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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너의아버지의 나라는한국

제80장 인종 차별

by 산꽃피는캐나다 2023. 3. 2.

80 인종차별

 

  우리가 2번째 산 낡은 집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고 고급 주택가였다.

오래된 집이지만  경치 값을 보태 주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곳엔 낡은 집들과 새집이 섞여 있었지만  어느 집이나 정원은 아름답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이층 베란다에서 날씨가 좋은 날이면, 멀리 바다건너로 밴쿠버아일랜드의 섬까지 보이는 곳이다.

캐피털 힐!  밤이면 밴쿠버의 야광이  보석이 되어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

우리가 동네에 이사를 하자 옆집 사람이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것을 느꼈다.

동양 사람을 볼 수가 없고  다 백인들이었다.

백인들 사회 속에 동양인이 옆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색깔이 진한사람들이 주위에 이사 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민자이다.

주거 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에서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찾아 이사 온 것 뿐,

옆집에서는 무서운 개를 풀어 놓았다. 우리가 층계를 올라 집으로 들어갈 때면 개가 무섭게 짖어댔다.

가슴을 조이면서 풀어 논 개를 피하여 뒷문으로 살 짝 살짝 드나들었다.

 

   하루는  풀어 논 개가  우체 부를 물어뜯는 사고 가 일어났다.

나이 많은 가엾은 우체 부 아저씨가 우리 대신 개에 물려 잔디밭에서 뒹굴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앰뷸런스가 오고 경찰이 오자 주인은 개를 데리고 들어가 문을 꼭꼭 잠가 버렸다.

이 나라 에서는 이런 경우  법정에 설 때까지는 경찰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경찰은 그대로 가버렸다.

 우리 집 지하실 에서 살던 게리이라는 젊은이가  그렇잖아도 개를 풀어놓는 것을 혼내 준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나는 조용히 지내자고 했으나, 그는 한번 혼을 내줄 것이니 가만히 있으라고 하였다.

어느 날 술이 얼근히 취한 게리가 자기 똥차를 일부러 뒤로 밀어내어 옆집의 새 차를 퍽하고 박아버렸다.

옆집 사람이 뛰어나오고 시비가 벌어졌다.

게리가 소리 질렀다.

"이사를 와서 조용히 사는 사람들에게 개를 풀어놓고 물려 죽일 라다가 불쌍한 우체 부 노인을 물었지요.

그는 술김에 떠나갈 듯이 동 네 방 네가 들으라는 듯 소리를 질렀다.

주인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바라만 보고 서있었다.

“당신 차 조금 받은 것이 대수요?  개 한마리가 사람을 물고 뜯는데, 차는 보험으로 가서 고치면 될 것 아니요?

차 다친 것은  큰일이고 사람 상하게 하는  심보는 대체 무엇이요?” 그는 삿대질을 하면서 해 볼 테 면 하자는 듯 대들었다.

주인은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 뒤로 개를 풀어놓고 우리를 방해 하는 일은 없어졌다.

인종 차별 때문인지?  중국 사람들은 다운타운 중국 동네에서만 뭉쳐 살고 있다.

일본사람들은  백인들과 결혼하여 사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었으나 일본의 경제력 때문인지 동양사람 중에서는 우대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생선공장이나 꽃 농장이나  나무를 키우는 그린 하우스 등을 경영하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대대로 그로서리 가게를 잡고 있다가 하나둘씩 한국 사람에게 팔아넘기고,

모텔사업이나 레스토랑사업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그나마 중국 사람들이 잡아 준 발판 위에서 그로서리 장사가 시작된 것이다.

 

1970년 이민시대 초기에 한국 사람은 주로 집값이 싼 곳,

서울 식품점 주위로 브로드웨이 6가와 7가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 중반기에서 시작된 투자이민자들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투자이민자들은 부유한 코퀴틀람에 정착하였고 코퀴틀람 중심으로 한국 상점이 이루어졌다.

처음 이민 왔을 때 보다 지금 느낌은 세월이 갈수록 인종차별은 점점 희석되어 간다고나 할까?

밴쿠버가 물갈이를 하고 그동안 많이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인종차별은 영어를 잘 알아듣느냐 못 알아듣느냐에 따라서 그 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영어를 잘한다면 우리는 그런 대접에서 쉽사리 피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농담을 다 진담으로 알아듣고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였으니까.

 

 이민자에겐  영어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에는 다른 길이 없다.

영어를 배우기를 원한다면 계속 영어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  어느 날 귀가  저절로 열리는 것이다.

귀가 열리면 의사는 어떻게든 통할 수가 있다. 알고 있는 단어 몇 자와 손과 몸짓을  함께 쓰면 되는 것이니까.

다 같은 이민자이면서, 얼굴 색깔이 희면, 백인이라고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이다.

그 속에서 견디고 살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엔 우리 생각과  아주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옳다고 가르치려고도 하지 말고 다투지도 말고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고 갈 날도 많지가  않다.

자신을  사랑하고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다.

너는 그런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 되니까,

상대방으로부터  속을 썩이지 않으면 나의 세상은 좀 더 즐겁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하니까요.

 

81장 도전의 시작

 

이민생활은 되돌아보니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전의 세계였다.

많은 시련과 고생 속에서도 지루함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생스럽게  선택한 이민 생활에 후회는 없다.

우리는 일속에서 지치면항상 극적인 탈출을 하였다.

그 첫째가 30일간의 미국여행이었다.

두 번째가  알래스카 하이웨이 여행이었다.

아이들이 있었다. 일찍 철이든 아이들, 남매중의 하나가 휴가를 내었다.

우리가 시작한 두 번째 사업에서 여름방학이되면 아이들은 우리가 여행에서 돌아올 때까지 든든히 사업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아마도 이런  여행은 못 하였을 것이다.

이민 생활 중에 용기를 준 그 미국여행기를 적어 보려 한다.

캐나다에서 시작하여 미국의 남부로 남부에서 중부로 중부에서 동부로 동부에서 다시 서부로 서부에서 북쪽의 캐나다로 미국의 20개 주를 돌아본 이 여행은 부산을 자가용으로 한 달 동안에 40번을 내려간 거리이다.

 "아무래도  다시 장사를 시작해야 될 것 같아요. 돈은 어디서 구하지요?"

"집을 다시 잡고 더 빌려 야지요".

"그게 잘될까요."

"생각해 봐요. 우리의 시작은 내가 들고 온 150불과 당신이 들고 온 300불이 전 재산이 아니었소?"

우리는 지금 밤낮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요."

그 300불이 대체 얼마나 불어난 것이요. 백배도 더 넘었어요. 

이젠 이 집을 잡고 많은 돈을  빌릴 수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돌아가신 부모들이  저세상에서 우리를 잘 보살펴주시니까"

" 다시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여행이나 갔다 옵시다."

장사란 일 년 열두 달 365일을 하루에 14시간 정도를 노동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에너지가 보충되어야 한다.

여행이란 신나는 일이다. 나는 휴가가 필요하였고, 아내는 그때 임신 6개월이어서 직장을 쉬고 있었다.

방학이 되어 서울에서 장인이 오셨기에 밴쿠버에서 남쪽 라스베이거스로,

다시 미국 서쪽에서 미국동쪽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뉴욕을 거쳐 처제가 살고 있는  시카고까지 차로  운전을 해서 가자는 것이었다.

 

꿈도 컸고  용기가 있던  젊은 시절, 지금 생각해도  무사고로 그때 살아 돌아온 것이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캐나다 살면서 사방 팔방으로 30일간을 하루에 7시간에서 11시간까지 달리는 길

이렇게 캐나다와 한꺼번에 미국을  달리고 왔다는 소식은 그누구에게도 아직 듣지 못하였다.

무식과 용기가 합하면 참으로 희한한 행동이 벌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