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장 1 4후퇴 피난길에 생긴 일(1951년)
중공군이 내려오니 서울은 피난길로 난리가 되었다.
아버지는 식구들이 타고 갈 트럭을 빌려 왔다.
남으로 피난을 가는데 용산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사방에서 밀려들어 길을 꽉 메웠다.
인정 사정도 없이 사람들이 우리 트럭위로 올라탔다.
사람들이 잡아 댕기고 올라타는 바람에 나는 힘을 다했으나 트럭에서 홀라당 떨어지고 말았다.
어머니 어머니하고 울면서 매달려도 다시 올라탈 수가 없었다.
어린 심정에 가방에 든 은수저를 꼭 잡고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도저히 저 차를 올라탈 수가 없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차라리 집으로 가자 .
나는 온몸으로 사람들을 헤집고 나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과 부딪치며 반대로 걸어가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 힘을 다해 걷다가보니 서울 역이 보였다.
놀란 가슴이 그런 데로 진정되었고, 거기서 부터는 집으로 가는 길을 알기에 마음 놓고 걸었다.
서대문을 지났다. 어느새 해는 지고 거리는 어두워졌다.
배고픔도 잊고 얼마를 걸었을까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빈집에서 불어오는 찬기 가 무섭게 머리카락을 세웠다.
한쪽 방바닥에 쪼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시끄러워져서 잠이 깨였다.
그런데 내 앞에 집안 식구들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오면서 어머니 치마폭을 붙잡았다.
"이것아 혼자 가버리면? 네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집 쪽으로 가는 것 같아 다 내려서 집으로 왔다.
"트럭은 어떡하고요?" 짐 하나씩 만 가지고 트럭이고 뭐고 나머지는 다 버리고 집으로 왔다.
"벌써 밤 12시가 되었구나! 모두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다들 가서 잠을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떠나기로 하자."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아버지는 각자 짐들을 나누어주고 우리는 다시 걸어서 피난길에 올랐다.
어디서 밤사이에 당나귀 하나를 구하였는지 몸이 아픈 둘째 형을 올려 태웠다.
우리는 이웃집 김 선생님 가족과 같이 떠나기로 하였다.
사람이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모두들 열심히 걸었다.
한강이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6 25 때 그 많은 사람이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었는데 폭격으로 다리를 사정없이 끊었다.
피난민이 다리에서 적어도 500명 이상 죽었다고 했다.
그 책임을 군법회의에서 대령이 사형언도를 받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목숨은 바람에 꺼지는 촛불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영등포에 다다랐다.
기찻길을 따라 짐 보따리를 지기도 하고, 이고 가는 사람들로 줄을 섰다.
오산쯤에 이르자 춥고 배가 고프기 시작하였다. 군인이 꼬꾸라져 죽어 있었다.
어느 할머니가 자기 아들 같다고 울면서 붙들어 일으키고 있었다.
나무 밑에서는 어린애가 울었다. 애기를 나무 밑에 이불로 싸놓고 그대로 가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혀를 찾으나 데리고 가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도 그냥 지나쳐 버렸다.
얼마 안 가서 아무 데나 편안한 곳을 찾아 나무 밑에서 자는데 포대기 하나씩을 뒤집어썼다.
뒤에서 비행기소리가 나더니 폭탄을 터트리는 소리가 진동하였다.
철로다리가 끊어지고 피난민들이 또 죽어나갔다. 땅이 질어서 자꾸만 빠져 걷기가 아주 힘들었다.
그곳에서 이상하게 키가 큰 미국 군인을 나는 처음으로 보았다.
식구들은 강줄기를 그대로 건넜는데 나만 건너지 못하자 서 있던 미군이 나를 집어서 강을 건너게 해 주었다.
길은 조금 언덕 위로 연결되었다. 셀 수도 없는 사람이 걷고 있는데 형이 너무 아파서 우리는 점점 같이 처지고 있었다.
그때 살결이 검은 군인이 아버지를 세우고 권총을 들여댔다.
한 손으로 권총을 쥐고 아버지의 앞가슴을 열더니 포켓을 뒤졌다.
한 다발의 돈을 꺼내어 자기 포켓에 집어넣고 아버지를 총대로 퍽하고 밀어내었다.
같이 가던 작은형이 "돈 주세요! 돈 주세요!"하고 쫓아가니 그는 땅에다 대고 총을 한방 갈겼다.
"소용없다! 어서 가자!"
어머니가 작은형의 손을 황급히 쥐고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얼마를 더 힘없이 걸었을까?
두 번째 살결이 검은 군인이 또다시 아버지를 총으로 세웠다.
다 뒤지어도 돈이 안 나오자 포켓에 매달린 회중시계를 떼어가지고 물러났다.
그때 돈과 귀중한 회중시계를 다 빼앗긴 아버지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천안에 이르러 정거장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미군 M P를 보았다.
형이 몇 마디 영어로 돈을 강도당했으니 찾아 달라고 사정하였다.
미군은 손을 저으며 가든 길이나 가라고 손짓하였다.
아버지는 돈 없이 더 이상 갈 수가 없으니 이 동네로 들어가자고 제안하였다.
우리는 신장로를 벗어나 흙길로 들어섰다. 동네로 들어서는 길에 미군부대가 있었다.
잠깐사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총대를 멘 미군이 쫓아 나왔다.
걸어가고 있는 김 선생님의 어여쁜 딸이 느닷없이 미군의 손에 붙잡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데리고 부대로 가려는 것이 아닌가?
"안되오! 안되오!"부모가 아무리 울고불고 쫓아가도 일은 이미 벌어진 것이다.
그들은 대항할 수 없는 총대를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소녀는 울부짖으며 끌려가고 말았다. 부모들은 그대로 넋을 잃고 있었다.
아버지는 김 선생의 손을 붙잡고 동네로 우선 들어가자고 하였다
. 할 수 없이 두 가족이 두려움에 떨면서 풍세에 들어가서 잠을 자기로 하였다.
하도 놀 랜 가슴이 뛰는 바람에 잠을 못 들다가 새벽에야 곯아떨어졌다.
김 선생님 부부와 어머니는 밤을 꼬박 새운 모양이었다.
이튿날 미군부대 앞으로 가서 하루 종일 기다리는데 저녁 늦게야 딸이 비 뜰 거리며 울면서 밖으로 나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
우리와 친구였던 소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가슴은 뛰고 모두가 울먹거렸다. 법은 죽어버리고 없었다.
전쟁 속에서 오늘 만을 살고 있는 자들. 젊다는 이유만으로 끌려와서 모든 희망을 잃은 자들
그들은 못된 짓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 가지 못하고 풍세에 주저앉기로 하였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살리기 위하여 그곳에서 환자들을 보기로 하였다.
덕분에 먹고살 수가 있었다.
김 선생님 네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어린 소녀가 당한 상처를 치유하려는 대신에 그 어머니는 딸을 붙잡고 너 죽고 나 도 죽는 게 낫겠다며 울고 있었다.
그 피난살이가 얼마나 길었는지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그 소녀는 혼자 어디로 떠난 것일까.
그 소녀는 어느 날 동네의 다른 소녀와 같이 사라졌고, 우리는 그 똑똑하고 어여쁜 소녀를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똑똑한 아이니 어디에서도 잘 살아 갈 것이야요"
어머니는 소녀의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해주고있었다.
45장 총껍질 이야기
사귄 동에서는 계속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촌과 사귀동 산 사이에서 싸움은 계속되었다.
대포소리가 터지고 나면 콩을 볶아 대는 듯 총소리가 따따따 따하고 계속 나다가 딱 멈춘다.
집 마루에서 보면 조용해지는 순간에 군인들이 일로절로 뛰어 산 위에서 왔다 갔다 정신이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국군과 인민군사이에서 양편이 뛰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살았다.
우리는 앞산 등성이를 올려다보며 그들이 움직이는 것으로 누가 선두를 달리는 것도 짐작하였다.
국군이 더 밀고 올라갔고 잠잠해지자 동네는 다시 평안을 찾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다시 길로 뛰어다니며 깡통을 차고 돌아다녔다.
“영석 아! 순길 아 !우리 저기 군인들이 있던 산에 올라가 볼래?”
“그래 그래!”우리는 대장이나 된 것처럼 팔과 엉덩이를 신나게 휘 들르며 산으로 기어 올라갔다.
야산에 구덩이가 여기저기 파 헤쳐진 전쟁의 흔적을 보았다.
그 속엔 총알껍데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후엔 겁내지 않았고 모이기만 하면 산으로 올라갔다.
총알껍데기는 바지 포켓 속에 가득가득 채웠고 손에도 가득하였다.
자루를 가지고 올라가서 여러 명이 한쪽씩 들고 영 차 영차 하며 내려오는 날도 있었다.
쏘지 않은 총 알맹이는 툇돌 돌멩이 사이에 넣어서 총알을 간신히 빼어내었다.
인민군들이 쏘는 총알은 알맹이 속에 납이 들어 있었고, 총알을 거꾸로 들고 화로 불에 넣어 녹이면 그 속에 가득 고였다. 철사 고리를 집어넣어 물에 식히면 총알은 철사 고리에 찰 싹 달라붙었다.
우리들은 철사 고리에 노끈을 묵어 그럴 사 한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자랑스럽게 황토 길을 활보하고 다녔다.
총알껍데기를 많이 주워오는 아이들에게 목걸이가 서너 개씩 걸렸다.
목걸이는 종이로 접은 여러 개의 딱지와 바꾸기도 하였다.
하루는 가운데를 쳐서 총알을 빼내야 하는데 끝을 잘 못 쳐서 총알이 터져버린 사고로 순길 이 손가락이 없어져 버렸다.
순길이 어머니는 사색이 되었고 아이들은 엄청 놀라서 날 살려달라고 도망하였다.
그래도 놀 것이 없는 아이들은 산으로 기어 올라갔고 비행기에서 쏘아대는 숟가락 길이만큼 큰 기관포 알도 주워왔다.
큰 대포알을 아이들이 메고 내려오자 어른들은 질 겁을 하였다.
온 동네를 다 불 태울 셈이냐? 김 아저씨가 달려왔고 대포알은 다시 산 위로 올라갔다.
소총 알, 권총 알, 계속 36 발정도가 나가는 기관 단 총알, 미군이 쓰던 MI 총은 두들겨 빼면 안이 놋쇠인데,
그 속에 뾰족한 강철이 들어있어 그 강철이 어디든지 가서 잘 박히는 무서운 총알이었다.
후에 알려진 일이지만 납이 들어있는 인민군 총은 몸속에 들어가면 납독으로 천천히 앓다가 죽어간다고 했다.
우리는 대포알이 논두렁에 고래 등처럼 박혀 있는 것도 보았다.
나는 주워온 총알 껍데기를 집 한쪽에 모아 두었다.
모아진 총알 껍데기는 갈수록 높게 쌓였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나는 흙을 덮어 다 파묻어 버렸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시골에서 사람이 올라왔다.
“학생이 묻어 놨다는 총알 껍데기를 우리가 사려고 하는데......,
학생! 우리에게 그것을 팔지 않겠나?” 모자를 보기 좋게 눌러쓴 사람은 엿장수였다.
그때 엿장수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었는데.......
물이 계곡으로 철철 흘러내리던 그 아름다웠던 칠봉 산의 유년시절!
60년이 다 지난 지금, 칠봉 산은 얼마나 변한 모습으로 동네를 지키고 있을까?
전쟁 통이었지만 내가 숨을 쉬고 있는 한, 그리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칠봉산 속에 유리보석처럼 숨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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