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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너의아버지의 나라는한국

제73장 1973년 아내의 일기중에서

by 산꽃피는캐나다 2023. 2. 25.

1973년 아내의 이민일기중에서

 

잊을 수 없는 1973년 1월 19일 은  슬프게 눈물짓는 어머님과 할머니,

아버지와 가족을 남겨놓고 남편을 찾아  이민 길에 오른  날입니다.

미화 200불은 지갑에다 넣고 100불을 가방을 뜯고 숨겨서  갈 정도로 한국정부가 외화를 필요로했습니다

 

***1973년  1월***

 아파트 앞에는 유리창이  전부이고 발코니가 있습니다.

그리고 철로길이 보이고 그 앞에 바다가 펼쳐 있습니다.

흰 새들이 끼억 끼어 울면서 푸른 바다 위로 날아다닙니다.

남편은 언제 일어나서 직장에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여자만 혼자 방안에 있습니다.

여자는 유리창 앞에 앉아서 향수병에 걸려서 아침에도 울고 점심에도 울면서  저녁에 남편이 오면 울음을 그 칩니다.

어째서 이렇게도 많은 눈물이 쏟아지는지  같은 경험 있는 사람 있으면 연락 좀 주시지요?

***

 어머님 오늘이 보름이 되는 날 입니다.

저는 오늘 짐 보따리 하나를 싸들고 시애틀에 사는 동생 경숙이에게 가렵니다.

며칠 거기 가서 생각해 보고 서울로 갈 것인지 이곳으로 올 것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려 합니다.

남편이  한국으로 나오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요? 그것은 나중에 생각할 문제이지요.

 

  미국국경을 넘어가는데 국경에서 내가 돈이 얼마나 있냐고 물었습니다.

30불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디를 가느냐고 또 물었습니다.

시애틀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여동생에게 간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있을 것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한 10일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귀찮게 묻던 국경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이 10일을 지내려면 300불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30불밖에 없으니 집으로 가시오" 하면서 그레이 하운드 버스를 다시 태워서 밴쿠버로 보냈습니다.

***

  남편은 저에게 이사 가자고 하였습니다.

이곳은 너무 세가 비싸니 싼 곳을 찾아보라고 하면서 직장에 갔습니다.

저는 동전 몇 잎과 지도 한 장을 가지고 버스를 타고 집을 구하러 돌아다닙니다.

전화로 한마디 씩 하면서 어떤 땐 알아듣고 어떤 땐 못 알아듣습니다.

전화소리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떨립니다.

***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은 여호와의 증인 성경공부를 가르쳐 주는 할아버지부부 클레이톤과 헬렌뿐입니다.

할아버지는 마음이 착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지신 분입니다.

할아버지가 저의 마음을 아시고 싼 집을 구했으니 가 보자고 하여 따라갔습니다.

길 코너에 있는 옛날 집이었습니다.

50불은 절약할 것 같기에 이사하기로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차를 가져오셔서 짐들을 같이 옮겼습니다.

저는 불고기를 구워서 대접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소파가 없어서 앉을 데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가난합니다. 그리고 저는 부끄럽게도 임신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젠 죽으나 사나 이곳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일전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싸구려로 파는 중국 촌으로 과일이며 고기를 사러 다닙니다.

일주일에 15불에서 20불 정도밖에는 시장 보는데 소비할 수가 없습니다.

***

 옮긴 집이 아파트가 아니고 개인 집인데 추어서 얼어 죽겠습니다.

할 수 없이 전기 히타 중고를 샀습니다. 이젠 내 인생에 새것을 사는 일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서울 메디컬 센더에서 일을 하고 명동에 단골집 엘레강스를 다니면서,

친구 S와 최신형 맞춤복만 입던 최윤자는 길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돈을 모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어머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내주십니다. 나는 편지 답장 쓰는데도 인색해졌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편지 쓸 마음이 나지 않습니다. 용서하셔요.

***

 작가 버트란드 럿셀 씨의 글 속에서 이런 것을 읽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가난하지만 그 가난을 즐기고 이겨나가는 과정이 삶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시애틀에서 여동생 경숙이가 왔습니다.

내가 사는 것을 보고 눈시울을  적시면서 떠나갔습니다.

적어도 춥지 않은 곳으로 가야지 여기서 애를 키울  수 없을 것이라고  거듭 당부하면서......

한 달이 지났는데 돈을 저축하기는커녕 전기 값을 내고 나니  고생만 하였습니다.

다시 이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엔 전기세가 포함된 것으로 가야 만 하겠습니다.

***

우리는 차를 중고차를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차를 구하는데 차에 대하서 아는 친구가 도와주었습니다.

차는 폭스바겐으로 차 중에서는 작은 방게차입니다. 이렇게 기쁠 수가 있나요.

한국에서 따온 국제 면허증으로 부릉 브릉 밤에 나가서 연습을 합니다.

드디어 남편은 운전 면허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차를 닦고 닦아서 광채를 냅니다.

이중고차가 이 세상에서 나만 가지고 있는 새 차로 혼돈이 되고 있습니다.

 신나는 달밤입니다. 그동안 모아 두엇 던 750불 정도를 차 값을 치르고 나니 다시 우리는 빈 털털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추운데 걸어서 직장을 안 다녀도 좋으니 살 판이 났지요.

*** 

 차가 며칠사이 고장이 나서 길가에 섰습니다.

난감한 일입니다. 재수가 없습니다.

차 주인이 원망스럽습니다.

***

남은 돈을 다 긁어서 차를 고치고 나니 차는 굴러가는 데, 먹을 것을 더 줄여야 할 판입니다.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참 힘들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남편은 다행히 u. b. c. 원자력연구실에서 교수들을 돕는 일자리를 얻어 다니고 있습니다.

14명이  시험을 보았는데 4명이 합격이 되어서 열심히 일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는 생각보다 기본적인 생활비가 많이 들어 혼자 벌어서는 힘든 곳입니다.

***

정부에서 가르치는 영어학교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영어도 가르쳐 주고 다니는 동안 돈도 주는 학교입니다.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학교에 나가서 한국사람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 나의 여고 선배의 어머님과 또 K라는 젊은 여인과  미스터 S라는 분입니다.

영어를 배우고 한국 사람을 만나니 이젠 살맛이 진해집니다.

***

3번째 이사를 이젠 무거운 소파까지 짊어지고 하였습니다.

돈 몇 푼 절약하려고 최윤자 고생이 말이 아니지요.

그러나 이렇게 사는 것도 이젠 신이 납니다. 아아! 그러나 또 이사를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값이 싼 대신에 변소는 같이 쓰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연이 복도를 지나다가 옆방이 문이 열려 들여 다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저 사람과 변소는 하루도 못쓰겠네!  빨리빨리 이사 가자고 남편을 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

  4번째 이사는 참 다행입니다.  주인한테 남편은 나가겠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모양입니다.

주인이 아래층 사람이 나갔으니 아래층으로 옮기면 변소를 혼자 쓸 수 있다고 하여서,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같은 가격에 어쨌든 신나는 달밤입니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텔레비전까지 보라고 가져 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사하면서 고마운 주인에게 텔레비전을 돌려줄 가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변하여 사고파는 신문에 광고하여 30불에 팔았습니다.

그것이 두고두고 미안하였습니다.

***

  u.b.c. 대학원에 입학하려고 전 서류를  이것저것 요구하는 데로 다 보냈는데 마지막 편지를 받았습니다.

내년에 다시 보자는 것이군요. 나는 거울에 있는 나를 보고 이야기했습니다.

너  힘든 약사 공부에  지쳐  더이상 공부는 싫은데 참 잘 됐구나!

***

  사랑하는 어머님

시애틀에 있는 동생이 저 사는 실정을 어머님께 이야기한 모양이지요.

어머님이 보내주신 솜이불을 들고 와서 추운 데서 애를 낳지 말고 몸조심하라 하였습니다.

어머님! 저의 눈에 무엇이 들어간 듯합니다.

어머님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저는 보내주신 따뜻한 솜이불 속에 누워서 기쁘게 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

 우리는 신문광고를 들어 보고 있습니다.

새 아파트 방 하나 있는 것은 돈 몇 푼을 내고 한 달에 250불을 20년 내는 것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희망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복덕방을 만나서 은행에다 빌릴 돈을 신청하였습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는지 알려준다 하였습니다. 자격 미달이라고 남편은 심히 실망하여 돌아왔습니다.

월급이 더 많던지, 아니면 5000불 정도는 처음에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

영어학교 사무실에서 부르더니 저는 4개월 만에 나가라고 합니다.

오늘은 직업 잡는 법을 하루 종일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6개월이라는 데 요즈음 엔 되는 일이 없습니다.

***

저는 버스를 타고 직업을 구하러 혹시나 하여 약국을 돌아다녔으나 눈치만 먹고 지쳐서 돌아왔습니다.

*** 

오늘도 버스를 타고 호텔이 많은 시내로 갔습니다.

각 빌딩으로 들어가서 직업을 구한다 했는데 홀리데이 인 호텔에서 노동 직업을 구하였습니다.

방 청소를 하고 침대보를 가는 것인데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는 힘든 일입니다.

이렇게 돈 벌기가 어려워서 어떻게 살아 나가겠습니까?

일주일 만에 그것도 직업이라고 못한다고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일한 돈을 받아보니 힘이 솟아났습니다.

***

 저는 용기를 잃지 않고 다시 버스를 타고 나갔습니다.

이번엔 백화점마다 들렸는데 우드워드 백화점 커피 점에 자리가 있었습니다.

인터뷰에서 합격을 하고 2층으로 신체검사 과로 보내졌습니다.

거기서 제가 임신한 것이 알려졌습니다.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

 기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이 다니는 직장의 교수님이 언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느냐고 물은 모양입니다.

남편은 이러이러해서 할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하였답니다.

교수님이 같이 은행에 가서 얘기를 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하였다 합니다. 얼마나 고마운 분입니까......

남편은 일을 성심껏 하여서 교수님의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수님의 도움으로 새 아파트를 사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남편을 신임하고 아파트를 사도록 보증을 서주셨으며,

6개월 동안에 2번이나 월급을 특별히 올려주게 추천하셨습니다.

 *** 

 우리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6개월 동안에  돈 좀 저축하려고 4번을 이사를 하였고 5번째에는 내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짐도 많아져서 조그만 차로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는 이사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새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은 꿈  만 같습니다.

시어머님, 어머님, 아버님께 이 집을 보여드리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지도를 펴놓고 시어머님 어머님 아버님께 큰절을 올렸습니다.

나는 이 따뜻한 곳에서 아기를 낳고 키우게 되겠지요.

***

 하루에 5시간 정도 일하는 툴 타운(Tool Town)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별로 힘들지 않아서 내가 배가 불러져도 버틸 수가 있습니다.

다행히 이곳 사람들은 배 뚱뚱이 나를 좋아합니다.

***

 임신휴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중고품 타이프를 한 대를  사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쉬는 동안 우리는 신문을 보고 아기침대며 유모차들을 사러 다녔습니다.

새로 페인트를 칠해서 새것으로 만들지요.

이제 산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고 돈이 없는데 익숙해져서 이곳저곳 잘도 다닙니다.

스탠리 공원을 가서 이곳저곳 돌아봅니다.

우리는 밴쿠버아일랜드도 가보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을 때 캐나다에 다녀온 동생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사다 준  달력에는 호수의  물 색 갈이 희한한 옥색이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사진색깔이 잘못 나온 것인지? 궁금하여 찾으러 가 보아야만 합니다.

***

 부지런히 타이프를 연습하여서 50자 정도를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이 탓인지 사경을 헤 메며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울보입니다. 울보가 아이를 낳고 외롭고,

어머니가 그리워서 병실에 누워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님! 사내아이를 낳아서 이렇게 좋은데 이 쏟아지는 눈물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시어머님! 어머님! 아버님! 할머님! 모두 기뻐해 주세요.

 ***1974년***

 저는 편안하고 따뜻한 아파트에서 아이를 잘 키우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정성 어린 편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빠짐없이 배달되지요.

이젠 처음 몇 귀 절은 보지 않아도 제 머리가 어머님을 닮아서 외울 수 있습니다.

어머님은 꼭 같은 말 만 쓰니까요. 아버님이 한성이라 이름을 지어 보냈으니 한국의 별로 잘 키워 보겠습니다.

 저녁엔 키펀치를 배우러 열심히 밤 기술학교를 다닙니다.

저의  체질상 노동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쉬운 일을 찾아보려 하니 마음먹고 투자한 돈입니다.

돈은 정부에서 보태주고 90불 을 지불합니다.

***

 아이 낳고 정부에서 대어 주던 돈이 끊어졌습니다.

키펀치학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직업을 찾으러 내일부터 또 나가 야 되겠습니다.

*** 

  신문을 오려 들고 버스를 타고 시내에 사무실 직업을 소개해 주는 곳을 찾았습니다.

밴쿠버에서는 가장 크고 멋진 빌딩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곳저곳 몇 군데를 들렸으나 실망입니다. 몇 마디 말을 걸어보고 걱정스러운 눈치입니다.

할 수 없지요. 이미 짐작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직업을 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리고 다닙니다.

***

 잡았습니다.

제가 은행에 직업을 쉽게 잡은 것은 그동안 키펀치를 배운 덕분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무엇이든지 배우고 돈을 투자를 하여야 결과가 빨리나 옵니다.

돈도  은행에다 넣어야 이자가 나오 듯이요. 

 보내주신 식구들의 목소리를 테이프로 듣자니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내립니다.

어머님 아버님 우리 열심히 일해서 잘살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특히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미안하고 더 보고 싶습니다.

할머니! 제가 보낸 값싼 스웨터를 좋아하시고, 그것만 입으신 다니 너무나 기쁩니다.

보고싶은 할머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