고 울고 돌아오자, 오 서방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때부터 절대적으로 막아주려고 결심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별 탈 없이 학교를 다녔다. 오 서방은 혼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였고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손을 대.. 2023. 2. 6. 제44장 14후퇴 피난길에서 생긴일 44장 1 4후퇴 피난길에 생긴 일(1951년) 중공군이 내려오니 서울은 피난길로 난리가 되었다. 아버지는 식구들이 타고 갈 트럭을 빌려 왔다. 남으로 피난을 가는데 용산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사방에서 밀려들어 길을 꽉 메웠다. 인정 사정도 없이 사람들이 우리 트럭위로 올라탔다. 사람들이 잡아 댕기고 올라타는 바람에 나는 힘을 다했으나 트럭에서 홀라당 떨어지고 말았다. 어머니 어머니하고 울면서 매달려도 다시 올라탈 수가 없었다. 어린 심정에 가방에 든 은수저를 꼭 잡고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도저히 저 차를 올라탈 수가 없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차라리 집으로 가자 . 나는 온몸으로 사람들을 헤집고 나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과 부딪치며 반대로 걸어가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 힘을 .. 2023. 2. 5. 이전 1 ···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