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다운타운 해안가
<그랜빌 스트리트의 추억>
최윤자
연분홍 벚꽃이
흐드러지게 매달리고
목련이 조갑지처럼 뚝 뚝 떨어져
축축하게 물먹은 밴쿠버
30여 년 전 봄
동전 몇 닢 들고
버스표 한 장 쥐고
직업 찾던 그랜빌 스트리트
말도 안 통하는
그 하늘 아래
버스를 기다리며 울먹이고 서 있었네.
일 전짜리 동전 모아
그대와 정답게 영화구경을 하던
그랜빌 스트리트
자유와 희망, 세월이 이렇게 흘러갔는가?
내 육십이 넘어 그대와
일부러 버스를 타고
스카이트레인에 몸을 담고
다운타운을 다시 걷고 싶었네.
가슴을 스미는 옛 향기가
개스 타운 시계탑 위에 머무르고
기타 치는 거리악사
아직도 사랑노래에 목청이 쉬네.
내 부르튼 발바닥 옆에
흰 갈매기 날아와 쉬던
그랜빌 스트리트
나, 아직도 그 시절 그리워 서성대는가?
아무 두려움 없이
쏘다니던
청춘의 그랜빌 스트리트
내 가끔 지칠 때
용기와 힘
불 지피고 가던
그랜빌 스트리트
아직도
레몬 빛 가로등 켜지고
버스를 기다리는
가난한 연인들
그 사랑얘기는 그칠 줄 몰라.
캐나다 밴쿠버 중앙일보 (2006 년 5월)
우울증
심장에 작은 구멍이 생겼습니다.
그 속으로 샘물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허허들판을 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의 사랑은 해를 두르고 깊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줄기가 모래성을 쌓더니 다른 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가슴이 아파옵니다.
저를 치료해 주세요.
그래,
가슴에 손을 얹고, 모래 볕, 풀밭에 누어보아라
무엇이 보이느냐.
하늘을 돌고 있는 들새들이 보입니다.
또 무엇이 보이느냐
어머님께 답장 못한 편지들이
나뭇가지마다 뽀얗게 걸려있습니다.
바로 그것이야
우물 속에 비친 아들의 그림자
아들 연인과 같이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던
네 어미도
그때 병이 덧 쳤느니라.
2004년 기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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