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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너의아버지의 나라는한국

제82장 30일간의 캠퍼 미국방문기

by 산꽃피는캐나다 2023. 3. 4.

 

 82장 30일간의 미국방문기

 

                           1979년 6월

   한국 땅은 작아도 쓸모 있는 기름진 땅입니다.

그러나 넓은 미국은 동쪽과 서쪽  바다에서 습기가 올라오는 부분만 살 곳이지 가운데는,

메마르고 바닥난 호수, 풀 한 포기  없는 참으로 볼품없는 땅입니다.

대단한 실망이었습니다.

땅이 메마르건 말건 대대적이고 운명적인 하이웨이가 남쪽과 북쪽을,

서쪽과 동쪽을 거침없이 연결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이웨이 상에, 시설 좋은 주유소가   여행자에게  식품과 선물을 팔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위하여,  독일제 폭스바겐 캠퍼를 준비하였습니다.

의자를 접으면 침대가 되고 천장을 올리면 두 사람이 더 잘 수 있어 4명이 잘 수 있습니다.

싱크대가  있고, 급하면 세수를 할  정도입니다.

미국 땅에 대한 아무 상식이 없었습니다.

아마 미리 알았다면, 이런 여행은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무식이 용감하게 합니다. 40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아슬아슬하게 감사할 뿐입니다. 

 

 1979년 여름 캐나다를 방문하신 장인을 모시고, 다섯 살 된 아들과 임신한 아내와 넷이서  밴쿠버를 출발하였습니다.

시카고의 처제를 방문하고 돌아오는데,  무식하여서 얼마가 걸리는지 전연 몰랐습니다.

중요한 것은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방문한다는 것 으로 흥분해 있을 뿐이었습니다.

 

  *1 와싱톤주 *2 오레곤주 *3 캘리포니아주

 

   시애틀을 지나 넘버 5  하이웨이를 타고 포틀랜드에서 하루 밤을 보냈습니다.

서해안 바닷가 1 도로가 제일경치가 좋다 기에 그 길을 찾아 접어들었습니다.

바다가 시원스럽게 푸른 창을 열기 시작합니다. 

레드 우드라는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삼 목들이 일일 종대로 서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장군처럼 그 속을 신나게 지나갔습니다. 붉은 피부를 자랑하는 이 삼목들의 모습은 대단하게 잘 생겼습니다. 

이 나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나고 살맛이 납니다.  

차가 가운데로 지나간다는 거대한 나무를 찾아야 합니다. 근방의 상점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이가 오십쯤  보이는 상점 주인은, 심술스럽고 불친절하기가 말이 아닙니다.

필름 한 통을 사자, 저 집으로 가보라고 퉁명스럽게 알려주었습니다.

레슬링선수 같은 젊은 남자가 웃옷을 벗어버리고 팔을 꺾어 운동 미를 보이더니  풀 깎는 기계를  윙윙 돌리고 있습니다.  돈을 상자 속에 집어넣고  정원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나무 중간이 파여 있고 그 속으로 차가 지나갑니다, 싱싱하게 살아 있습니다.   

지금 보니 이 것을 유산 받은 젊은이는  돈 상자 하나만 설치해 놓고  돈을 착착 챙깁니다.

상점주인은 종일 서서  물건이 싸네 비싸네 입씨름까지 하면서 살아갑니다. 

인간 심리가,  나 같으면 돈을 못 벌어도 저 젊은이와 멀리 떨어지지, 그 옆에서 속 터지면서 장사하는 일은 피할 것인데요. 도로는  눈부신 동해안을 끼고 갑니다.

내쇼날 모멘트를 지나면서, 나무만 진열해 논 상점에 들려,  레드우드 나무 조각을 샀습니다.

신줏단지처럼 차 안에 모셔두었습니다.

금문교는 나의 상상력처럼  고전적이고 극치의 아름다움을 느끼진 못하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지나면서, 유물로 돌아다니는 낡은 전차를 구경하였습니다.  

카멜 바이 더 씨(Camel by the Sea)라는 곳을 지나는데, 그 색채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푸른 바다에는 크고 작은 돌 섬이  고구마처럼 길게 누워 있기도 하고  우뚝 서 있기도 합니다.  

미국 서해안을 여행하는 동안, 특별한 곳이라 생각됩니다.. 

빅서라는 도시도 바다나 삼 목을 안고 있어 신선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유명한 미국부자의 집 ( Hearst Castle)을 구경하기 위하여 산 시메온(San Simeon)을 들리기로 하였습니다.

구경 온 사람들로 대만원이어서  다음 날로 예약을 하고, 해지는  바다의 풍경에 취하여 밤을 바닷가에서 보내었습니다.

 

 이 갑부의 집이 관광지로 열리기까지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여기에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도저히 당할 수가 없자, 생각해 낸 것이 테러 당 조직이고,  테러 당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S L A 그룹 두목은, 악당으로  돈을 요구하거나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백만장자,  신문사와 금광으로 벌어드린 패리 허슬계가 있었고,  돈을 자택을 성처럼 짓는데 몰두하였습니다. 이 성전의 백만장자 외동딸, 대학에 다니는 페티 씨가 아파트에서 테러범에게 납치되어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훗날 은행 강도를 잡게 되었는데 그들 중에 이 외동딸이 끼어있었습니다.

이 외동딸은 살기 위하여 이 테러범과 동조하여 마약과 관련된  많은 범죄 행위를 하고 다녔다 하여 형에까지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외동딸의 어머니가 딸을 살리기 위하여, 이 갑부의 집을 미국정부에 내놓게 되었고,

미국정부가 딸을 석방하자, 그들은 곧 불행하게도 이혼해 버렸습니다.

부가 테러당의 표적이 된 슬픈 이야기입니다.  미국정부가 지금 이 집을 관광지로  돈을 벌어드리고 있습니다.

 이튿날도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습니다.

집까지 들어가는 관광버스를 타고 그 집의 영토를 가로질러 한 참 들어가 산언덕에 사람들을 내려놓았습니다. (이곳을 가려면 예약을 하고, 떠날 것입니다. ) 자세히 구경하려면 며칠이 걸린다  하나, 값어치를 잘 알 수 없는 나로서는 벨사이 궁전과는 비교가 안 되고 , 한국의 부자는 그 방한 칸 살림보다,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정원에서 삼발이를 펴 놓으니, 금방 경찰이라며  평복을 입은 신사가 나타났습니다.

삼발이로 긁히면 큰 일어나는 돌입니다. 무안해서 삼발이를 접어 올렸습니다.

정원에 서있는 돌상들은 진품 이집트의 피라미드 석 돌이랍니다. 

나무나 풀 한 포기도 수입해 온 진기한 것이라 했습니다. 방마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진열되었습니다.

내 눈에 하잖게 보이는 장식품 하나하나가 진품이고 예술품이라 하였습니다.

건물 안에 있는 풀장은 밤하늘의 별과 마주 보는 운치와 대통을 이룬다 하였고, 정원의 풀장은 호화판  대리석입니다.

개인 영화관이 있고 , 미국역대 대통령들이 비밀회담으로 쓰던 방이 있고,

화려한 침실이, 전부 창을 통해 먼 산을 바라보게 설계하였다 합니다.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부가 여기에 진열되었고, 100개나 된다는 방은 다 마무리가 안 된 채입니다.

이런 집을 한번 보았다는 것으로, 미국부자에 대한 수업을 끝마친 것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선물 상점에서 예쁜 유리컵 하나를 샀습니다.

유리컵을 모으는 것이  취미  맑은 허트 케슬리 그려진 유리잔을  들고 행복해합니다. 

이렇게 큰집이 아니라  작은 유리그릇 하나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

누구에게나 세상 살아가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지요.

 

   하루에 7시간에서 11시간까지 달립니다.

산타바바라의 야자수 가 열대지방에나 온 것처럼  이색적입니다.

이 도시를 지나 로스 안젤스로 접어들었습니다.

밴쿠버 촌사람들이 미국의 대도시로 들어서니 차선도 많아지고 어찌나 달리는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곳은 속도가 느리면 권총을 쏘아대고 달아나는 도시입니다.

묻고 물어 디즈니랜드부근의 캠프장을 찾아들어 갔습니다.

캠퍼 들 속에 가난뱅이  폭스바겐 캠퍼가 구경거리처럼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첫 미국행 나들이의 기쁨을 그들이 알 리가 없습니다.

다섯 살짜리 철 모르는 아들은, 잘 놀다가도 가끔 투정을 부렸습니다.

왜 할아버지만 앞에 타고 자기는 뒷자리에 앉아야 하는지?

공평하지 안 아요(That`s  not fair)라고 계속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미안한 어미 아비심정은 생각지도 않고......,

디즈니랜드는 처음 간 우리에겐 참 볼 것도 많고 즐거운 곳이었습니다.

특히 꼬마는 이리저리 팽이처럼 굴러다니면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지요.

(훗날 꼬마는 거기에서 남은 티켓을 밴쿠버에 와서도 품에 안고 잠이 들었습니다. 남은 티켓이 다시 가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나 봅니다.)

유니버살 스튜디오에서는 배를 타고 상어를 만났을 때는 실제 상어가 달려드는 줄 알고 정신없이 일로 절로 살려고 도망치려든 꼬마의 심각한 얼굴은 우스워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할리우드의 베버리힐 중심 가를 차로 돌면서,  웅장한 대문들에 놀랐습니다.

우리는 돈을 벌어 저런 집에서는 살 것 같지도 않지만, 눈으로만 보아도 감당하기에 불편하여 살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샌디에이고를 들리기로 하였습니다.

자연 동물원을 가기 전에  오렌지 밭에 들렸는데,  평생을  그 진 맛을 아는데 도움이 되였습니다.

감칠 만큼 오랜지는 달고 연하고 향기롭습니다. 패시픽 비치의 모래사장에 앉아서 , 이렇게 달콤한 오랜지는  처음으로 먹었습니다, 이곳을 향하는 사람이면 오랜지 밭에 들리는  것을 꼭 권하고 싶습니다.

  태양이 대림질 하는 모래사장 우리는  따뜻한 모래밭에 발을 깊게 묻고 앉아서 정말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차를 타고 넓은 자연 농원을 돌면서 동물들이 여기저기  숲 속에 나른하게 쉬는  모습을 구경하였습니다. 

이렇게 와싱톤 주와 오레곤주 캘리포니아주를 지나니 서해안 주에 마침표를 대강 찍은 셈입니다.

 

  *4 네바다주 *5 우따주 *6 애리조나주

 

   내륙 쪽에 있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로 가기 위하여 15번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사막을 달리고 있습니다.

8월의 더위는 끔찍하게 내려 꼬치고 있습니다. 갈수록 바람 없는 들판엔  잡풀만 보입니다.

이곳 풀들의 색깔은 초록이 아니고 햇볕에 널어놔서 바랜 엷은 쑥 색입니다.

바람이 불면 동글동글 날려가 버릴 것 같습니다.

나무가 없어진 들판에 고개를 든 선인장이 이방인들이 왜 돌아다니느냐고 처다 봅니다.

 대 황무지에 도시를 세운  라스베이거스는, 후버 땜으로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8월의 후버 땜 은 붉은 흙더미를 두르고 활활 불길이 타오르는 듯 녹아내는 열기를 품고 있습니다.

라스베이거스는 후버 땜에서 나오는 전력으로  이루어 논 별천지입니다. 

미국사람들의 성격과 능력과 투기를 맞볼 수 있는 걸 작품 입니다.

잘살기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찾아온 세계의 개척자들, 그들의 꿈과 사고를 펼쳐 놓았습니다. 

라스베이거스! 메마른 땅 네바다주에 세워진 도시, 

내가  동전 몇 닢으로, 돈을 좀 벌자 라스베이거스는 즐거운 곳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마지막 5전짜리 동전까지 울컥 삼켜버린 슬랭머신을 미워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록 댄스로 우상이 된  엘비스 쇼!

그가 가버린 지도, 긴 세월이건만 엘비스 쇼는 계속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음날 사막지대로 달리면서 자이온 국립공원에 도달하였습니다.

메말랐던 벌판에서  나타나는  국립공원의 초록 숲과 산을 보니 살 것 같습니다..

애리조나주의 그랜드 케뇬에 들어섰습니다.

일 년에 2억 5천만 명의 관광객이 밀려든다는 이곳은 콜로라도 강물이 억 년을 흘러간 자취로,

그 바닥을 다 드러내놓고 있습니다.

물들이 비켜간 자리엔 피라미드이나 인도 불상이나 , 여인의 젖무덤이나, 희한한 모형들이 보입니다.

깊이는 1.6킬로미터이며 폭 넓이는 28킬로미터나 되고 길이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곳에서 파 내려간 흙으로 미국을 다 덮어보면 발목정도는 다 덮는다 하니,

세월의 깊이와 물살의 용맹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겠지요.

이곳엔 하이킹코스가 유명하고 말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도 그 아래로 내려가서 구경한다고 합니다.

시간보다 돈이 없는 우리는 이 정도로 끝내는 것이 좋겠지요.

 

샛길로(89 ALT) 우따주의 황무지로 뒤덮인 그랜케뇬 국립공원을 들렸습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브라이스케뇬 국립공원에 들렀습니다.

황토 흙이 조각한  이상한 모양의 산들만을  구경하고 달리니 눈도 피곤합니다.

다시 24번을 타고 캐피털리프 국립공원을 들려 내추럴 브리지를 구경하니 저녁이 되었습니다.

부근의 캠핑장에서 잠을 잤는데, 주인이 잔돈이 없다고 돈을 아침에 거슬러주겠다 하였습니다.

일찍 출발하느라 잔돈을 받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보니, 편지봉투에 영수증과 잔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나 같으면 귀찮아서라도 안 돌려줄 것인데, 일전이라도 정확한 돈 계산의 그 성실함에, 미국 사람들의 알뜰한 장사하는 법을 새로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대한  아취 국립공원에 들러 희한한 모습을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젠 붉은 산에 지치고 지쳐 “아이 더 이상은 붉은 것은 보기싫어 어서 갑시다, 하고 신음소리가 나올 지경이 되었습니다. 푸른 산이 그리워집니다. 하느님이시여! 여호와 하느님이시여!

산에 나무를 초록으로 덮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달리다 보니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이젠 아무도 없는, 빈 황토먼지  길이 무섭기만 합니다.

어디서 인지 인디언들이 수도 없이 말 타고 밀려들 것 같습니다. 

잘 곳을 찾는 것도 어렵게 되었지요. 차 한 대가 언덕 위에 서있는지라, 캠프장을 물어볼까 하여 차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안에서 나온 사람을 보자, 우리는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험상한 인디언 청년이, 눈동자를 굴리며 밑에 동네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호의는 고맙지만 그냥 가겠다며 얼른 시동을 걸었습니다.

계속 달리기만 하였습니다. 무서움,  아무도 없다는 무서움도 크고, 사람을 만나도 더 무서운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얼마를 달리다가 길 편에 서있는 우리 같은 처지의 차 두 대가 서로 의지하고 잠을 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가슴은 그런대로 진정되었습니다. 그들 옆에 의지하고 하루 밤을 지나기로 하였습니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배가 고픈지 모두가 뒤척거립니다. 밥 먹을 엄두도 못 내고 달리기만 한 것입니다.

누워서 창문으로 내다보니,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해만큼이나 큰 달이 사막의 흙산 위에 우아하게 걸려있습니다.

침묵 속에 대지를 감싸는 달의 여운이, 풀 한 점 없는 산을 은은히 비추고 있습니다.

대지는 지금 달빛의 우정만을 믿고 있는 듯합니다. 정적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세상의 모든 것이 숨도 쉬지 않고 있습니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오늘 밤 너의 빛 속에 내 숨어 들어가 보니

두려움 다 가버리고 그리움만  흐르네.

 

우정의 달빛인가 나를 에워싸는 따뜻한 달빛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정적 속에서

그 달빛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든지 그 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차 한 대가 더 들어와 옆에서 자고 있습니다.

 

  *7 콜로라도주 *8 네브래스카주 *9 아이오하주

 

  덴바로 가는 길은, 높고도 험하였습니다. 존 덴버의  록키마운튼 하이라는 노래가 생각이 납니다.

햇볕은 내 어깨를 비추어 행복하게 하고, 그가 비행기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덴버는  존 덴버를 그리게 합니다.

날씨가 어두워지고 헷트 라이트를 켜고 산을 넘어가는데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날라 오더니,

차가 휘청하고 뒤집어질 것 같아 차를 세웠습니다.

안타깝게도 독수리가 차에 부딪쳤다 생명만은 구하고 달아난 것인지 어디로 떨어졌는지 깜깜해서 보이질 않습니다.

참 미안합니다.  산은 점점 높아 가는 듯합니다.

조지타운 터널이 나타났는데, 끝없이 길었고 어두웠습니다. 

장장 긴 산속을 뚫었나 봅니다. 굴속을 나오자,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밤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비속에서 나타나는 젖은 불빛으로 아롱대는 밤 도시가 덴버입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덴버에서 만났던  친절한 한국 부부를 잊을 수가 없어 가슴이 찡합니다.

큰 호텔 네온사인을 보고 들어갔는데, 주인이 한국 분이었습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살고 있는 분은  빈방이 없었는데,  옆에 호텔을 친절하게 주선해 주셨습니다.

한국에서 군인 장성이었다는 그분은 뜨거운 저녁을 가지고 와서  한국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서로가 그리운 정에, 우리는 고국이나  돌아간 듯,  친구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시던  분,

열흘이 넘게  누구와  얘기도 못한 터이라 , 같은 얼굴을 만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친절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찾아오는 여행자들에게 주는 따뜻한 미소하나가 , 인간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는지를  배웠습니다.

지금까지도 덴버는  그분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정다운 도시가 되었습니다.

콜로라도주를 지나자 중부인 네브래스카는 끝없는 황무지입니다. 호수하나 없습니다.

개울물 하나 보이지 않는 버림받은 땅덩어리는 우따주 보다도 더 심한 상태입니다.

길하나 만 활주로처럼 보일 뿐 이런 곳에 오고 가는 차도 보이지 않습니다.

차 고장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참 아득한 곳입니다.

질기고도 긴 여정, 빈 땅을 죽기 살기로 하루를 계속 달리니 아이오하와 주의 경계선입니다.

벌판에 멍청하게 서있는 기차 정거장을 보았습니다.

기차는 그 통수가 100개도 넘을 듯 광야에 포물선을 그리며 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나 본 적이 있는 카우보이가 말을 타고, 긴 회초리를 휘 두르면서, 소들을 기차 속에 몰아넣는 이색적인 장면이 보입니다. 아마도 시장으로 팔려 가는 불쌍한 소들 일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소 떼를 본 것도 처음이고, 광야를 뛰는 실제 카우보이의  재능을 본 것도 처음이라 신기하기만 하였습니다.

 

우리 가본 아이오하주는, 옥수수만 살고 있는 나라 같습니다.

편편한 땅덩어리가 옥수수 밭으로 하늘을 이룬 듯이 널려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 밭을 우리는 하루 종일 달렸습니다.

외롭다는 것. 인간을 볼 수 없다는 것은 괴롭고도 심각한 것 임을 알았습니다. 

달리다 보니 먼 야산이 다가옵니다.  

초록빛이 도는 야산에  소들이 있어야 될 것인데,  검은 돼지가  놀고 있습니다.

한국의 돼지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행복한 돼지들입니다. 토지가 가도 가도 끝없이 널려 있는 나라

 

 인간은 토지 확장 증이라는 병 증세를 가지고 있다 하였습니다. 특히 심한 나라가 미국이 아닐까요.

나는 열심히 일 하는 미국사람과 풍부한 생산력에 감탄합니다.

황무지 속에도 라스베이거스를 만든 사람들, 그들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여 끝없이 옥수수를 생산하고 부를 일구어냅니다. 그러나 잘 사는 나라는, 땅을 망하게 하는 전쟁무기를 만드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앞날을 근심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전쟁무기나 그런 실험으로 우 따주나 그 근방의 주가 이렇게 황무지가 되지 않았는지 근심이 될 정도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땅을 망하게 하여서는 안 될 것이지요.

자연주의자 스즈키박사는 그의 연설 중에서 인류가 10년 안에 자동차를 버리지 않는다면 지구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10 일리노이주 *11 인디아나주 *12 미시간주

 

   집을 떠난 지 18일이 되는 날,  여동생이 살고 있는 시카고가 있는 일리노이주로 접어들었습니다.

나무도 없는 황막 한 대지 위를 끝도 없이 달리고 온 때문일까요?

오래 만에 동생을 만난다는 기쁨일까요? 고독한 기간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요? 

시카고에 들어서자  아내는 눈물이  펑펑 주체할 수없이 뺨으로 흘러내려 입 속에까지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돌아보니 아버님도 고개를 숙이고 울고 계셨습니다.

말이 그렇지, 그 두려운 대지를  하루에 밤낮을 달리기를, 18일을 더 하고 보니, 외로웠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왔다는 감격일 것입니다. 시카고는 우리들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였습니다.

시카고 시내는 천둥과 번개로 도시를 빗물 속에 처넣기라도 할 듯 쏟아 부었습니다. 

퍼붓는 비가 뿌옇게 창을 어질고 마음까지도 몹시 두들겨대었습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무사히 왔는데, 운 없이 이곳에서 벼락으로 죽는 것이나 아닐까 하고 천둥소리에 깜짝깜짝 놀래었습니다. 의사가 직업인 처제부부는 병원 근처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차를 파킹 장에 세워놓는데도, 처남이 권총을 찬 수위한테  차를 잘 지켜 달라고 팁을 주고 왔다고 하여서,

시카고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였습니다. 

다음날 으리으리한 시어스 빌딩을 구경하고  바다만큼 넓다는 5 대호 호수도 둘러보았습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처제부부가 잠 간 사 올 게 있다면서 차에서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둠이 깃든  파킹 장에서 기다리는 잠깐 동안이었습니다.

우리는  납치사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도와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남자는 차 안으로 여자의 입을 틀어막고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겁을 먹고 난  몰래 빠져나가 수위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별일을 당했습니다. 납치사건 알려주러 갔다가 혼만 났습니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당신이 지금 제정신이오? "수위실에 있던 사람이 내게 한말입니다.

나는 차 문을 잠 갓 습니다. 이 험악한 도시에, 머리카락이 모두 일어서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뉴욕으로 가기 위하여 일리노이 주를 떠나 인디아나주를 달려 디트로이트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신호등불이 바뀌는 동안  커다란 트럭 뒤에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잠 간 사이, 추럭 뒷문으로 잽싸게 달려드는 두 흑인청년을 보았고 그들은 상자들을 훔쳐들고 뛰어내렸습니다.

이곳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큰 트럭들이 앞  뒤로 캐나다 간판을 단 우리 차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지도를 살 겸 주유소로 들어갔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뉴욕에서 왔다는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곳 실태를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뉴욕에서는 어느 거리부터는 흑인지대이니 가지 말 것, 누가 뭐라 해도 창문은 절대 열지 말고 앞만 보고 그냥 지나갈 것. 구경을 하려면  여행사가 안전하니 여행사를 통해서 할 것 등,  나는 그분이 가르쳐 준 것을 한자도 빠트리지 않고 일일이 노트하여 가방에 넣었습니다. 우리는 인디아나주를 거쳐 미시간 주를 지나 나이아가라로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13 오하이오주 *14 펜실베이니아주 *15 뉴욕주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하는 길이 다시 한적해지자 모든 시름을 지워버렸습니다.

얼마를 달렸을까  바다 같은 호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황막한 대지의 끝에서 다시 만나는 푸른 도시,  말로만 듯 던 우렁찬 폭포수의 모습은?.

에리호수가 온타리오호수보다 326휘트가 더 높아 그 격차로 떨어지는 물결이 바위를 깎고 뒤집어지며 정말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캐나다 쪽의 나이아가라 폭포수는 미국의 것보다 두 배반이나 되어 진폭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 진폭을 보기 위하여 폭포수 밑까지 가는 배를 탔습니다.

검고 두꺼운 우비를 입고 출렁거리는 뱃전에 앉았습니다. 점점 부서지는 물거품이 앞으로 휘몰아 들어옵니다.

그 포물선 안개 속으로 들어서는 배는, 부서지는 물은 점점 세차게 뱃전을 휩싸 안으며,  사정없이 덮었습니다.

비가 쏟아지듯이 폭포수의 여파에 휩싸이던 때, 배를 탄 것은  메말랐던 마음에 다시 스릴과 추억 물을 가져 다 주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수는 거대하고 우렁차고 발랄하였습니다.

그 이상의 폭포를 나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알바니 시를 지나 뉴욕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자니, 이 부근의 지역들은 후리웨이를 해놓고 곳곳에서 돈을 걷어 들였습니다. 앰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는 뉴욕은 복잡하여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차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복잡한 도시에 기가 죽어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흰 와이셔츠와 여자들은 멋진 스타킹 스타일로 , 경쾌하게 힘찬 발걸음으로 시내를 누볐습니다.

흩어진 산만한 쓰레기들이 보였습니다.

구걸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뉴욕이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미국은 잘 살지 못하였습니다, 큰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왜 다른 나라에 구조 품을 보내는 것일까?

미국은 뉴욕 길거리에 앉아있는 저 사람들을  먼저 구제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또 더러운 저 거리는 왜 저렇게 방치하고 있는가? 뉴욕은 앓고 있는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운전에 겁이 나  택시를 타고 앰파이어 빌딩을 가자고 하였습니다.

파킹 장에 차를 세우고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챙겨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길 코너에 상점에 들어가니, 반갑게도 한국 분이 주인이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인즉, 빨리 돌아가서 차 안에 돈이 될 만한 것은 위험하니 전부 가지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지나 않았는지? 허겁지겁 차로 돌아가서,  다시 가방을 챙겨 들고 나왔습니다. 

걸어서 몇 분이면 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바로 옆에 있는 줄 몰랐습니다.

촌사람을 태운 운전사는 시내를 돌고 또 돌아 충분히 돌아다닌 다음 내려 주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 얼마나 보고 싶던 것입니까?

1시간 후면 떠난다는, 뉴욕 관광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시내를 걸었습니다.

번쩍거리는 보석상과 카메라점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는 상점마다 검고 두꺼운 철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자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고 뉴욕시내를 천천히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화려한 간판들 사이로 , 지저분한 거리로, 또 상점이 즐비한 곳,  차이나타운이니 사고 싶은 선물이 있으면 사라고 합니다. 뉴욕시내엔 한강처럼 흐르는 강 위로 수 없이 많은 다리가  걸려있었습니다.

버스는 다리를 건너고   배를 타고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으로 가는 중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을 멀리서 바라보니 지구의 다른 쪽에 온 것이 확실합니다. 

여신상은 바닥에서 손 끝까지는 내 키의 55배 정도 되고, (305휘트) 책을 들고 있는 손가락이 내 키의 한배 반이나 된다고 합니다. 머리까지 올라가면 전 뉴욕 시를 볼 수 있다 하니 그 높음이 짐작이 갑니다.

1876년 미국 100년 기념일을  위하여  불란서 국민이 보낸 선물입니다. 

불란서 국민들이  돈을 걷어  만든 이 거대한 작품이 배로 실려 이곳에 와서 세워지기까지는 무려 십 년도 더 걸린 셈입니다. 1993년 유럽여행에서 파리의 에펠탑을 오르면서, 같은 민족의 작품인  자유의 여신상을 기억하고 두 나라 사이의 우대관계를 생각하며 혼자서 감동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한 나라가 있다면, 우리는 남북과도 적이 되어 살고 있는데, 통일은 안 된다 하여도, 서로 우대 관계를 가진다면, 부러울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누구를 위해서 전쟁을 하고 누구를 위해서 서로 원수가 된다는 것인지요?

우리의 생각은 옛날 잘못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의 전쟁은 서로가 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전쟁 중에도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읽었던 윌리엄워스 워즈의 아름다운 시 구절을 책갈피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전쟁이 아니라 사랑 위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 이기는 것보다, 양보해서도 더 많은 유익과 미래가 보장된다면 , 형제를 안아주듯,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능한 외교관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버스를 타고  8시간 관광을 끝낸 뒤,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이 되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려고,  시내로 나간 것은 큰 불찰이었습니다.

그렇게 붐비던 거리는 조용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술 먹은 사람하나가 지나면서 소리를 지르고 달려들자, 아내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하였습니다.

한 불 럭을 지나자 식당인지 술집인지 , 북적대는 사람들 소리에, 안을 들여다보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내는 또 깜짝 놀라서 넘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걸인이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동전 몇 닢을 건네주고, 우리는 누가 돌아가자는 소리도 없었는데 뒤돌아서 정신없이 호텔로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뉴욕거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왜 복잡하던 도시가 밤이 되자 타버린 도시처럼 불꽃이 사라지는가를 몰랐습니다.  

여기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몇 불락 안에 있는 중심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소시지 몇 개를 구워서 저녁을 때우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올 리가 없었습니다.

밖에서는 한밤중에도, 유리창 깨지는 소리, 싸우는 소리, 술주정뱅이가 바로 창 밑에서 질러대는 소리, 무서움에 한밤을 보내는 것이 가슴이 타는 지옥이 되었습니다.

막 잠 들렸는데,  이곳을 빠져나가자고 다들 깨웠습니다.

새벽 3시였는데, 밖은 조금  진정된 듯합니다. 우리는 키를 책상 위에 놓고 가방을 소리 없이 둘러메었습니다.

잠든 아이를 업고, 도망가는 촌사람들.  우리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그렇게 빠져나와야만 했습니다.

밤거리는 한적하였습니다.

와싱톤을 향하려던 우리의 계획은 뉴욕이라는 악마의 소굴 덕분에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조금 있으면 밀어닥칠 차들의 대 행진 속을 피하여 나가는 것밖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가장 빠르고, 신속한 고속도로 80번을 타고 뉴욕 주를 빠져나와

펜실바 이아 주를 거쳐 시카고를 향해서 다시 달리고 달렸습니다.

 

  *16 윈스코신주 *17 미네소타주 *18 사우스 다고타주

 

  시카고로 돌아가서 처제부부는 우리와 같이, 윈스코신 델이라는 곳으로 가서 휴가를 보내고,

  거기서 서로 헤어지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큰 쇼크를 받는 사실이 일어났습니다. 아버님이 비행기로 가신다고 선포를 하신 것이지요.

그나마 의지했던 장인! 아버님 없이, 그 먼 길을 되돌아간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앞일이 막막하여 그날은 밥도 넘어 가질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으신 아버님이 얼마나 심적으로, 지루하고 겁이 나셨으면, 그런 선언을 하셨을까?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으련만 , 아내는  아버님을 원망하며 잠을 뒤척이고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비행기로 가시겠다던 아버님이 웬일인지 짐 보따리를 천천히 차 안으로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님도 밤잠을 못 주무신 것같이 얼굴이 부석부석하여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너희들만 보내자니 안 되겠다. 나도 같이 가야지," 아버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기뻐서, 그 당시 불편 했던 아버님의 심정은 헤아리지도 못하였습니다.

위스코신 델은 디즈니랜드보다 적고, 라스베이거스같이 번쩍거리지는 않았으나 휴가를 보내기엔 멋진 곳이었습니다, 여름휴가 온 사람들로 남대문시장처럼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썼다는 수륙용 군대 차를 관광용으로 몰고 다녔습니다. 

흥미진진한 그 차를 타보기로 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경매를 붙였는데, 그 경매장에서 사 왔다는 차는, 사람 10명 이상을 태우고 육지로, 호수로, 들어갈 모양인지 카메라를 조심하라고 합니다.

 여기는, 물이 검정 색으로 보입니다. 바닥의 색깔이 검은 탓이지, 물을 쥐어보니 맑고 깨끗합니다.

낮은 물속으로 들랑대며, 재주를 부리는 이 전쟁 통의 차는 신나게 물 세례를 퍼붓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하늘높이 터져 나갑니다. 제일 안전하게 물벼락을 안 맞은 사람은 맨 뒤 자석에 있는 아내와 몇 사람입니다. 

안내원은 뒤 자석에 앉는 사람들이 복 받은 사람들이라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뒷바퀴로 차를 몰아대니, 까무러질 듯 놀란 함성이 터지고 폭소가 울려 퍼집니다.

재미있는 상육 작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삶과 죽음을 가름하던  전쟁무기가 관광으로 쓰일 때 얼마나 즐거운 것이 되는가를 알게 합니다.

인간이 전쟁에 쓰는 돈을 달리 쓴다면, 세상은 참 재미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밤의 수상스키 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밤의 쇼를 보려고 넓은 호수 가에 층층으로 만든 자석 위에 사람들이 틈도 없이 앉아 있거나 서있습니다.

칠 흙같이 검은 밤입니다.  황홀하게 떠오르는  불빛 속에, 춤추는 백조나 신델릴라가 있습니다.

하늘엔 별들이 촘촘히 박혀서 보석처럼 빛나는 밤입니다.

그러나 지금 지상에서는 이들보다 아름답고 화사한 것은 없습니다.

서커스의 여러 명의 댄서가 공중을 오르다 물속으로 폭삭 한꺼번에 떨어져 없어져버립니다.

물 위에서 춤의 잔치를 벌이다가, 춤 마차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이렇게 흥분되는 쇼를 구경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미국 동부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이곳의 수상스키 쇼가 , 라스베이거스의  쇼보다도 더 감동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처제는 시카고로 울먹거리며 우리와 이별을 하였습니다.

 

미네소타주를 하염없이 하루를 달렸습니다. 황무지에 붙어있는 화약광고 간판입니다.

황무지밖엔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인디언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곤 밤에 터지는 불꽃놀이입니다.

블랙힐 국립공원의 유명한 마운트 러쉬무어를 보기 위해 달렸습니다.

돌산에 새겨진 역대 대통령의 얼굴들, 마운트 러쉬모어 보려고 디에서 모였는지, 사람들이 여기저기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웅장한 돌산에 새겨진  대통령의 얼굴들, 애브라함 링컨, 조지 와싱톤, 토마스 제퍼슨 루스벨트, 자유를 위하여 정치를 해온 사람들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것인지?

바위를 깎고 산을 깍고 웅장한 산의 부분이 되어, 솟아있는  형태 위로 위엄이 흐릅니다.

일 년에 다녀가는 사람의 수 자가 2.5백만이 넘는다 하니, 그랜드 케뇬에 모이는 수 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보글럼이라는  한 사람의 생각으로 시작된 이 작품은 5725휘트나 되는 산을 사흘을 걸어 올라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2차 대전 전, 경제공황이 있을 당시 자금부족으로 몇 번이나 멈추었다가  다시 재건된 거대한 작품입니다.

그곳에 새겨진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라폴레온으로부터  블랙 힐 땅을 사서 금을 캐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그곳에 세워진 형상들입니다.

1927년쯤 시작하여 1941년 정도까지 보글럼은 400여 명의 사람들과 갖가지 장비를 다 끌어올려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14년 간에 들어간 돈이 백만 불도 넘었다니, 지금 가격은 인간이 상상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주 정부에서 돕다 못해, 연방정부로 넘어가  원조 받았고, 중학교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자진헌금을 하여 완성시켰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도 이것을 소리 없이  세운 것입니다. 

현재도  풍해 작용으로 부서지는 돌들을 보수하느라고  입장료의 일부를 쓰고 있습니다.

밤에는 우아하게 전기 불이 산 위에서 비추이는 시설을 하였고, 낮에도 얼굴 위로 해가 오래 머물고 지나갑니다.

 에브라함 링컨의 아메리카 꿈의 정신을 받드는 개척자들 , 이 메마른 땅 사우스 다코타주가 살아갈 길을 연구하여, 관광으로 후세의 가난을 지우고자 한 듯합니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보석 지하 동굴을 구경하였습니다.

 호화로운 보석색채의 동굴, 고드름은 바닥에서 천장을 닿고 있었습니다.

가지가지 모형의 형체, 바다 속엔 산호가 있는가 하면, 땅속의 동굴산호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9 와이요 밍주 *20 몬타나주

 

  이제 미국의 제일로 손꼽는  국립공원 옐로스톤을 생각하니, 달리는 것도 새롭고 힘도 생겼습니다.

엘로스톤은 조류와 동물의 천국이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공원 주변에 들어서자, 암모니아 가스냄새가 지독하였습니다.

 도착한 시간이 저녁이 시들해질 무렵이었는데, 숲 사이로 여기저기 연기가 피어올라 집집마다 맛있는 밥을 하는구나 하고 바보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뜨거운 물이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더운 김이 여기저기 솟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신기하였습니다. 

  물은 태평양 바다 물이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 지열에 의해 더워진 후 약한 지표를 향해서 분수로 높이 솟아오릅니다.

중심에 있는 큰 분수는 우리가 서있는 사이에도 시시각각으로 높고 낮게 춤을 추었습니다.

최고로 솟구치는 분수의 장관을  보려면, 달력이 큰 만월 때 여행을 하면 볼 수 있습니다.

온천수가 너무 강하여  주변에는 호텔이나 모텔 없고,  곰이 많은 지역이라 캠프장도 없습니다.

여기저기를 돌아보니 솟아 오른 분수나, 이미 사그라진 분수로 굳어진 땅 속에 고여 있는 청록색물감이며 희한한 경치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하얗게 죽어버린 열기 속의 나무들이 보입니다. 

아마도 지옥과 천국의 중간쯤 연옥의 지점이 있다면 경치가 이런 곳일 것 같습니다.

지금 저곳을 보니 마음을 바로 먹고, 아무 곳에도 들어가지 말아야 될 것 같습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그랜드 텔돈 국립공원을 들렸습니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 하늘이 비쳐 들고 구름들이 들어가 깨끗한 새벽을 열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잔잔히 어우러진 초록나무들의 신선함을 뒤로하고 스포 캔으로 향한  하이웨이로 접어들었습니다.

이틀이나 삼일만 더 가면 집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집에 꿀을 발라 논 것도 아닌데 집 생각이 간절합니다.

스포캔을 지나고, 시애틀을 지나서 국경선을 지났습니다.

 

  *캐나다

 

   밴쿠버는  우리들의 제2의 고향입니다.  밴쿠버의 불빛이 얼마나 정답고 따뜻한 지 눈물이 솟아날 지경입니다.

만 30일 만에 우리의 미국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16900킬로미터를 달렸으니 서울서 부산이 425킬로라니 한 달 안에 서울에서 부산을 40번을 간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캐나다에서 일 년을 드라이브하는 양을 한 달 동안에 다 달리고 온 셈이 되었습니다.

열한 달 동안은 집에서 안방 뒷방만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하하 이튿날 아버님은 말없이 차 앞으로 가시더니 같이 큰절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사고 없이 무사하게 달려 준 차에  우리는 감사하였고 울먹거렸습니다.

4개 타이어는 아슬아슬하게 터지기 직전이었는지, 다음날 시내를 나갔다가 빵 하고 터졌습니다.

기름을 채우는 눈금바늘은, 중간이 되면 계속 기름을 채운 탓인지 더 이상 가운데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차를 손 보는데 2천 불 정도를 소비하였습니다.

출발 당시 임신 6개월이었던 아내의 몸은 더 뚱보 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별생각도 없이  준비도 없이 그저 부산 가는 것으로 여기고 떠났던 이 여행은 기적처럼 끝이 났습니다.

나는 미국에 대해 많이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그 긴 여행은 삶의 자신감을 가져 다 주었습니다.

보름을 황막한 대지를 달리고 달려, 만난 나이아가라 폭포의 격차는, 시원하게도 지구의 끝을 보고 온 듯 느낌도 주었습니다. 2시간 걸려 시애틀을 가는 것이, 바로 옆집 가는 것처럼 시시하게 느껴졌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감각이 여행 후에 달라져 버렸고, 밴쿠버의 사람들이 너무 느리게  움직이고  답답하였습니다.

진절머리가 나던 뉴욕이라는 도시가 이상하게 다시 애착이 되어 생각이 났습니다.

사람이 붐비던 곳, 그곳에 무엇인가 숨겨진 보석이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을 찾지 않고 되돌아선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오랜 이민 생활 후에 느낀 미국이나 캐나다에 대한 나의 종합적인 실타래가 풀리는 듯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강인한 개척자가 세워 논 나라입니다.

 

   에브라함 링컨은 게으름은 가난을 낳고 가난은 빈곤을 낳고 빈곤은 자손에게  대를 물린다고 하였습니다.

황야에 라스베이거스를 세우고 러쉬무어 돌산에 위대한 대통령들의 형상을 새겼음을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누가 더 일을 잘하나, 일에 취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전 주민이 잘 살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뉴욕은 생각보다 지저분하였고, 그리고 이들은 땅을 보존하려고 애를 쓰고 있음도

또 땅을 망치는 일도 하고 있음도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하이웨이 상에도   식당과 주유소 등이 아무 불편 없이 여행하도록 철저히 준비된 부유함이 있는 나라,

무서웠던 뉴욕을 제외하고 간섭 없이 한 달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자유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돌면서 이곳에 머물렀던 우리의 이승만 대통령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승만 대통령 학교를 다니고 살기 위하여 그릇을 닦고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우리의 대통령이 왜 배워야 산다고  강조하셨는지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지난  지금의 미국은 많이도 변 하였을 것입니다.

 

1979년 여름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지금 우리는 백발이 되었지만 그저 추억 속에서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