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남으로 가는 사람들 1943년
원산에 초가집 사이에 이군상이라는 문패를 달고 현대식 양철 지붕 한 채가 들어섰다.
세월 속에서 아버지의 회사는 고용인이 1000 명이 넘어서고 있었다.
아버지는 서울을 오가며 도매 사업을 번창시켰다.
책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언제나 책방에 들려 책을 사 왔고
약방에 들려 중요한 약과 한약재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 날 청계천 일가에 있는 광신건재 약방 주인 박 노철 씨를 만났는데
그가 한 이야기는 실로 아버지를 놀라게 하였다.
“여보시오, 이 선생님 아무래도 사태 돌아가는 것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내가 잘 아는 소식통이 있는데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하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항복을요?”
그 항복이라는 말이 그의 가슴에 못처럼 박혔다.
아버지는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어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많았을 것이다.
혁명체계에 오른 중국과 소련 공산주의 소식을 듣고 있었다.
사람들의 머리를 완전히 혼란시키는 소문들이 퍼지고 있었다.
사람을 기둥에 묶어 놓고 돌로 치는 인민재판의 소식도 들려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산주의 사상이 문제였다. 물질이 제일이 되고 지주의 목숨이 처형되고 있었다.
평등이 인간의 머리를 어둡게 하여 잘 살고 못 사는 친척간의 사이를 이간질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밤이면 모인다 하였다. 아들이 당에 충성하기 위하여 친구와 부모를 고발한다고도 하였다.
군상 씨는 점 점 어 두어 지고 있는 달의 모습을 보았다.
박 노철 씨 말에 의하면 일본이 항복하게 되면 소련이 이북으로 내려와 공산주의가 되고
남쪽은 연합군이 들어와서 자본주의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소리는 몇 년 전부터 고위층에서 떠돌던 이야기였는데 결국 그 시기가 가까이 온 것인가?
“이 일이 그대로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지요?”
“이 선생님 식구들을 남하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난 이곳에서 살 준비가 안 된 대다가, 또 대식구입니다.
이제 막 결혼한 딸까지 애들이 여섯이나 됩니다."
군상 씨는 이마를 접고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어쩌면 젊은 박 노철 씨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바로 읽은 사람일지 모른다.
그가 한약을 배우느라 만난 사람이지만 덕이 많고 비상한 사람이다.
박 노철 씨는 서슴없이 말을 이어갔다.
“이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자리 잡힐 때까지 식구들을 잘 돌봐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가?
“박 선생님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가 그 은혜는 두고두고 값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에 올라가서 그렇게 하시지요. 벌써 발 빠른 지주들은 남하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사업을 포기하자니 낙담하여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노철 씨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이 고용하는 사람이 몇 명이십니까? 1000명이 더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그랬다. 그는 원산에서는 손꼽히는 대기업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세상이 어수선해지니 인심도 변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믿고 돈을 맡기던 십장이 큰돈을 빼가지고 가버렸다.
돈을 받으려고 젊은이 한 명을 데리고 집으로 찾아갔다. 돈은 내놓지도 않고 오히려 대들었다.
너무 울화가 치밀어서 옆에 있던 작대기로 한대 후려치고 돌아선 적이 있었다.
돈을 잃고 친구도 잃고 마음속에서 울화통이 터지고 불이 났다.
그 일이 마음에 걸리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 순간의 감정도 원수를 만들 수 있다.
그 후로 밤길을 걸어오는데 어둠 속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혹시 그 젊은 십장이 아닌가 하여 신경이 곤두서고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고개 마루를 넘어서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이 바뀌면 사람들은 동요할 것입니다.
이 선생님 잘 생각하시지요. 공산주의가 사람들을 동요하고 지주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선생님! 금광을 하던 김 사장도 서울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미 사람들은 남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하였는가?
사실상 북에서 남하한 이때의 지주들이 남한에서도 훗날 한국경제를 잡은 사람들이 되었다.
넓은 고향 땅에서 밥걱정 없는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이었다.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부지런히 밤낮을 뛰어야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도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한 듯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박 선생님의 말이 백 번 옳은 것 같습니다.
내가 곧 원산을 다녀와야겠습니다.”
17장 가슴속의 족보
원산에 돌아온 아버지는 아내에게 조용하게 이야기하였다.
“이곳이 위험해진다고 하오. 온 식구가 기차를 타고 서울로 내려가야 해요.”
그녀는 몹시 두렵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내에게 오래전부터 집 일을 해온 박서방과 오서방을 안방으로 불러오게 하였다.
"박 서방 오 서방!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게."
그는 이들에게 필요한 짐을 싸서 광으로 옮기게 하였다.
며칠을 걸려 이서방과 오 서방이 기차로 그 짐들을 부치고 돌아왔다.
준비가 끝나자, 그는 아내에게 일렀다.
“내가 떠난 뒤 다음 기차시간을 맞추어 역으로 나가세요.
우리는 같이 떠나지 못해요.
서울 가서 청계천 박 노철 씨 집에서 같이 만날 것이오.”
그는 청계천 박 노철 씨의 가게주소와 그림을 그려서 아내에게 주었다.
군상 씨는 아내에게 급히 장롱에 간직한 족보를 가져오게 하였다.
“ 이것을 명주로 내 앞가슴에 감아주시오.”
“이것을 가져 갈려고요?
차라리 한 푼이라도 돈을 숨겨가세요!”
“아니요. 족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져가야 해요.
돈은 나중에라도 벌 수가 있지만, 이것은 잃어버리면 돈으로 살수가 없소.
당신도 알아두시오. 만일에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이것을 꺼내어 당신 몸에 명주로 감고 피난하세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꼭 전해줘야 하오.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요.”
왜 이 족보가 그 불안 속에서도 아버지에게는 그렇게도 중요했던가?
그것은 아마도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족보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은 단단하였다.
아내는 말없이 남편의 앞가슴에 족보 책을 대고 명주로 몇 번을 돌려 감았다.
족보가 떨어지지 않게 명주를 양쪽으로 잘라서 돌려 묶었고 매듭을 속으로 넣어 편편하게 감추었다.
이때 그가 품속에 지니고 왔던 족보가
후에 남한에서 단 하나의 완창대군 족보로 소개되고 전파되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는 간단한 가방 하나만을 들고 소나무가 서있는 마당을 지나 밤바람이 불어대는 어두움 속으로 사라졌다.
18장 밤을 달리는 기차
이웃이 모르게 모두가 어두운 밤 속으로 떠나야 했다.
오 서방이 큰아들과 두 딸과 작은아들을 , 그리고 덕이 씨는 이 서방과 어린것들의 손을 잡고
경원선 기차역으로 출발하였다.
거기엔 알지 못하나 육감적으로 같은 신세인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기차는 서서히 도착하였고 밀려있던 사람들이 꽉 차게 올라서자 처량하게 목청을 한번 뽑았다.
미래를 향한 곡선을 그으며 칙 칙 폭폭! 칙 칙 폭폭! 달리기 시작하였다.
"형아! 신난다!"
기차를 처음 타보는 아이들은 신이 나서 유리창 쪽으로 서로 얼굴을 비쳐보고 헤헤거렸다.
어머니(덕이 씨)는 막내 4살짜리를 무릎에 앉히고
6살 되는 나의 손을 붙잡고 알 수 없는 불안 속에 가슴을 조이고 있었다.
“이젠 고향을 떠나 아주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어린것들도 이젠 고생이 말이 아닐 것인데......, " 덕이 씨는 어린 막내와 나를 바라보았다.
남편과 둘이서 빈손으로 원산으로 떠날 때보다도 더 착잡한 기분이었다.
"언제 이 고향으로 다시 올 수나 있을까?"
이제야 좀 재미나게 살아볼까 했는데......, "
앞으로 닥칠 비운의 생각들도 유리창 밖을 비라 보며, 그녀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
“아니 사모님이 아니십니까?”
기차간 건너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며 반가움에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김 선생님이?”
“예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반갑습니다."
"네네 저도요 이런 곳에서 김 선생님을 만나다니요.”
그는 산 판에 와서 단골로 나무를 사가는 사람이었다.
올 때마다 덕이 씨의 집에 머물다 가 곤 했다.
그는 내 촌에서는 부유한 유지였고 법 없이 살 만큼 성실했다.
덕이 씨는 조용히 사정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모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저의 집으로 가시 지오.”
“아닙니다. 애 아버지가 청계천에서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저의 집으로 꼭 가셔야 합니다.”
덕이 씨가 청계천으로 가야 된다고 극구로 우겼으나 그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김 선생님은 내리지 못하고 덕정 리 정거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김 선생님은 의정부역이 가까이 다가오자 강제로 4살짜리 아이를 둘러 안았다.
“아주머니 어서 내릴 준비 하세요. 다음 역에서는 꼭 내리셔야 합니다.”
덕이 씨는 어쩔 수 없이 큰아이들과 딸들 또 오서방과 이 서방을 불러서 조촐한 의정부역에서 내리게 되었다.
그들은 다시 기차를 타고 덕정 리로 올라가 5 리를 걸어서 내 촌에 도착하였다.
늦어진 저녁 하늘엔 총총한 밤 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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