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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너의아버지의 나라는한국

제56장 한신장군

by 산꽃피는캐나다 2023. 2. 13.

56장 한신 장군

 

 군력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씨는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젊은이들에게 구세대를 정리하고 신선한 정치를 해줄 사람으로 다가왔다.

그는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모든 일에 당당한 모습을 보였고  농촌에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다.

대통령 부인, 육 영수 여사, 키가 큰 한복을 즐겨 입던 영부인의 모습은 지금까지 아름답고 안타까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1986년도 육 영수 여사는 총탄으로 쓰러지기까지  국민들과 같이 호흡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이승만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는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였다.

육영수여사는 활동적으로 국민들의 심정을 그대로 읽으려고 마음을 다하였다.

실로 유영수여사는 진실한 국모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박대통령의 연설에 동석하였다가 하였다가  문세광의 총탄에 운명하셨다.

비운에 떠난 아련한 국모를 생각하며 국민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재임하려는 유신에 대한 반대데모가 열기를 띠고 있었다.

일본과의 불합리한 협정에도 학생들의 데모가 들 끌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정부는 데모하는 자들을 모두 군대에 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무더기 수자의 친구들이 영장을 받았고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 당시 나는 의대를 선택하지 않은 문제로 아버지와 단절을 한 때였다. 잘 되었다!

나는 속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나도 아버지도 서로 보지 않으면 마음이 편 할 테니까.

나는 몸이 바짝 마르고 약한 편이었고, 밤송이로 거의 실명하다시피 한 눈 때문에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군대에 보내는 것이 마음이 아프셨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신체검사엔 을종으로 나왔고 나는 군대를 갈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어머니는 어디에서 들었는지 돈이 있어야 한다며 속 팬츠에 돈을 챙겨 넣어 주고 재봉으로 그것을 잘 박아주었다.

 1200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서대문 지구에서  영장을 받고 나간다고 하였다.

떠들썩한 기차는 젊은이들의 소음을 싣고  천안에 이르렀다.

천안 역을 바라보며 심난하게 창가에 앉았는데 벌써 저녁하늘에 별들이 여기저기 솟아나고 있었다.

나는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고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창가로 호두과자 장사들이 손을 내밀고 "호두과자요! 천안 호두과자가 있어요!

"하고 상자를 들고 매번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는 호두장사로 어둠은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그러자 창가에 앉아 있는 나에게 호두를 사달라고 여럿이 돈을 내밀었다.

"여기 4상자요?"

나는 돈을 모아서 호두과자를 사려고 구겨진 돈을 호두장사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런데 돈을 받자마자 녀석은 쏜살 같이 반대방향으로 달려  것이 아닌가?

나는 멍청하게 소리도 못 지르고 쳐다만 보았다.

기차가 떠나기 시작하였고  나는 돈 준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어이가 없었고, 그때 기차가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뛰어나가 한대를 패 주었을 것이다. 

울분 속에서 기차는 논산에 도착하였다.

기다리고 있던 대형 트럭에 실려 우리는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 새끼들아 너희들 서울에서 온 개새끼들이지?"

그 병사는 서울에서 온 훈련병에 이상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였다.

그때는 겨울이었는데 이유 없이 추위 속에서 내리자마자 그대로 두들겨 맡기 시작한 것이다.

훈련받기도 전에 맞아 죽겠다고 한 놈이 소리 지르자,

"뭐가 어째?" 하면서 그놈을 더 두들겨 패기 시작하였다.

 그때 자기소개를 하던 친구로는 고대를 나온 르네상스에서 디스크자키를 하던 구 씨가 있었다.

명동 우체국 본사에서 일한다던 연대를 나온 임씨가 있었고, 미국에서 온  장관의 아들도 끼어 있었다.

며칠 후에 미국에서 온 장관 아들은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우리는 그 이상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이유 없이 잠도 안 재우고 때리는 일은 하루에 서너 번씩 일어났다.

다들 비실비실하는데 고대 디스크자키가 다른 막사를 갔다 오더니 돈을 주어야 안 때린다는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래?"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한 훈련병이 비싼 목도리를 걸고 있었다.

다른 훈령 병이 그 훈련병에게 다가가 목도리를 손가락 사이에 끼어 돌리면서 말을 돌렸다

."내가 알기론 이 목도리 때문이다. 훈련관이 매 때리는 동안 네 목도리만 노려보고 있었어.

"다른 훈령 병도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그 떡 거렸다.

"그래!"

그는 심난한 듯 망설이다가 눈치를 보면서 목도리를 벗어놓았다.

다른 훈련병이 말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돈이라도 내놔야지!"

"아무래도 돈을 걷어주는 것이 났겠어!"

"할 수 없지 뭐,  맞아 죽는 것보다......, "

"제길 할!"

 첫날, 말 한마디 했다가 훈령 병에게 얻어맞은 친구가 이미 허리춤에서 돈을 꺼내고 있었다.

나는  숨긴 돈을 꺼내러 화장실로 갔다. 내 뒤로도 여러 명이 화장실로 주르르  찾아 들어왔다.

화장실에 위쪽은 칸이 비어서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앞쪽에서도 팬츠에 숨겨둔 돈을 꺼내고 있었다.

이빨로 파드닥하고 물어뜯는 소리가 났다.

“너도 꿰매 줬냐?”

“그래 재봉으로 주머니를 만들고 박아줬다.”

“하 하 어째 어머니들은 다 똑 같으냐 ”

후 후 우리는 서로 통하는 마음이 되었다.

우리는 변소 간에서 돈을 뜯어내면서도 웃었다.

돈 몇 푼을 들고 막사로 돌아오니   그 훈련병이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들어올 훈련병 수자까지 세고 있었는지  돈을 다 걷어들고 대장이나 된 듯 활개를 치며 나갔다.

반시간이 지나자,  대접을 잘 받았는지 신바람이 나서 돌아왔다.

“이 제 좀 나아지겠지!”

“ 더러운 세상이다!” 누군가가 쓴웃음소리를 내었다.

 그 후부터 매는 며칠간 없어졌다.

5일 후에 7중대 2소대로 배치가 떨어졌다. 이틀이 지나면  나는 그곳으로 갈 것이었다.

그곳에서 훈련이 끝나면 국방부 정보과로 발령이 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훈련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우리가  길가를  뛰는데 영병 장에 집합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뛰고 뛰어도 몸이 약하여 맨 꽁지를 면치 못하였다.

“빨리 뛰어! 뛰어!” 소리 지르는 병장의 카빈총 개머리로 한대 얻어맞았다.

그리고는 그는 발길로 폭하고 사정없이 내 배를 걷어 찾다.

나는 길옆에 있는 작은 개천으로 폭삭하고 주저앉으면서 빠져버렸다.

일어나질 못하고 비실거리는데 그때 지프차 한 데가 지나갔다.

군 병장은 차렷하고 소리를 높이고, 지프차가 지나간 뒤 한대를 더 얻어맞고 나는 간신히 기어 나왔다.

"영병 장으로 집합!"

훈련병들이 다급하게 줄을 지어 그쪽으로 몰려갔다.

알고 보니 지프차에 탄 방문자는 높은 별자리였고  단상에 올라 연설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맞은 자리가 너무 아파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서있는데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서 군대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와라."

서로 어리둥절해서 쳐다볼 뿐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두 번째도 똑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그 소리자체가 너무 크게 울려 무서워서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세 번째도 똑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세 번째도 아무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네 번째 호령이 떨어졌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신체적으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와라."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이 획 지나갔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매 맞고 웅덩이에 빠지는 나를 보고 한소리인지 모른다.

나는 혼자서  겁먹은 소년처럼 앞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내 뒤로 하나 둘  따라 나오기 시작하였다.

한 20여 명이 되니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는 군의관 대령을 불렀다.

"이 들을 다시 점검하라! "군의관은 내 앞에 와서 물었다.

" 어디가 아파 못하겠다는 거야?" 나는 죄진 사람처럼 겁에 질려  대답하였다.

"한쪽시력이 안 보이고  뛸 수가 없습니다."

"이쪽으로 서"

"다음은?"

"오는 날부터 잠을 못 자고 있습니다."

"저쪽으로 서"

"다음은? "

"이쪽으로 서!"

군의관은 사람들의 상태를 듣고 얼굴을 훑어보고 양쪽으로 편을 갈라놓았다.

몇 명만 이쪽에 섰으니 이젠 맞아 죽겠구나! 가슴이 두근두근 다시 뛰기 작하는데 세어보니 내편에 있는 자는 다섯 명이다.

군의관은 5명만 남기고 다른 15명은 들어가라고 지시하였다.

 별자리는 군의관에게  정식으로 재 신체검사를 하라고 명령하였다.

군의관은 우리에게 신체검사를 받으러 의무관으로 가라고 하였다.

신체검사를 받으러 의무관 문을 열자마자 그 안에 있던 병사가  심하게 내배를 다시 걷어 찾다.

“이 개새끼야 군대생활을 못할 것 같으면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그는 다시 나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나는 가슴을 껴안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꼬꾸라져 뒹굴었다.

조금 후 대령이 들어오자 , 일어나라고 내게 눈알을 부라렸다.

대령이 내 눈을 조사하고 신체를 다 조사하더니 즉석에서 병종으로 판결을 내렸다.

그때 문을 열고 별자리 장군이 들어왔다.

“신체검사는 끝났나?”

“네 끝났습니다.”

“이 자들 다 병종인가?”

“예”

 장군은 우리들을 세우고 자기 권총을 빼어 들었다.

우리가 겁을 먹자  실탄하나를 찰가닥 빼어서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너희가 집에 돌아가기 전에 이것 하나는 알아 둘 게 있다."

“ 집으로 가는 사람은 다 학생인가?”

“네 그렇습니다.”  

“잘 들어라, 지금 이 총알하나가 10 환이다.이 총알 하나를 우리는 못 만들고 있다.

너희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총알 만드는 것을 꼭 연구해 봐라.

군대 생활을 못 하니 이젠 다른 것으로 애국을 하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군인이 많아야 전쟁에 이기는 것이 아니다.

저기 훈련받는 군인들 다 대포 밥이다.  이제는 머리를 써야 이길 수 있다.

공부해서 실력으로 애국하기 바란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

우리는 우렁차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무엇인지 모르게 가슴에서 울컥 솟아올랐다.

그 순간 나는 애국자가 되리라고 결심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장군은 내무부 장관까지 지낸 청렴결백하다는 한신 장군이었다.

그는 졸병을 시켜  우리들을 서울 역까지 데려다주라고 명령하였다.

내가 집으로 들어가자,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까 하고 어머니는 좋아서 춤을 추었고,

아버지는 아들을 살렸다고 기뻐하셨다.

“내가 약한 너를 보내고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하늘이 도왔구나. 의사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이젠 너 하고 싶은 데로 하여라.

너는 운이 좋으니 우리 집안이 다시 일어설 것이다.”

아버지는 허허하고 내 손을 잡으시었다. 나는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가 여전히 내게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내가 아버지를 옆에서 언제나 도와주었기 때문에,

아버지 곁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당기는 줄 , 어떤 숙명적인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다시 아버지의 신임과 믿음을 위해서 마음껏 잘해 보리라 결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