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이런 법은 없소 (구치소 생활)
“아니 젊은 이군상이 원산 토박이 나를 따돌리고 금맥 같은 산판을 잡다니! 참 기가 차서 살 수가 있나!”
아버지의 사업이 겹 쇠줄의 개발로 갑자기 돈벌이가 잘 된다는 소문이 나자,
경매에서 패배를 당한 진 태수라는 사람은 갈수록 속이 물러 터졌다.
그는 아버지가 빛이 많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업을 뺏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는 자기를 배반하고 군상 씨에게 간 친구 철우 씨를 불렀다.
“아니! 자네가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자네 말만 믿고 낮은 가격으로 입찰을 했더니 이지경이 되지 않았나?
자네! 아무 소리 말고 가만히 있게. 내가 입찰이 잘못되었다고 고소를 하여야겠네.
자네도 내가 재판에서 이기기만 하면 이익을 충분히 줄 것이네. 같이 일을 하면 될 것이 아닌가?"
"아니 왜 이러십니까? "
철우씨는 말렸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기도록 만들어야지 두고 보게나"
사촌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고 하였다. 진태수 씨는 지금 배앓이에 두통까지 앓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군상이라는 못하나가 톡 튀어나와 있다.
한 번씩 망치로 두들기고 가는 것이 사람들 심보라고 했던가?
그는 높은 사람들과 친분이 많았기에 해보고 싶은 것이다.
밑져야 별것 아니다. 한번 고소나 해보자는 것이 진 태수 씨의 속
셈이었다. 입찰할 때 부정이 있었으니 흑백을 가려 달라는 소송이었다.
경찰은 유지로 잘 알려진 진 태수 씨가 직접 고소를 해오자,
서슴없이 일의 전후를 가려낸다는 이유로 즉각 아버지를 입건하여 가두었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어떤 접근도 못하게 되었고
이유도 모른 채 그날로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럴 수가?"
그는 화가 나서 속까지 울렁거렸다.
할 수 없이 간수에게 사정을 하였다.
“여보시오, 집에 가서 쌀이라도 팔아주고 올 터이니 나를 좀 놔 주시요.”
"이 선생님 참으시지요. 법정에 서는 날까지 외부와는 일체 두절하라는 명령이 왔습니다.”
“그러지 마시오, 내가 무슨 죽을죄를 졌다고 이러는 것이요?
우선 다달이 나가는 이자도 해결을 해야 하오. 잠깐만 아내를 보고 와야겠소.
그렇지 않으면 아내를 좀 불러 주시요.”
“안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재판을 받을 때까지는 안 됩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아무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정말 그랬다.
아버지는 지키는 간수 외에는 그 아무와도 만 날수가 없었다.
“그럼 재판하는 날이 대체 언제쯤이요?
우리는 알 수가 없으나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것입니다.”
“이런 법은 없소.”그는 낙담하여 마룻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내가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여보시오! 철우 씨를 좀 불러줄 수 없겠소?”
“철우 씨요? 선생님을 배반한 사람을 찾으시다니요."
"이럴 수가?"
그가 구치소에 들어갔다는 말이 퍼지자,
다른 친구들도 죄인으로 취급될까 봐 몸을 사리는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누구한테 얘기할 사람이 없다니! 이런 친구들을 믿고 있었단 말인가?"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그동안 바쁜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아내는 융통성이 없어 어디 가서 쌀 한 되 꿀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업하는 사람치고 집안에 돈을 싸놓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시작엔 빚뿐인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13장 사과장사 어머니(장자덕)
덕이 씨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체 이 양반은 어떻게 된 일인가? 감옥에 갇혀있다니
나보고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이 애들은
답답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 토방 위에 앉아 있다가 답답한 심정으로 집에서 나왔다.
먹을 것이 떨어진 것이다.
그녀가 정신없이 발 길 닿은 데로 걷다가 도착한 곳이 사과밭이었다.
그곳엔 다 익은 사과를 받으러 온 아낙네들이 줄을 서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인가? 쌀마저 떨어진 그녀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과밭에서 다 떨어진 사과 바구니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사과를 받아서 아낙네들을 따라서 시장으로 나갔다.
그녀의 치마가 발걸음을 감아쥐는 바람에 사과를 이고 걸으니 진땀이 났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과바구니를 길가에 펴놓고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그런대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못생긴 사과가 광주리 안에 남아 있었다.
그 남은 사과를 가지고 와서 배고픈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이튿날도 그녀는 다시 사과밭으로 올라갔다.
운이 좋은 날은 감자 몇 개와 보리쌀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애야 엄마하고 같이 가자”
나는 이 얘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덕이 씨의 생각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14장 달빛의 고운향기
며칠사이로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싸늘해지니 땔감도 문제였다.
언제나 아버지가 땔감을 사가지고 들어 왔는데 날씨가 추워져 손발 끝이 시려오기 시작하였다.
할 수 없이 다른 여자들처럼 어머니는 사과 장사가 끝나면 땔감을 구하러 목재소에 들렸다.
목재소 근방에는 쓰고 남은 잔 나무껍질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가난한 아낙네들이 들락거리며 그것을 주어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어머니도 땔감을 구하러 목재소로 들어갔다
나는 그 나무를 지키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바라보았다.
그 목재소 앞에는 남색바다를 물고 방 파제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지금 나의 기억 속엔 그 방파제 가운데가 ㄷ자 모양으로 양쪽으로 파여 있었고
그 속으로 큰 배도 들어오고 바닷물이 무섭게 철렁거리며 들어왔다.
하늘보다 넓은 바다 물속에 큰 선박이 둥기둥기 떠있는 것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시멘트 옆으로 잠수부들이 풍덩 소리를 내고 물벼락을 치고 깊은 바닷물속으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머리에 무엇을 쓰고 그 끝에는 긴 고무줄이 매달려 있었고
두 사람이 양쪽에서 그 고무줄을 향해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옛 날 방식,
손으로 산소호흡을 시키는 것이 나에겐 신기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얀 백 갈매기들이 끽끽거리며 하늘로 나르고, 바다 바람은 언제나 차갑게 얼굴을 때렸다.
그날도 어머니는 목재소 앞에 나를 세우고 나무껍질을 주우러 들어가며 일렀다.
“여기서 이것을 꼭 지키고 있어라! 이젠 엄마가 한 번만 더 들어갔다 오면 될 것이야!"
어머니는 목재소 안을 들락거리며 머리에 이고 갈 만큼 한 다발이 될 때까지 안으로 들랑거렸다.
그때였다. 어떤 큰 여인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옆으로 밀어버렸다.
모아놓은 다발을 잽싸게 들고 도망가는 것이었다.
나는 아! 소리도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이 바보야 어쩌자고 그것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 있었단 말이냐!” 어머니의 모습이 울 것 같았다.
"어어 어 엉!"
나는 그것을 막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기만 해서 울음을 터트렸다.
어머니는 나무다발을 뺏기고 눈물로 얼룩진 나를 보면서
할 수 없이 그냥 가자고 내손을 잡아끌었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인지 잠깐 가다가 멈추었다. 발길을 되돌려서 떡을 만들어서 파는 평안 댁 집을 들렸다.
“아니? 아주머니가 웬일이시요?”
시장 바닥에서 떡 장사를 하는 평안 댁은 어머니를 반갑게 맞았다.
“평안 댁, 쌀이나 보리나 감자나 먹을 것을 좀 꿀까 해서 , 얘 아버지가 나오면 잘해서 갚을 것이니......,
우선 이것을 가지고 있다가 내가 돈을 갚으면 돌려줄 수 있겠나?......, "
어머니는 끼고 있던 금반지를 내밀었다.
“형님!
요즈음 사정이 안 좋으시지요?
형님!
제가 형님 소식은 들었네요. 걱정하지 마시고 우선 일꾼을 보내세요.
제가 쌀과 감자를 보내드릴 테니까요."
“평안 댁 참말로 고맙구먼!”
내 이 은혜는 잊지 못할 것이지!"
손목을 잡고 흔들면서 돌아오는 밤길이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밤별이 소금을 뿌린 듯 돋아나고 있었다.
들길을 지나고 동네에 들어서자 부드러운 달빛이 발목에 부서졌다.
어머니는 그 달빛을 양손을 펴서 바쳐 들었다.
"선평아 이 달빛처럼 오늘밤 평안 댁의 마음이 훈훈하구나!
사람은 이래서 살아갈 희망이 있는 것이야!"
나는 어머니와 같이 걸었던 고요하고 맑은 밤길과 어린애같이 좋아하던
그때의 어머니의 모습을 세월이 가도 잊을 수가 없었다.
15장 진태수 씨의 사과
나는 그 배고프던 시절이 얼마나 길었는지 확실히 기억할 수가 없다.
다만 아버지가 없어서 그 공백이 너무 크고 길게 느껴져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지금은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어머니가 하루하루를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세월이 바뀌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우리는 늦잠을 자고 있었다.
어머니는 밥 대신 몇 개 남은 감자를 찌고 힘없이 부엌구석을 쓸고 있는데,
삐거덕하고 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부엌문을 열자, 웬 쌀 지게를 진 사람이 앞마당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서고 있었다.
그 뒤로 신사복을 입은 사람이 같이 들어섰다.
어머니가 부엌문에 기대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바라보자
신사복을 입은 사람이 얼굴을 굽히더니 쩔쩔매며 다가왔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아주머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고생 안 하셔도 됩니다.”
신사는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하면서 덕이 씨 앞에 흰 봉투를 내밀었다.
뒤 따라 오던 젊은이가 쌀을 지게에 받쳐 놓고 있었다.
검정 신사복을 입은 사람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제가 진 태수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 이름을 잘못 알아들은 상 싶었다.
"그동안 너무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아니? "어머니가 몹시 당황하였다.
그때 다른 젊은이가 대문으로 들어섰다.손안에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때 방 안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젊은이가 손짓을 하자 아이들은 상자 옆으로 몰려들었고
그가 주는 건네주는 것을 정신없이 받아먹고 있었다.
그것은 떡이었다.
“배고픈 데는 별 수가 없는구먼요.” 그녀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얼마나 굶었는지? 체면도 없이 먹어대는 아이들
배고픈 아이들에게서 먹는 것을 뺏을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아이들은 엄마의 눈치를 보며 떡 상자를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들은 계속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어 안이 벙벙한 그녀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진 태수 씨가 와서 용서를 빌었고, 어쨌든 일이 잘되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엔 그동안 비치지도 않던 남편 친구들이 먹을 것을 싸 들고 찾아왔다.
세상인심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진 태수 씨가 꼭 이길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 이유가 없다고 판결이 나자 친구들도 마음을 바꾼 것인가?
먹고살기에 사람들의 양심이 지금처럼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 꼭 사흘 후에 아버지는 무죄로 석방되었다.
동네사람들은 아버지가 진 태수 씨에게 복수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 일에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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