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큰누나의 이남방문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은 큰누나는 아름다웠다.
이북에서 일찍 결혼한 큰누나만 남한으로 내려오지 않고 이북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는 삼팔선이 아주 닫히기 전 이북과의 왕래가 있던 때였다.
아버지가 서울 현저동으로 한의원 옮겼을 때에 이북에서 큰누나가 찾아왔다.
동그란 바가지에 맛있는 엿을 가져와서 나의 입에 달콤한 엿을 넣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매부는 이북에서 흥남 질소 비료공장에서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큰누나는 명절에 부모님을 만나러 온 것이다.
어머니는 기뻐서 큰누나의 손을 붙잡고 어쩔 줄을 몰랐고, 그동안 못 본 이야기로 모녀는 밤을 꼬박 새운 모양이었다.
큰누나가 다니러 온 동안 마침 울산이라며 매부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마나, 당신이 어떻게 울산까지 내려오게 되었어요?”
누나는 놀랍고 반가 와서 노래라도 부를 모양이었다.
“회사에서 현지답사를 하라고 해서 내려왔어
울산에 지금 제2 질소비료 공장을 세우려고 해.”
일본은 그 당시 말만 비료공장이라고 하였지 매부의 말에 의하면
전쟁준비 확장 시키는데 울산항을 크게 개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흥남 질소 비료공장도 하루 만에 전쟁무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바꿀 수 있게 설계된 곳이라 하였다.
울산은 배가 들어올 수 있는 항만 중에서는 동쪽 해안에서는 제일로 꼽혔다.
“그러면 돌아갈 적에 서울에 들리세요.
저와 같이 올라가요"
“그럴까 장모님께 인사도 드릴 겸!”
매부는 울산현지답사를 마치고 며칠 후에 도착하였다.
집안은 오랜만에 식구가 다 모여서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떡을 만들고 부시게도 만들고 먹을 음식들이 상에 가득하였다.
“어머님 잘 먹겠습니다."
"어서 많이 들게나. 이게 얼마만인가?"
그쪽 부모님들은 다 안녕하시지?"
"예,”
아버지는 밥상에서 그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이북은 앞으로 공산국가가 될 것이니 여기서 같이 지내세.
돌아가는 추세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네."
"나도 여기서 살고 싶어요!"
누나는 이북으로 가지 않겠다고 나섰다.
그도 영리한 편이어서 장인의 말이 그대로 될 것임을 직감하였다.
“그럼 이곳에서 당분간 기다려보겠습니다.”
거리는 무질서로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얼마 있으니 이북에서 먼저 전기를 끊고 남으로 향하는 기차 길도 끊었다.
삼팔선이 어수선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이북과 이남 한국이라는 땅덩어리가 두 동 강이로 나뉘게 될
첫 신호가 이렇게 준비되고 있 던 것일까?
27장 직업 찾아 북으로 떠난 매부
매부는 할 일 없이 무료하게 일 년을 보내었다.
그는 날마다 직업을 찾아 거리로 나갔다가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돌아왔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의 얼굴에선 웃음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구석방에서 잠을 자거나 어디를 나갔다가 밤이 되면 돌아왔다.
그는 식구들과 점점 말을 하지 않았고 밖에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식탁에서 그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북으로, 흥남에 가서 다니던 직장을 다녀야겠습니다.”
아버지는 사위를 바라보며 신중하게 이야기하였다.
“조금 기다리다 보면 직장도 찾을 수 있을 것인데 왜 구태여 가려고 하는가?”
“아닙니다. 여기에 이렇게 실업자가 많은데 이북 출신인 저에게 차례가 오겠습니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내가 알아보겠네. 좀 기다려보게”
“아닙니다.” 전 가야합니다.
두 사람의 언성은 점점 높아가고 있었다.
“자네! 공산주의 사상이 있는 거 아니야? 그렇게 가지 말라고 해도 가겠다니......,”
“공산주의요? 저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직장이 필요합니다.
일 년이나 처갓집에서 먹고 살았는데, 어떻게 더 버티라는 것인지요? 저는 이렇게 백수로 살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버님! 도움 받은 것은 일 년 동안으로 충분합니다. 떠나겠습니다.”
그에게는 이북 사람들의 고집과 혈기가 있었다.
그는 방구석에 겁을 먹고 앉아있는 누나에게 말하였다.
“여보, 어서 떠날 차비를 차려요 나는 가서 그전처럼 일을 해야겠소.
너무 늦으면 내 일자리도 없어질 것이요"
큰누나는 무섭게 뜬 아버지의 눈과 마주치자 다른 방으로 숨어버렸다.
매부는 아내가 있는 방으로 쫓아 들어갔다.
“나하고 같이 갑시다. 나는 당신이 있어야 해요. 제발 이러지 말고 일어납시다.”
밖에서 그 소리를 듣던 아버지가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갈라면 혼자 갈 것이지! 내 딸까지 죽이려고 해! 나쁜 놈!”
아버지는 흥분하여 벌벌 떨었다.
누나가 안 일어서자 화가 난 매부는 그 길로 집을 나갔다.
28장 큰누나와의 이별
큰누나는 잘 가라는 인사도 못한 체 매부를 보내고 말았다.
그 뒤로 큰누나는 가끔 혼자서 방 안에서 몰래 울었는지 눈이 빨개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석을 보내고, 큰누나는 어머니에게 남편을 찾아가겠다고 한 모양이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노발대발 하였지만 큰누나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감추어둔 돈 몇 푼과 그동안에 손수 정성스럽게 짠 명주다발을 큰 누나 손에 쥐어주었다.
“나중에 팔면 돈이 될 것이니......, 줄 것이 이것밖에 없구나.”
어머니는 끼고 있던 금가락지를 빼서 누나의 손에 끼어주었다.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쉬쉬하면서
"아버지 몰래 큰누나가 떠날 것이니 인사하거라." 하며 귓속말을 하였다.
나는 슬픔에 차서 "잘 가, 누나" 개미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큰누나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선평이가 컷 으니 이제 안심이네.
아버지가 너한테 우리 집안 희망을 걸고 사시는 것 잘 알지?
우리 또 다시 보자, 그동안 아버지 어머니 말씀 잘 듣고…….”
큰누나는 눈물을 적시며 골목길을 그렇게 떠나갔다.
그것이 슬프게도 내가 본 마지막 큰누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나라도 독일처럼 합쳐질 것 이다.
그때 아름다운 누나를 다시 볼 수 있겠지.
29장 큰누나와 금가락지
그때는 삼팔선이 굳게 닫히기 전이라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삼팔선으로 가는 길을 잘 모르니 기차 길을 따라 가겠다고 나선 큰누나는 잘 갔는지?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나는 가끔 큰누나가 떠나며 손을 흔들던 골목에 서서 있었다.
큰누나가 떠난 지 몇 개월 후에 낮선 젊은 여인이 찾아왔다.
“제 이름은 봉순 이라고 하는데요. 제가 따님을 삼팔선 기차역 사무실에서 만났어요.”
“아이고, 이게 웬일이요?”
어머니는 기쁨에 차서 젊은 여인을 방안으로 손목을 잡고 끌어들였다.
여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때 저는 이남으로 남편을 찾아서 내려오는 중이었고요. 따님은 이북으로 올라가는 중이었지요.
인민군(북한군인)이 삼팔선을 대통 지키고 있었어요.
인민군이 나와서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을 다 끌고 기차 사무실로 데리고 갔어요.
여자 남자를 나누어서 잠을 자라고 하는데 그때 옆에 있던 따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우리가 살아서 도착한다면 서로 부모를 찾아가서 소식을 전해주자고 약속을 했지요.
"제가 이렇게 늦게 찾아 와서 미안합니다. 어머니
그런 일이 있었고 만!" 어머니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이튿날 인민군이 따님의 차례가 되니까 남편이름을 물어봤어요.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한테 연락이 되었으니 가라고 내 보냈어요.
저보다 먼저 나갔어요. 그런데 인민군들이 값진 것은 다 빼앗고요.
따님이 끼고 있던 금가락지도 , 좋은 명주도 다 빼앗겼어요. 제 보따리도 다 뺐고요.
그러나 따님은 기차를 타고 무사히 도착하였을 거예요."
어머니는 그제야 안심을 하였다.
그 후 4년이 지난 후 한국전쟁 6 25가 터지자 , 어머니는 행여 큰누나가 내려오길
대문을 지키며 기다렸으나 큰 누나는 내려오지 않았다.
“남한의 부르조아지 부모들 때문에 반동분자로 몰려 아우지 탄광에 갇히지나 않았는지?”
아무도 그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으나 아버지는 술 잡수시는 날이 늘어 갔고,
어머니는 한 밤 중에 일어나 북쪽하늘을 향하여 정한 수를 떠놓고 비는 날이 많아졌다.
큰누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갔을까?
아직도 살아있다면 큰누나는 90세가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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