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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essay) 단편소설

거미 단상

by 산꽃피는캐나다 2006. 8. 1.




 

 

거미 단상

 

누구에게나 유년시절은 한없는 그리움의 밭이다.

나는 어린시절 소라껍질을 모으기를 좋아하였다.
소라의 집.

어떻게 그 말랑말랑한 소라는 나면서부터 두껍고 튼튼한 집속에서 살게 되었을까?

우유빛이나, 핑크빛의  집에서 살고있는  소라는 그 집이 허물로 남고, 결국은 그 누가 다시 들어가 살지못하고  바닷가에  흩어지고 버려진다.

경포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조개를 줏어들고 귀에 대고 바다의 소리를 듣던 소녀시절이 있었다. 바다는 한없이 푸르렀고 모래사장엔 크고 작은 조개껍질들이 수선하게 널려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단단한 조개들의 집

 부드러운 조개가 살고있는이런 돌집이  있는가하면, 비단실보다도 부드러워  가늘 가늘한 실이 휘감기는 거미의 집도 있으니 대 자연의 조화는 가늠할 수가 없다.

 

노반 폭포수 산행 길에서 우리는 가던  발길을 멈추었다.

앞에서 거미가 집을 짓고 있었다.

나무가 꽉 들어선 숲길은 무서우리만큼 어두었다.

그때  마침 햇살이 비쳐들어  거미의 발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 선명하게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우리는 저절로 감탄사를 발했다.

어느 짜집기가 그렇게 정확하게 움직일 수가 있을까?

세로로 늘어뜨린 줄 사이로 점액을 바르며  실을 걸고 얽어매고 달리는 재주는 바로 몇 십 년 숙달된 기능공 이라고나 할까?

알고 보니 거미는 배 밑으로 3 가지줄을 꺼낸다고  했다.

세로줄은 점액이 없는 줄이고 가로줄은 점액 줄인데 엮는데 발바닥에서 기름이 나와 자신이 엉겨 붙지  않는다고 ......,

이 가늘고 튼튼한 줄이 망가지면 잘 고쳐서 쓴다는 지혜로운 거미를 본 것은 잠간이었지만, 자유로이 움직이던 거미의 활력있고 생생한 모습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햇살이 창문을 통해 환히 들어온 어느 날 아침이었다.

침대를 옆에 두고도 바닥에서 자는 잠자리가 편한 것은 아마도 어렸을 때의  온돌방의 향수일 것이다.

아침 햇살에 눈을 떳을 때

바로 눈앞 에  거미 한마리가 줄을 타고 내 머리 위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런 상황에 어! 하며 몸을 옆으로 굴려 피하였다.

줄을 타고 내려오던  거미는 바닥까지는 내려오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20센티미터 쯤 공간을두고  정지를 하더니 그대로 줄에 매달려  순식간에 다시 올라가  전등갓에 올라붙었다.

 플라스틱 전등갓  한쪽 모서리에서 다른 모 서리로 실을 뽑으며 집 짓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중이었다.

 줄을 내리면서 바닥으로 다시 끄덕끄덕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 붙었다.

아마도 내가 잠을 자는 동안 이렇게 수없이 내 얼굴 위 로 동동 매달려 내려가고 올라가는 작업을 하였을 것이다.

내려올 때는 여러 번 대롱대롱  줄을 뽑으며 멈추었다 내려오고  어느 땐 철렁 매달려 내려오는데 

 그 가는 실에 맞추어 태어났는지 ? 그 무게는 떨어짐이 없는 과학이다. 

올라갈 때는 거침없이 빠른 속도로  전구 갓에 올라붙는  거미 한 마리.

이 신비 극을 보다가 그대로 둔체 나는  일터로 향했다.

저녁이 되자  나는  천장위에 거미집을 지어놓았는지?  밤중에 내게로 다시 떨어질것인지 불안하였다.

 전구 갓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갓 속으로 집을 지었는지  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전구 갓 속에는 항상 불빛 찾는 잔 곤충들이  있기에 아마도 그 것을 잡으려고 집을 지었을것이다. 전구를 켜면 뜨거워져 저도 죽을 것을 ?  쯧쯧!  머리 작은 불벌레나 너나 무엇이 다를까? 

그러나 아래서 올려다보아도  천정에 붙어있는 뿌연 풀라스틱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일이다.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움틀거렸다.

생각 끝에  나무 사다리를 끙끙대며 방안으로 옮겨왔다.  사다리가 안전하게 양쪽으로 펴졌나  두들겨 보고 한발 한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위에 올라서서 한손으론 천정을 붙들고 전구의 갓 속에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그런데 그 속엔  흔적이 없다.  이상 하다. 분명히 이속에 집이 있어야하는데.

거기엔 전구의 열기로 죽은 몇 마리의 모기들이 다리를 오므리고 있을 뿐.

다시 손을 올려 거미줄이 손끝에 잡히는지 살펴보니 걸리는 것도 없다.

분명히 실을 뽑고 매달리던 거미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아침나절 작업을 하던 거미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먹을 것이 없다고 떠난 것일까?

아니면 아침식사를 잘 끝내고 자리를 옮긴것일까?

저 다리를 꼬꼬 열기에 죽은 모기나 나방이를 보고 두려워서 도망쳤단 말인가?

 

그 거미를 찾을까하여 천장  구석을 살피고 다녔다.

그러나 사방구석과  천장엔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그러다가 부엌까지 나와서야 창문밖에서 살고있는 거미를 보았다.

바람에 거미집이 휘날리고 거미도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거운 체중이 바람이 불어도 비단실에  잘도  붙어있는거미

그전에는 무심히 보았던 거미가 이젠  호기심을 발동하였다.

거미는 잠간사이에 집을 질수도 있고  그 집을 다 몸속에 걷어들고 떠날 수 있음을 왜 몰랐던가?

어떤 거미는 암거미를  움직이지 못하게 거미줄로 꽁꽁 묶어놓고 교미를 한다니, 그 뒤에는 다시 풀어주는 것인지 모르지만 거미의 세상도 사람의 세상처럼 감옥소에 들어가야 할 나쁜 거미도 있었다.

어떻게 집을 짓고 사는지 물속에서 사는 물거미도 있다. 

모든 거미는 주둥이로 상대방을 찌르고 독소로 상대방의 몸속을 소와시켜 쭉 들이 키고 껍데기만 남긴다고 한다.

수많은 새끼들이 한꺼번에 쏘다지고  그 새끼들은 어미 거미에 침을 박고 어미를  다 빨아먹고 생존한다.

순교를 당하듯 어미거미는 껍데기만 남아서  바람에 휘날린다. 

"우리엄마 그네 참 잘 타 네요"  하며 노래를 부른다는 아기 거미

그 거미가 집 창밖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내 어릴 적, 몇 년을 폐렴으로 어머니 속을 다 헤집고 살아나  고생만 시키다가 대학을 마쳐주니 이곳에 나만 잘 살아본다고 이민 와 버렸으니 자식들을 보내고 걱정하는 어머니의 심정 상관한 적이 없었다.

일주일이면 날아와 낙엽처럼 쌓이는 어머니의 긴 편지

항상 어머니는 그곳에 잘 살고 있으려니하고  제대로 답장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나 살기만 어렵고 바빠서 정신이 없었으니,  노래 부르는 이 거미와 무엇이 다를까?


어머니는 자식 여섯을 낳으셨고 다 대학을 보내느라 등록금 때면 돈을 빌리러 다니셨다.

아버지는 대학교수를 하셨으나 그 월급으론 정처없는 일이어서 내어렸을 땐 나무장사도 하시고, 내 중학교 땐 이발소도하시었으며, 하숙도 치르셨다.

항상 발을 동동구르며 부지런히 사셨다.

 

항상 겉옷은 새것을 입으셨으나 속옷은 남편과 자식들의 흔 옷만 입으셨음을

왜  내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약하고 가는 몸,  이민 간 자식들 걱정만 태산 같아서 눈물바람으로 층계를 오르셨다는   어머니가 오늘은 왜 이리도 그리워지는가?


흐려지는 눈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하늘엔 검은 구름 이 흐르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엄마 그네 잘 탄다고 노래 부른다는 거미가 아직도 창문 밖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

이제 막  떨어지는 빗 방울

거미는 처마 쪽으로 옮겨가서 자리를 잡으려한다.


비가오거나 , 눈이 오거나 잘피하는 영리한 거미이다.

창문을 닫고   나도 따듯한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바람결에라도

꿈결이라도

텅빈 모습으로 그네를  타더라도

그대를

다시 만나 볼수 있었으면......,

아직도 잘 살고 있는 내 모습 보여 줄 수 있었으면......,

 

거미 산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