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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너의아버지의 나라는한국38

제67장 아버지의 유언 67장 아버지의 유언 아버지의 임종을 치르고 내가 다시 떠나려고 하자 동생과 격 한 싸움에 지친 형은 나를 밖으로 불러내었다. 집 근처에 있는 다방에 마주 앉았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형은 한의사는 거의 접다 시피하고 술로 건강을 잃고 있었다. "선평아! 나는 술과 안정제 없이는 이젠 살 수가 없다. 네가 집안 일을 맡아서 해주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아버지가 재산을 다 네 이름으로 해 놓았다고 괴롭혀서 미안하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술만 먹는 자식에게 어떤 아버지가 재산을 맡기겠느냐. 형은 괴로움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 아버지가 변호사를 불러 재산을 정리한일, 나는 아버지 곁에 있었어도 모르는 일이 있었다. 재산이 전부 내 앞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어머니와 형으로 부터 .. 2023. 2. 19.
제64장 이별 64장 이별 그렇다. 내가 선택한 처음 직업은 구두끈을 잘 매고 하루 종일 약을 설명하기 위하여 뛰어다니는 직업이었다. 주로 만나는 사람은 의사, 취미와 성격 생일과 결혼한 날 까지도 미리 파악하여 접근해야만 했다. 세일즈맨으로 교육받는 과정에서도 많은 사회생활을 배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세일즈 맨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데는 몇 달도 걸리지 않았다. 배우지 못했던 술! 내 몸속에서는 술이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루는 이 술 때문에 나는 골목에 그대로 쓰러져 누워 있었다. 응급실로 죽음의 입구에 까지 갔다 왔다. "사람이 살려고 돈을 버는 것인데 술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일즈맨을 접고 광일제약 약사로 취직하였다, 그때 한참 가로수가 죽어가든 때 단졸 크.. 2023. 2. 18.
제61장 그 시대의 젊은이들(1960년) 61장 그 시대의 젊은이들 (1960년) 젊은이들 사이에 미국바람이 불고 있었다. 미군들이 가져온 물자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보이지 않는 그 마력에 이끌려 미제라면 무엇이든 선호되었고 야미시장이 활기를 띠었다. 미군기지 피엑스에서 나온 물건들이 장사꾼 손에 넘어갔고 이런 물건들이 쉬쉬하며 돈을 벌었다. 또 한편에서는 미제품 반대 운동도 벌어져 아까운 물건들을 한강 백사장에서 불태우는 것도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래도 여자들은 화장품과 스타킹, 비싼 옷들을 사 입고 자랑스럽게 활보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품이 교회를 통하여 들어왔다. 새로운 물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람들은 미국을 별천지의 나라로 선호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시대의 희생양으로 이름 붙여진 양공주, 양색시들이 미군과 결.. 2023. 2. 17.
제59장 족보 이야기 59장 족보이야기 특히 고향을 떠난 이민자에겐 후세에게 자신의 족보를 알려주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한국이란 땅에서 시작되어 멀고 먼 캐나다까지 어떻게 흘러오게 되었는지? 아이들에게 조상의 뿌리를 알려주고 미래에 희망을 주는 그런 것이기에, 그족보의 번역판이 완성되어 캐나다에 도착하였을 때 나는 설레는 심정으로 족보를 가슴에 안았다. 족보! 서울 서대문구 에 살던 어느 날 “이 선생님! 선생님이 족보를 이북에서 가지고 내려 오셨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물어물어 찾아왔습니다. 저도 완창대군 후손입니다.” 아버지를 찾아온사람이있었다. “젊은 사람 반갑네. 어서 들어오시오.” 아버지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완창대군의 후손이라는 말에 손을 붙잡고 반가워하였다. "그래 자네는 어떻게 서울에 와서 살게 되었.. 2023.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