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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너의아버지의 나라는한국

제57장 무릉도원의 꿈

by 산꽃피는캐나다 2023. 2. 15.

라이온스의 정상 유화

57장 무릉도원의 꿈 돼지

 

 군대 갈 때 팬츠에 넣어준 돈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돈을 아버지 앞에 내놓았다. 아버지는  받지 않으셨다.

나는 학교로 가기엔 이미 학기가 시작되었기에 다음 해로 미루고 그 돈을 가지고 시골 사귀 동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아버지는  땅을 계속 사들여서 3만평의 땅에 집이 두 채가 그 속에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에 무릉도원을 이루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무릉도원이란? 중국의 위대한 도원의 이름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땅에 과일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들 것이다.

작은형과 같이 몇 년 전에 줄줄이 심어 놓은 3천 평에서는  앵두나무 자두나무가  잘 자라고 있었다.

나무들은 물만 먹고도 생생한  꽃을 피우고 있다. 큰 밤나무도  줄을 붓 들고 열을 지어 더 많이 심었다. 

나무의 잎사귀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나무들이 잘 자라는 것은 기쁨이다.

나무들이 나를 반기고 있는 것처럼. 아주 오래된 터주대감 나무속으로 새들도 둥지를 틀고 주둥이가 노란 애기 새들도 울고 있었다. 나는 밤나무 속을 돌아다니다가 아직도 남아 있는 넓은 땅을 보았다.

아침신문에서 본 돼지 농장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래 내손으로 돼지를 한번 키워보자! "

대만에서는 한국에서 파는 돼지를 대량으로 수입해가고 있었다.

농촌은 돼지 키우는 붐이 일고 있었다.

다음 해 학교 등록일 까지 할 일 없이 기다리기는 시간이 길고 나는 너무 젊었다.

일꾼을 불러서 우선 나무로 막사를 짓자고 하였다. 내가 가진 돈으로  시장에 가서 새끼돼지를 50마리를 사 왔다.

그러나 귀여운 돼지새끼가 그냥 잘 클 줄 생각한 것이 큰 오산이었다.

이 돼지새끼는 하루 종일 먹어대었다. 풀을  뜯어다주고 밭의 감자로는 어림도 없었다.

더구나 돼지는 날마다 더 많은 것을 먹어대었고 나는 조바심이 났다.

생각다 못해 동두천 미군부대에 가서 미군들이 먹고 남은 음식 쓰레기, 꿀꿀이죽을 드럼으로 가져왔다.

그래도 모자라 할 수 없이 아버지에게 돼지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서울 역 생선가게 뒤에서 내장 버리는 것들을 기차로 내려오게 하셨다.

신설 동 양조장 술 찌개미를 청량리 역에서 가져오게 하셨다.

아버지가 협조하기 시작하자  수백 마리가 되었다.

 나는 열심히 책을 보고  겨울에 먹일 것을 궁상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앤 씨랜지라는 것이었다.

겨울에 동물이 먹는 김치를 담는 것인데 책에서 배운 데로 땅을 깊게 파내고 사방을 콩크리크 벽으로 막았다.

동네사람들은 잡풀들을 가져왔다.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풀 위에 소금을 뿌리고 쌀 등겨를 섞어서  밟았다.

또다시 풀이 두껍게 한 켜가 다시 들어가고 소금을 뿌리고 쌀 등겨를 섞어 넣고 다시 밟았다.

이렇게 계속하여 꼭대기기까지 쌓았고 가마니와 플라스틱으로 위를 덮었다.

그 위에 흙을 덮어 공기가 통하지 않게 동산을 만들었다. 겨울이 되었다.

그곳을 열고 보니 풀이 그대로 생생하였다. 그 냄새가 얼마나 신선한지  먹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코로 그 냄새를 들이켜자 안심이 되었다. 돼지들은 맛있게 먹어 대었다.

내가 담근 채소로 맛있게 먹는 돼지들을 보는 것만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돼지 수자가 많아지자 다른 방법이 필요하였다. 나는 발동기와 분쇄기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울 역에서 서대문 쪽으로 가면서 다리가 있었는데 밑으로는 기차가 다녔다.

우회전을 하여 남대문 쪽으로 가면서 기계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거기에서 방앗간에서 쓰는 발동기 하나를 구입하였다.

발동기를 돌리고 분쇄기를 사서 피대로 연결시키고 쌀 왕겨와 콩 껍질 옥수수 대 잡풀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넣고 분쇄시키기 시작하였다. 가루를 만들어 부대에  넣고 차곡차곡 싸놓았다.

그때는 휘발유 사기가 어려웠는데 발동기를 돌린다는 소문이 나자 군인들이 트럭을 가지고 왔다.

용돈이 필요하다며 자기 차에서 휘발유를 꺼내고 있었다.

내가 겁을 내자 돈이 꼭 필요하다며 휘발유를 주고 돈을 받아갔다.

나는 돼지 먹을 것을 만드느라 분주하였다. 

이때 의정부 군수로 계시던 분이 4H 구릅 학생들을 데리고 돼지 사료 만드는 방법을 배우러 왔다.

나도 잘 모르는 것을 설명하는데도 아이들은 신기한 듯 귀를 귀 우리고 들어 주었다.

첫 경험으로 내가 확실히 알아낸 것이 있다.

돼지는  잠자는 곳과 운동하는 곳을 따로 만든 것이 실수였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돼지에게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았다.

돼지는 자구 먹고 자고 먹고 해야지 근수가 많이 나갔다.

내가 키운 돼지는 운동량이 많아 비개가 없고 근육만 있다고 소문이 났다.

덕분에  잘 팔린 것은 사실이지만 수익이 적었다.

 

58장 돼지를 살리는 일

 

 고구마는 온상에서 키운 것이 턱도 없이 모자랐다. 고구마를 밭에 심어야 하는데 싹이 문제였다.

덕정 리 장에 가서 고구마 싹을 사들였는데 바닥이 나버렸다

."수원에는 아직 고구마 싹이 많다는데.....그래요? 그럼 내가 아침 일찍 수원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사 와야지요."

"거기가 어딘데 자전거로  갔다 온단 말이요?"

"글쎄요,  200리쯤 되니까 왕복 400리 길은  될 것이요.

길도 좋지 않은데 400 리 길을?

자전거로? 어림도 없습니다.“

"허나 어찌하겠습니까? 하루가 급한데......, "일하는 아저씨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기차로 가시오"."그것도 생각해봤는데 기차를 내려서 시장까지 가는 것도 또 가지고 오는 것도 더 복잡하게 생겼습니다. “ 차라리 자전거로 갔다 오겠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닌데"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어려서부터 자전거는 잘 탔으니 해 보겠습니다."

어쨌든 나는 고구마 싹이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12시 전에 영천에 도착하였다.

다시 큰길로 한강을 넘어가다가 샛길로 가기도 하고 하여 몇 번의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드디어 수원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고구마 싹을 사서 잔뜩 자전거에 실었다.

다시 타려고 다리를 들자내 다리가 들려지지가 않았다.

내 체력의 한계를 넘어선 것일까? 처음부터 용기는 좋았는데 더 이상 내 다리가 아니고 막대기 다리였다.

나는 가까운 기차정거장까지  간신히 자전거를 끌고 갔다.

금방 필요한 일부는 내손에 들고 자전거와 나머지는 짐으로 묶어서 붙인 뒤 그 기차를 올라탔다.

아저씨들은 하루 만에 그 긴 거리를 갔다 왔다고 기뻐하였다.

이것은 내 생의 최초의 도전이었고 반은 승리를 한 셈이다. 

이튿날 일꾼 아저씨들은 기차역으로 가서 고구마 싹을 가져왔고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다 심었다.

고구마 넝쿨 잎사귀는 나풀대며 뜨거운 여름 밭을 소리도 없이 덮었다.

나는 후에 고구마 잎 넝쿨은 다 걷어서 엠시린지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나는 고구마에 주려고 동두천 공중변소에서  똥 마차를 끌고 오게 하였다.

하필이면 그날이 장날이었던가?

그 동네 구장에게는 어여쁜 딸이 있었다.

구장님은 신나게 신랑감인 나를 보러 딸을 데리고 오신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그날 너를 찾아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였냐고 내게 물으셨다.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어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시었다.

그들은 동네 입구에서부터  심한 똥 냄새로 선이고 무엇이고 그냥 웃고 달아났을 것이다.

이래서 나의 처음 맞선은 소리도 없이 막을 내린 것이다.ㅎㅎㅎ

 밭에서 자란 고구마는 그 수확이 동네사람들과 나누어 먹고도 100 가마가 넘었다.

이제 100 가마는 내가 사랑하는 돼지 몫이었다. 땅 구덩이를 크게 파기 시작하였다.

미루나무를 잘라서  바닥에 여기저기 깔았다. 가지는 가로 세로로 질러서 쌓고 아래로는 숨통을 만들었다.

가마니를 덮고 앞으로는 입구를 만들었고 뒤쪽으로는 숨구멍을 내었다.

고구마를 다 넣은 뒤 가마니를 덮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두었다.

 돼지를 키우는 일, 돼지를 먹이는 일은 정말 힘든 노동이었다.

그러나 이 노동이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삶의 용기를 내게 주었는가?

산다는 것은 의욕이다. 산다는 것은 경험이다. 산다는 것은 쉬지 않고 깨어있는 것이다.

언제나 편하게 쉬고 있는 삶, 나는 처음부터 그런 삶에는 흥미가 없었던 것일까?

살아있는 동안 꾸준히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

움직이는 순간순간에 나의 행복이 그 속에 빛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