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장 직장생활 결과보고(1972년-1976년)
캐나다는 듣기에 미국보다 직장 사정이 어렵다.
특히 밴쿠버는 학업이 높은 동양인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정부기관의 시청에서 일하는 동양인은 몇 명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만 나온 백인들은 좋은 곳에서 자랑스럽게 돈을 많이 받고 일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장을 소개소개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
인과 관계가 없는 소 수민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란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다.
나는 열심히 일하여 교수들로 인정을 받았으나 올라가고 싶은 자리에 늦게 들어온 백인이 채워지기에 ,
5년 만에 그만 두기로 결심하였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밥을 먹기 위하여 직장을 다니는 것 뿐 이였다.
약사로 다시 시작하는 것도 밴쿠버엔 실습할 자리도 없어 먼 토론토로 실습이 정해졌다.
그 실습기간이 걸림돌이 되었다. 태어난 아이 때문에 먼 곳에 갈 수 없다고 아내가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친구들이 거의 다 직업을 찾아 토론토로 아니면 북쪽으로 떠나갔는데 나는 밴쿠버에 남아있었다.
혼자서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적은 월급이 아니었는데, 몇 년 후에 보니 장롱하나 산 것과 텔레비전 사는 것으로 끝이 났다. 전연 저축이 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가난 속에서 살 수는 없다. 돈을 벌 수 없다면 한국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경제적으로 발전이 필요하다.
다행으로 우리가 죄 꼬리만큼 다운 페이를 하고 산 아파트는 6개월 만에 6000불이 올랐다.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결국은 부동산이라는 확신.
우리는 아파트를 팔고 돈을 좀 더 벌기 위하여 땅이 있는 작은 집을 사기로 하였다.
돈을 빌릴 수 있는데 까지 빌려서 밴쿠버에서 작은 집 36000불에 1 베드룸 집을 샀다.( 2019년에 똑같은 집을 사려면 땅값으로 35배를 주어야 하는데 )
꿈이 생겼다. 처음으로 집을 샀기에 흥분하였고 집을 고치는데 온 정력을 다하였다.
우리는 이 집을 2 베드룸으로 고쳐서 파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2 베드룸만 된다면 우리는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런 희망에 벅차 있었다.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해선 자기 사업이 가장 빠를 것이다.
아내는 그대로 직장 다니고 나는 돈을 벌기 위하여 장사를 할 결심이었다.
내가 정작 그만두겠다고 하자, 교수님 집에서 교수님 부부들과 참석하여 멋진 파티도 해주고 섭섭하다고 하였다.
나는 돈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유명한 그 맛난 불고기 파티로 대접하였다.
5년간의 나의 직장생활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75장 장사의 첫 경험(1977년)
나는 집을 담보로 하여 돈을 꾸고 미국에 의사로 이민 온 처제로부터 돈을 빌려서,
권리금과 물건 값을 다 합쳐서 14000불에 중국 사람이 하던 가게를 사게 되었다
(그때는 큰돈이었으나 지금은 현대 중고차 값 정도)
1977년이었다. 그 당시 한국사람 중에서 최초로 장사에 손을 덴 셈이다.
버스 정류장이 옆에 있는 번잡한 조그만 가게에선 담배와 밀크 껌 과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바쁘게 팔렸다.
오래된 집 건물, 앞은 가게이고, 뒤에는 방과 화장실 부엌이 그런대로 붙어있었다.
낡고 지저분한 건물이어서 처음에는 집에서 출퇴근을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장사 시작한지 며칠이 안 되었는데 문은 닫힌 그대로인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인가 허전한 것
밤사이에 도둑이 들은 것 같았다. 사실이었다. 좀도둑이었다.
우리는 밤사이 없어진 물건들을 챙겨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경찰은 우리에게 한 가지 묘안을 주었다.
설 합 속에 돈을 5불을 보이게 남겨두고, 그 돈 발행 번호를 다른 곳에 적어 두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경찰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 아침에 와보니 그 돈도 없어지고 물건도 다시 없어졌다.
그러나 앞문은 닫혀 있었다. 들어왔다면 창문이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돈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을 잡을 생각이었다.
우리는 순경이나 된 것처럼, 흥분하여 하루 종일 일일이 가져오는 동네 사람들의 5불짜리 돈을 점검하였다.
다음날 저녁이 되었다. 뒷집의 노랑머리 사내 꼬마가 와서 밀크를 사고 5불짜리를 내밀었다.
5불짜리가 바로 그 번호였다.
도둑은 바로 뒷집. 날마다 야금야금 밤이면 먹을 것을 훔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열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꼭 참고 이튿날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그 집에 들어가서 수색하였고 아무 소식이 없었다.
저녁이 되니 그 집 여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자기를 의심한다고 생트집을 잡았다.
여기에 아내 가 흥분하였고 우리가 한꺼번에 소리를 질렀다.
엄청나게 놀란 여자는 빠르게 도망가 버렸다.
할 수 없이 집에 가지 못하고 뒷방을 청소하고 낡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잠자리가 편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오래된 건물이라 가스가 새는지 아내는 머리가 아프다고 아침이면 머리를 싸매고 다녔다.
아내는 버스를 타고 직장을 출근하였고 나는 4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비좁은 가게에서 하루를 보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변소 가는 것도 어렵고 제대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힘든 일이었다.
아들과 나는 빵 조각을 먹었고 아내는 하루 종일 지쳐 돌아와서 밥을 지었다.
우리는 교대로 저녁 늦게까지 그곳을 지켜야 했다. 우리는 뒷집 사람들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몇 달이 지나갔다.
우리가 가게 문을 닫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바로 집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전쟁 경험이 있는 나는 아내보고 바닥에 그대로 누우라고 하였다.
우리는 바닥에 누웠는데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경찰이 앞길로 소리를 윙윙거리며 다녔고 뒷집을 에워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경찰은 확성기를 대고 소리를 내었다.
"총을 버리고 나오시오! 총을 버리고 나오시오!"
날이 훤할 때까지 이따금 총성소리가 울렸고, 결국 경찰은 굴뚝으로 기어 올라가 그 남자를 잡아내었다.
마약 중독자. 여자가 집을 나가자 사방에 총을 갈기면서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우리 쪽을 향해 방아쇠를 갈기고 있었다.
우리는 6 25도 아닌 캐나다의 사격 전쟁에서 살아났다.
마약이 필요한 그들은 그 후에 보석상을 털다가 잡혔다.
그 여자는 경찰을 죽이는 엄청난 사고를 저질렀다.
마른 얼굴에 병색이 가득했던 젊은 여자, 이젠 사람을 죽여 신문지상에 얼굴을 도배하고 나선 것이다.
우범지대를 미리 알지 못하고 시작한 장사의 첫 경험이었다.
그렇게 좋아보였던 밴쿠버의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 속에 숨어있었던 얼룩진 밤의 그림자를 처음 밟게 된 것이다.
76장 알레르기라는 병
내가 약대를 다닐 때 알레르기라는 병에 대해서 배운 기억이 있다.
북 아메리카의 풍토병으로 록키산맥 주변에서 많이 앓고 있는 병, 내가 그 병으로 그렇게 고생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람은 환경이 좋고 숨을 쉬여야 사는 법이다.
이 장사 집은 버스들이 다 모이는 버스종점에 있었다.
밤낮으로 길로 다니는 차 먼지와 오래된 방의 먼지 속에서 생활이 계속되자 하루는 감기처럼 앓기 시작하였다.
기침은 낳지 않고 계속되었다. 보통 기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창자를 솎아 내는 듯 고통스러웠고 얼굴은 퉁퉁 부었고 나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견딜 수 없어 전문 의사를 찾았다.
"알레르기가 너무 심하니 이약을 먹으세요.
그리고 체질이 바꿔야 되는데 어쩌면 5년에서 10년 이상 고생하면서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완전히 환경이 다른 아리조나 같은 곳으로 옮기면 그날로 좋아지는 병입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었다. 장사는 벌려 놨는데 기침 때문에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지옥이 되었다.
그래도 나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내 대신 일을 더하자 허리가 끊어지게 아프다고 하였다.
오래된 집에서 쇠어 나오는 가스 냄새로 편두통을 앓고 있었다.
우리는 쉬기 위하여 가끔 문을 닫았고, 장사는 잘 되었지만 몸이 견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가 시작한지 꼭 2년 3개월 만에 기침 때문에 장사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모은 돈이 처음 시작할 때의 돈을 다 갚고도 충분한 돈을 가지게 되어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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