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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너의아버지의 나라는한국

제30장 대한민국

by 산꽃피는캐나다 2023. 1. 31.

mt. harvey

  30장 대한민국

 

 1945년 일본이 패하자 세상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거센 바람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났다.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 박사가 1940년에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으로 일하다가 33년 만인 1945년에 고국에 돌아왔다.

17년간의 형을 치르고 도망하여 상해에서 조국을 위하여 활동하시던 백범 김구선생이

1945년에  27년 만에 고국의 땅을 밟았다.

이승만 박사는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에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운명하시었다.

27년 만에 희망의 나라 조국에 돌아온 독립투사 로 존경 받으시던 백범 김구선생.

민족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김구 선생은 친러파 친청파 친일파 친미파를 떠나 전 조국의 완전자주독립을 주장하였다.

김구 선생의 자주 독립주의는 위대한 사상이었지만 완전 독립은 허용되지 않았다.

일본은 불안정해 보였으나 역시 강하였고,

한국은  전국 통일을 하려던 한 통치자를 잃었고  다시 어두운 길에 서있었다.

결국 이북과 남한으로  분단이 되고 이 시작이 부모와 자식이 또 그리운 형제가 이별하고

7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리라고 그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하였겠는가?

김구 선생과 이승만 박사가  힘을 합쳐야했는데 조국을 위하여 활동을 한 

이 두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이승만 박사

이승만 박사는 남한의 임시정부만이라도 세우려는 신념으로 미국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이승만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뭉쳐야 산다. 헤치면 죽는다.”라고 정신적으로 국민이 단결하는 마음을 심어주었고......,

 “ 배워야 산다.” "배워야 산다."라는 교육정신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일본인은 단 한 명도 한국의 땅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마지막엔 부패한 독재정치로 온 국민의 함성으로 물러서야 했지만" 배워야 산다." 배워야 산다."라고

끝없이 국민을 교육시킨 점에서는 오늘의 문명의한국을 만들어낸  대통령이었다.

 

  31장 이별 의 기찻길

 

 이남으로 우리와  같이 온 이서방과 오 서방은 형제처럼 지내었다.

오서 방은 반벙어리였으나 우리는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그들은 정이 넘치는 젊은이 들이었다.

한지의사 자격을 받으려고 아버지가의 소식이 없는 동안, 동네일을 찾아다니며

온 가족을 먹여 살린  오 서방과 이 서방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제나 친아들처럼 대하였다.

하루는 아버지가 이 서방을 조용히 불렀다.

“자네에게 내가 긴히 할 말이 있으니 안방으로 오게나.”

이 서방은 무슨 잘못된 일이 생겼는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조용히 앉았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그동안 자네가 수고하여 집안 식구를 먹여 살린 것을 내가 어찌 잊겠나?  

내가 없는 동안  자네가 없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지만 자네는 아직 젊고 , 똑똑하네. 나도 많은 생각을 하였네.

그냥  이렇게 우리 집에서 데리고 있을 것인가?

나야 좋겠지만 자네 앞날을 생각하니.......

그래서 자네에게 묻고 있는 것이네.

자네는  이북에 가도  큰 대접을 받을 것이고.......,

자네! 우리가 가꾸던 복개에 있는  땅 알지!

그 땅을 자네에게 줄 것이니 이북으로 가서 그것을 차지하고 살아보게나.”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도 두고 온 그 땅이 너무 아깝다네. 그 땅을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한 줄 아는가? 

그러나 내가 다시 이북으로 돌아갈 것 같지가 않아.

나는 이곳에서 살 것이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조금 있으면 아마 이북도 맘대로 건너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그러니 지금이 때가 아니겠는가.

자네에게  기회를 주니 내 말을 따르게나.”

그동안 나를 위해서 충분히 일해 준 대가를 주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그동안 고생한 자네에게  보답하고도 싶고."

 

이 서방은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황송하여할 말을 잊었다.

그러나 혼자 간다니 형제 같은 오서 방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오서 방은.......,?”

“나도 깊이 생각하였네만, 오서 방은 내가 데리고 있을까 하는데 한번 물어나 봐야겠네.

지금 나한테는 일하는 사람은 쉽게 구할 수가  있으니까 ,사실 그랬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일자리를 달라고  찾아왔다.

약방시험에 합격하려고 학생들도 일하러 찾아왔다. 아버지는 말을 이어갔다.

“자네도 기억하는지 모르지만......,

오 서방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신신당부를 하지 않았는가?

아마도 내가 대답을 안 해 주었다면 그 양반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였을 것이야.

내가 혼사도  시켜주고  돌 봐줄 것이라고.......,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이 서방!

오 서방을 지금 불러오게. 말 나온 김에 물어봐야겠네.”

오 서방이 들어왔다. 그는 방안 분위기가 흐려있음을 짐작하였다.

“오 서방!

이 서방이 복개로 돌아가려고 하네. 자네도  이 서방을 따라 복개로 가게나.

같이 가서 잘 살아보게나. 복개에 있는 땅이면 두 사람이 충분히 부자로 살 것이니.”

그러자 오 서방은 성급히 뒤로 물러앉았다.

 그 는 두 손을 저으며 한사코 싫다는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네! 내 심정도 마찬가지지. 우리 둘은 아직 헤어질 처지가 안 된 것 같으니.

오 서방! 나도 아버님의 약속을 지켜야 하니  그럼 내 옆에서 살게나.

내가 잘 봐줄 것이니.

할 수 없지! 이 서방 자네 혼자서 떠날 수밖에,

지금 삼팔선이 막혔다는 소리가 있으니 늦추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떠나도록 하게 ”

이 서방은 즐거움과 서운함에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그는 결심하였고,  그 다음 날 아버지에게 큰절을 하고 어머니에게 인사를 한다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준  땅문서를 들고  그는 떠났다.

오 서방은 이 서방을 보내고 슬픔에 차서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이 서방이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였지만, 말 못 하는 그도 짐작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헤어짐은 쉬어도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아니 그를 아주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이 서방은 복개에 수백 가마의 감자가 나오는  기름진 밭과 집을 차지하기 위해서

보따리를 둘러메고 떠났는데 어찌 되었는지?

우리는 그 뒤로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이 서방은 덕정리에서 기차 길을 따라서 가다가 연천까지 간 후에 거기서 산길로 숨어 들어가서

38선을 넘어가겠다고 하였다.

오 서방에게 말렸지만 오 서방은 기찻길까지만 갔다 오겠다며 기어이 따라나섰다.

기차 길까지 가면서 그 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동안 형제처럼 의지하고 지나던 둘, 이제 하나는 이북으로 떠나고  말 못 하는 외로운 하나는 이남에 있다.

“이 서방은 몸이 빠르고 영리한 사람이어서 별 탈은 없을 것이다.”

지주의 땅은 다 일하던 사람들의 땅이 되었을 테니까.......,

그동안 열심히 일해 준 이 서방이다.

선평아!

너는 이 서방이 보고 싶겠지만 그곳에서 잘 살 것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아버지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으셨다.

 

 32장 삼팔선과 핵무기

 

 삼팔 선

 한국의 분단 38선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의 분계선이다.

이 선은 1945년 8월 미국의 3부 조정위원회의 전략 정책단에 의해 서둘러 확정되었다.

38선은 미국이 주도하여 소련이 접수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1945년 초에 일본은 38선 이북의 부대를 관동사령부 지휘 하에 소련군의 참전을 대비하게 하였고,

38선 이남의 군대는 제17 방면 군사령부 지휘 하에 들도록 편성하였는데 이는 미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일본이 한국 땅을 둘로 가르는데  편리하게  만들어놓았다.

38선은  민족의 분단일 뿐만 아니라 산하의 분단이 되었다.

이 분단을 합치겠다고  북은 한국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미국군과 중공군의 입성으로 이 분단은 더욱 견고해졌다.

분단 대신 대국들이 평화로운 길을 시도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스위스처럼 중립국으로 길을 만들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북은 하나가 되고 북은 그 많은 전쟁무기를 생산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핵 개발도 없이 세상은 전쟁에서 전 세계 군인이 참가할 필요도 없었고 죽는 일도 없이 평화롭게 살았을 것이다.

남한은 미국의 도움으로 경제적 발판을 이루었다.

미국이 도와준 나라 중에 가장 열심히 일하고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남한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도움에 감사를 해야 할 것이다

이북은 중국과 소련으로 부터 큰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

이북의 잘못된 경제선택은 전쟁무기를 팔아야만  살 수가 있었다.

이북은 일본의 패망 속에서 나라를 지키는데  무엇이 필요한 것을 확실히 알아냈다.

소국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핵무기였다.

감히 소국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 핵무기를 만드는 이북을 경계하고 봉쇄하기 시작하였다.

핵무기의 개발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과 이젠 경제적 봉쇄까지 더하여 국민이 굶주리는 일은 더 심각해졌다.

몇 번의  협상이 이루어졌지만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미국은 이북과의 약속을 백지로 만들어버렸다.

이북은 속고 또 속았다.

이북은  약속이 무산되는 계기로 핵개발은 계속되었다.

핵개발도 문제이겠지만 이 기술이 어쩌면 앞으론 경제를 좌우할 수 있는 인공위성의 개발도 할 것이고

인공위성을 독점하고 있는 값싼 이 생산율는 큰 나라들에겐 경제적 부담이 크게 다가올 것이다,

소국에게는 허용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정치가나 유능한 외교관이 이 문제를 잘 풀어 낼 수 있다면, 국민이 그렇게 굶주리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그 대가를 혼자 감당한다고 약속하지 않았어도 될 것이다.

이북을 6개 나라가 같이 도와야 한다는  6자 회담을 소집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은 서로 동조해야 살 수 있는 국제적인 협력시대가 되었다.

지금 미국과 소련은  얼마나 많은 핵무기 소유자인가

그 수자는 놀랄만하다.

원칙적으로 이 땅을 멸망시키는 이 핵을 그 어느 나라도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북에서는 한때 핵으로 남한을 지켜준다고 어르지만 핵은 핵이다

남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이북의 핵이기 때문이다

대국과 소국이 다 버려야 하는 것이 이 핵이다

핵은, 지구를, 사람 동물 땅의 전부를  멸망시키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창조자에게도 도전하는 악의 무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