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장 신탁통치 문제
다시 그때로 돌아가 본다.
패망하던 일본경제는 한국전쟁의 붐을 타고 다시 일어났고 후에 역사상 최대의 경제호황기를 맞이하였다.
그 전쟁은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가? 우리는 공산주의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같은 민족을 두 나라로 가르는 것도 원치 않았다.
한나라를 두 강대국이 양쪽에서 잡고 당기니 더 쪼개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민족은 서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전쟁에 휘말리었고 어떻게든지 목숨만 이라도 살아 보려고
특히 젊은이들은 이리저리 벽장 속으로 방공호 속으로 숨어 다니고 있었다.
해방 직후 바지저고리를 입은 남자들과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인들이,
남북한을 가르지 말라고 행 길로 밀려 나왔다.
우리는 진정 해방되었는가?
왜 나라를 반으로 자르는가?
나라를 반으로 자르지 말라.
남북한을 가르지 말라.
우리는 한민족이오!
나는 처음으로 서울 시내를 플래카드 들고 휩쓸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다.
날마다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전차 길에서 학교를 다니는 길목에서 보았다.
내가 본 데모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1945년 소련의 모스크바에선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들이 모여 한국의 5년간 신탁통치문제를 들고 나왔다.
한국문제를 미소공동위원회에 위임한다고 결정하였다.
이미 미국과 상해에 임시정부가 설립된 지도 오래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리 오래전부터 신탁통치를 들고 나왔다.
한국 사람은 나라를 운영할 능력이 없으니 신탁통치를 하지는 것이다.
해방의 기쁨과 동시에 해방의 걱정도 시작되었다.
다른 나라의 통치가 또 연결되다니?
국민은 실망하고 울분하였다.
신탁통치문제로 열 받은 국민들은 자연적으로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좌익 우익 노 소할 것 없이 결사반대를 하므로 신탁통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같은 어린 학생들도 이유도 모르는 체 군중 속에 끼어있었다.
주권이 없는 나라!
형식적으로라도 국가의 주인, 왕권이라도 살아있다면 국민에게 위안이 되었을 것인데
그 혼란을 수습하지도 못하게 강대국들이 버티고 있었고 정부는 힘이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
당시 대통령은 화를 내고 미군에게 한말이 이렇게 전해져 온다.
“이렇게 나라를 간섭하려면 청와대를 아주 내줄 테니 차라리 들어와서 하고 싶은 데로 다 하시오.”라고
다행히 신탁통치를 물러나게 한 것은 거리로 몰려나온 온 국민의 힘찬 행렬이었다.
34장 나까무라상(1946년)
일본인 나까무라 상은 키가 크고 잘생긴 미남이었다.
그는 한국에 오자마자 서대문 초등학교 선생으로 부임하였다.
옆집에 살던 순영 씨를 사랑하였다. 둘은 동네사람들의 축복 아래 결혼식을 올렸다.
해방이 되자, 일본 사람들은 값진 것들만 싸들고 분주하게 도망을 갔다.
사람들은 이제 일본인이 살던 적산 집을 서로 차지하느라 싸움이 벌어졌다.
순영 씨는 남편에게 그대로 적산 집에서 살고있었다.
마음 좋은 나까무라 상은 아내를 두고 혼자서 일본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는 아내 순영 씨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일본에 가고 싶지만 당신을 두고 갈 수가 없어요.”
“우리 그냥 여기서 살아요. 우리가 살던 집이니 괜찮을 거예요.
그 집은 동네 중간쯤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떠나지 않고 숨어 그 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젊은이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심심하면 그 집에 들어가 나까무라 상을 불러내어
“이 새끼! 왜 아직도 여기서 살고 있어?
일본으로 돌아가! 네 나라로 가란 말이야!”
그들은 발길질을 하고 침을 뱉었다.
젊은 아내는 울면서 부르짖었다.
“왜들 이래요? 우리남편이 선생 한 것 밖에 없는데 무슨 죄가 있다고 그래요.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어느 날 아버지가 길목을 지나다가 그 집에서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는 젊은이들을 보았다.
아버지는 들어가서 큰소리로 젊은이들을 꾸짖었다.
“이 사람이 한국이 좋아서 살겠다는데 이 젊은 아내 생각은 왜 못하는 것이야
꼭 쫒아 내서 과부 하나를 만들어야겠어.
이 사람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야. 착해서 이곳에서 마누라 하고 살겠다는 것이야
당신들! 이 동네서 정작 맞아 죽을 짓을 하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누군 줄 알아?
다나까 상이야 그런데 그 사람이 일본으로 갈 때 선물까지 싸준 사람들이 누군 줄 알아?
바로 당신들이야
제발 옳고 그른 것을 분간 좀 해요. 이렇게 분풀이를 꼭 해야만 하겠어?”
아버지의 큰 목소리가 커지자 한 젊은이가 눈짓을 하자 모두가 그 자리를 떠났다.
나까무라 상과 순영 씨는 그곳에서 살고 싶었지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이 떠나자, 동네는 다시 잠잠해졌다.
세월이 흐른 후에 아버지는 나까므라 상을 버스 간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는 말없이 열심히 사람들에게 책을 돌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고 그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아내는 잘 있는가?
" 네, 선생님 ! 저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멋쩍은 듯 인사를 또 하였다.
“그럼 우리 집에 한번 들려주게 나도 필요한 책들이 있으니.”
그랬다. 그 당시엔 직업 없는 사람들이 손쉽게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몇푼을 벌자고 버스 간이나 전차 속에서 책을 파는 것이었다.
며칠 후에 그가 한의원으로 찾아왔다.
아버지는 반갑게 맞으며 책을 사들였고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극진히 하였다.
아버지가 물어보니
나까무라상 부부! 그들은 한강 다리 건너 판자촌에서 어렵게, 그러나 밝게 살아가고 있었다.
35장 토지개혁 (1950년)
아버지가 덕정리에서 서울로 한의원을 옮겼을 때 일이다.
우리는 서울로 가지 못하고 사귀동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때는 이미 아버지가 값싼 논을 사들이고 소작인에게 농사를 짓게 하였다.
가을에 추수를 하고 소작인들은 쌀을 가져왔다.
한 사람이 벼농사를 가져오지 않자 어머니는 토지 개혁된 것도 모르고 ,
오 서방을 데리고 타작한 쌀을 받으러 소작인 집으로 찾아갔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작인 김 서방이 담뱃재를 툭툭 털면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주머니 왜 ? 오셨습니까?”
김 서방에게서 평소에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눈을 옆으로 거만하게 돌리며 말이 거칠게 나오자
“추수한 곡식을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찾아왔네. 무슨 말을 그리하는가?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다는 말인가?”
원래 어머니는 부처 님 같이 조용한사람 이었지만 조금 화를 내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아래턱을 내밀며 어머니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진짜 못 올 때를 오셨지요!
세상이 바뀐 것도 모르십니까? “그리고는 곧 이어서” 아니 토지 개혁 소식도 못 들었단 말씀이에요?”
김 서방은 예전의 김 서방이 아니었다.
그때 마침 김 서방의 사위가 싸리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위는 얼마 전에 파출소장이 된 젊은이였다.
“이 봐, 동선이 이 아주머니가 우리한테 쌀을 받으러 오셨다네.”
그는 마루에서 토방으로 내려섰다.
“내 사위가 파출소 소장인 것도 모르세요?”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사위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참 아주머니 답답하시네요.” 젊은이도 매우 흥분한 표정이었다.
여태껏 발휘하지 못한 파출소장 실력을 한번쯤 과시하고 싶은 듯 어머니에게 겁을 주려는 듯 두 눈을 치켜떴다.
어머니도 놀라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 그렇게 바라보면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이 아주머니, 저한테 혼 좀 나셔야 되겠네요.”
그때 따라 갔던 오 서방이 참다못해 벙어리 소리를 내면서 왜 그러냐고 대들었다.
그는 차고 있던 권총을 빼어 들었다.
권총을 다시 집어넣더니, 옆에 있는 작대기를 들더니 오 서방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그리고 사위는 파출소 사람을 불러서 어머니를 당장 유치장에 처넣으라고 명령하였다.
쌀을 못 받는 것도 억울한데 어머니는 그 길로 감옥 속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오 서방은 혼자 돌아왔다.
어머니를 찾는 우리들에게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애들아 내일은 학교를 가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가지도 말고, 내가 아침에 가서 어머니를 데리고 올 것이니…….”
오 서방은 우리를 다독거리며 재웠다.
우리가 일어났을 땐 오 서방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하루 밤을 구치소에서 보낸 뒤 얼굴이 하얗게 되어 오서방과 같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밥을 먹이면서 울분을 새기지 못하고 밥그릇 속으로 굵은 눈물을 똑똑 떨어뜨렸다.
지난밤에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아버지는 손님이 많아지자 서울에서 주무시는 날이 많아져 갔다.
오 서방은 그 길로 아버지에게로 간 모양인지 밥 먹으라고 불러도 보이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버지는 대번에 변호사를 통해서 이 사건을 법원에 청구하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정말 화가 난 사람은 판사였다.
김 씨와 파출소장인 사위를 곧 서울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버지도 출두하라는 소식을 받았다.
날짜가 되어 아버지가 재판소에 들어가 문 입구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문이 열리더니 파출소장이 기세가 당당하게 들어섰다.
아버지에게 겁을 주려는 듯 앞자리에 가서 척 다리를 꼬고 걸터앉았다.
몇 분 후에 젊은 판사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판사는 이상한 분위기에 이마를 찌푸렸다.
앉지도 못하고 문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에게.
“이 군상 씨 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저기 가서 자리에 앉으세요.”
그는 빈 의자를 가리켰다.
“당신은 누구시오? 사람을 감금했다는 그 사람이오?”
거드름을 피우고 윗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그제야 “예, 그렇습니다.” 파출소장은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당신! 누가 당신을 내 자리에 앉으라고 했어?”
그는 옆에 있는 책상을 치면서 무례함에 참을 수 없는 듯 말했다.
파출소장은 그때야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당신 순사 하다가 파출소장으로 이번에 발령 난 사람 맞지?
"네"
"영장도 없이 아녀자를 가두는 법을 어디서 배웠어? 이렇게 대한민국이 무법천지야?”
그는 그제야 잘못된 것을 알고 겁이 난 자세로 반듯이 섰다.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이 지금 너무 날치고 있어.
똑똑히 들어! 법이 바뀌었어도 올해 벼농사지은 것은 땅주인에게 돌려주고 나서 땅만 넘어가는 것이야.
땅을 공짜로 차지하는 것도 감사해야 할 판에 벼농사까지 다 먹겠다는 것이야?
그것도 땅주인을 감옥에 가두기까지 하고......,
판사는 말하면서 점점 더 흥분하였다.
“나는 법대로 처리할 테니까,,,,,,.
당신이 메질한 것, 감옥에 가둔 것 여기다 기록되어 있으니이 서류를 읽고 도장을 찍도록!
아버지는 이 상황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였다.
그것으로 끝을 내고 싶었다.
“판사님!
저 사람도 제 아내처럼 유치장에 넣고 싶은 것이 지금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판사님!
저의 아내에게 충분히 사과하고 쌀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끝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는 그 당시 무질서한 세상이 왜 왔는지를 읽고 있었다.
원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이 사건은 아버지가 부탁한 데로 종결되었다.
김 서방과 경찰서장 사위는 쌀을 가지고 왔다.
그들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하였고, 땅을 가지게 되어서 대단히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고 돌아갔다.
정부는 36년간 일본사람이 거의 강제로 소유했던 토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농민을 위한 토지개혁을 하지 못하고 결국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다시 식민주의를 위한 토지정리를 했다는 소리가 떠돌고 있었다.
거기에 토지를 장만하느라 애를 쓴 지주나, 권력으로 토지를 부당하게 가진 지주나
분간 없이 이 토지개혁에 휩쓸리게 되었다.
농토를 자기 손으로 짓지 못하는 사람의 소유권이 다 농민에게 넘어갔다.
어쩌면 그 시대의 일본인들에게 토지를 빼앗기고
소작인으로 변해버렸던 농민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최선책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밤낮으로 힘들게 일하여 번 돈으로 산 논들이었다.
다 빼앗기고 오직 헐값의 야산과 집 주변의 밭들이 우리 몫으로 남게 되었다.
김우철 씨의 시
그 시대의 김 우철 씨의 시는 땅을 차지한 농민의 기쁨을 적어놓았다.
농촌위원회의 밤
땅은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토지개혁의 우람찬 환성은
등을 넘고 비탈길을 감돌아
두메산골까지 산울림 해 왔다.
나라를 찾음만 해도 고마운데
땅까지 차지하게 되다니‥‥
이거 모두 꿈인가, 생시인가
눈은 뜨이고 귀는 열리여........
해방이 되자 세상은 가난한 농민들의 편이 되어 편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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