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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너의아버지의 나라는한국

제96장 불랙터스크, 파노라마리지 산행

by 산꽃피는캐나다 2023. 3. 15.

 

 

95장 다시일터로(1999년)

 

1997 년 알래스카하이웨이를 갔다 온 뒤로 우리는  이사를 하였고 정원이 넓은 집에 살았다.

우리는 잔디를 자르고  나무를 손질하고 집수리를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동네 맥도널드에 들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등산을 하고 시간은  흘러 해가 바뀌고 있었다.

그러던 하루 우리가 저녁식사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 가게를  맡아서 하고 있는 미스터 김이었다. 만나서 꼭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와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뜻하지 않게  쉘 오일회사가 나가겠다고 선언하였다는 것이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기 위하여 급하게  쉘 오일 회사에 연락을 하였다.

쉘 오일회사에서 찾아온 메너저는 장사에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실망하였고, 그들이 바라는 것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회사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것이다. 내가 사정을 해보았지만  회사의 결정은 단호하였다.

그러나 만일 내가 들어와서 장사를 해 준다면 계속 있겠다는 뜻을 밝혔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쉘(shell)이 나가면 안 되는 것이다.

제대로 셋돈을 받지 못하면  우리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아내는 힘들어도 다시 들어가서 쉘이 나가는 것을 막고 가게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였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러나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동안 고생한 사업을 닫을 수는 없다.

  우리는 급하게  은행에서 돈을 빌려 미스터 김에게 권리금과 물건 값을 다 값아 주었다.

그리하여 1999년 우리가 장사를 그만 둔지 1년 4개월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1년  365일을  아침 일찍 일어나 5시에 열고 11시에 문을  닫았다.

윌리엄캠텐의 옛 말에 의하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했다"라고 하였다.

미스터 김은 아침 손님이 다 지나간 뒤 9시에  열었다. 

우리가 출근 손님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놀라운  아침이 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펩시시회사 메너저가 찾아왔다.

그것도  "미스터리 돌아와서 환영합니다( welcome mr. lee  comeback" )이라는 길고 긴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우리 가게 울타리 벽을 다 장식하고  반갑다고 악수를  하는 것이 아닌가? 감격이었다. 

나를 이렇게 환영으로 맞아주는 회사가 있다는 것 이, 이래서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인 것이다.

간판을 보고  반갑다며옛 손님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생각하였다. 차라리 잘 되었다. 우리는 아직 쉴 만큼 늙지 않았다.

알래스카 하이웨이 갔다 온 것만으로도 휴가는 충분하였다.

사실 그동안 받는 세 돈은 부족하여 여행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할 일 없이 보내는 하루가 너무 길고 지루했다. 쉬는 것이 별 것 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 1년 4개월이었다.

행복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게 아니다.

행복은 일을 하면서 제대로 된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열심히 일 하기 시작하였고 다시 멋진 휴가를  꿈꾸고 있었다.

 

96장 불랙터스크 파노라마리지 산행

 

 2001년 한국에서 온 처남부부의 방문이 있었다.

미국버클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였기에 영어에 능통한 처남부부에게 주유소를 맡기고  여름방학에 온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산으로 떠난 것이다.

잊을 수 없이 즐거운  기억 .......,

배낭을 둘러매고 텐트를 치면서 며칠을 올라간, 높은 산 내게는 천당까지 올라 간 가리발디산행이었다.

그 아름다운  시간을 아내는" 행복한 선물이란" 수필로,  그 잊을 수 없는 장면을 한 폭의 유화로 남겼다.

 

  위슬러의 부근 의 파노라마리지( 높이 2300미터) 가리발디호수  

 

  행복한 선물 (불랙터스크와 파노라마리지) 

 위슬러 상봉에서 스키타면서 동북쪽으로 멀리 볼 수 있는 꿈같은, 산, 이야기입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옥색 물감을 정교하게 발라 논 듯 화창한 날, 봄 스키 꾼 들이 정신없이 이 불랙터스크를 바라보면서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저 멀리 보이는 희한하게 생긴 검은 산 이름이 무엇이지요?

모양 생김 데로 불랙터스크라는 데, 온 천지가 눈으로 덮인 산 속에  봉우리하나가 석탄같이 검은 얼굴을 하고 우뚝 솟아 있습니다.  

 백 색깔 속에 끼어든 배반의 검은 반점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형체로 나타나는 불랙터스크는 그날따라 검은머리 위에 흰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으니,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저곳도 오를 수 있나요? 저 밑으로 해서 등산가들이 잠을 자면 아마 갈 수 있다지요.  

저 먼 산 아래로 길이 있어 저 높은 곳을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

 이이야기는 그 뒤로도 내 마음속에 아릿하게 새겨져있었습니다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다가도, 또 힘없이 지워지는 불랙터스크를 생각하며, 그래도 해마다  값비싼 등산장비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고 올라가기에  가벼운 텐트는 가격이 올라붙습니다.

몇 번을 만지작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사들였고 , 다음에는 영하 20도에 견디는 가벼운 슬리핑백 두개를 준비하느라고 돈을 축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깔 잠자리, 특별하게 따뜻한 방풍 옷과 모자 우비  이것저것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준비는 하면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마음입니다.

 1937년 생인 남편의 나이에, 추운데서 자다가 중풍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쓸데없는 모험을 하고 있다는 걱정, 죽기 전에  꼭 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 달이 지나고,

해가 지나도, 마음이 가는 쪽으로 흘러서 돈을 쓰고 최선의 준비는 끝내었습니다.

 갈수록 용기가 없어지기에 2001년 을, 넘기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여름방학이 되자, 

간절하게, 마지막 학업에 바쁜 아들과 딸을 불러들였습니다. 방학은 특별한 휴가기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둘 만이 아니고, 아이들과 같이 산으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여행 온 최 교수가, 누나를 위하여 주유소를 돌봐주었기에 3박4일은  꿈같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텐트를 치고, 잠을 자고, 불랙터스크라는 검은 산을 올라가고 싶다고 하니, 아들이 알아들은 모양입니다.

주유소를 하느라 고생하는 부모님의 소원을, 더 늦기 전에 들어주어야겠다고 교수님에게 허가를 받았다며,

몬트리올에서 비행기로 아들과 딸이 나타났습니다. 

 

  드디어 그 날이 온 것입니다. 우리는  비싸게 주고 산 3인용 텐트를 방안에  펼쳐놓고 넷이서 들어가서 누어보았습니다.

셋이서 밑으로 눕고 체격이 큰, 아들이 이불처럼 올라가 누르니 깔깔대며 서로밀고 비명소리만 내다가  나왔습니다.

이젠 그전부터 있던 값싼 4인용을 펼치고 또 우르르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그런 대로 잘 만합니다. 그런데 지고 가기에는 보통무게가 아닙니다. 말에 의하면 칫솔도 반으로 꺾어 자르고, 눈썹까지 무게를 주리려고 뽑아놓고 간다는데, 다시 텐트를 살수도 없어 걱정인데, 건장한 아들이 자기가 지고 갈 테니 걱정을 말라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 보따리를 풀고 싸느라 하루를 보냈습니다.

등에 착 들러붙게  돌 돌말은 밑자리와 침낭을 묶어 밸런스를 잘 맞추어 넣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사흘 사는데 필요한 것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짐을 지고, 층계를 올라갔다 내려왔다 연습해 보자니 어깨가 늘어지고, 가기도 전에 지쳐서 죽겠습니다.

먹을 것과 요리 그릇들, 우비, 텐트 덥게 , 옷, 장갑, 물통 등을 꽉 채운 아들의 짐은 천근만근, 내 손으론 방문 앞에서 커피 태불 까지도 끌 수 없으니 정말 한심합니다.

그냥 포기하고 싶은 아득한 심정으로 자정 1시까지 짐을 주리고 물통 하나를 더 빼내고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그 중에서 내짐이 제일 가벼운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나 역시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짐을 지고 갈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위슬러 쪽으로 1시간 반쯤을 달려서 가리발디공원 블랙터스크 가는 길로 접어들어 드디어 파킹 장에 도달했습니다.

어쨌든 신나는 달 밤 같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니 비는 올 것 같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4명의학생과 젊은 부부가  신이나 있고, 또 젊은 부부가 바로 우리 옆에 차를 세우고 짐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통성명을 하고 위에 가서 보자고 하였습니다.

지팡이를 두 개를 집은 나를 보고,  등에 와서 내짐을 만져보고 흔들어 보고, 아들은 괜찮겠냐고 하면서, 자신은 두터운 고리짝 같은 배낭이 양쪽어깨를 다 가리고 목에서 허리까지 넘쳐도 즐거운 모양입니다.

 

  자! 떠나자! 우리식구 하나 둘 셋 넷 호령을 한번 불러보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산길은 계속 지그재그로 올라가는데 여간 잘 닦아 놓질 않았습니다.

국립공원으로 될 만큼 단장된 곳입니다. 하루코스로 베이스까지 갔다가 오는데 6시간쯤 걸리며 3개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호수를 볼 수 있습니다.

위슬러 근방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호수이지요. 베이스만 같다 와도 평생에 못 잊을 곳이 될 수도 있지요.

이곳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곳이어서 휴가 때마다 36번을 왔다는 영국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난번엔 베이스까지 3시간정도가 걸렸으나 오늘은 짐을 잔뜩 지었으니 5시간이상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힘든 발걸음으로 처음부터 숨이 막힐 지경으로 오르자니,  무거운 짐을 지고도  아들이  앞서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잠 간 신발 끈을 묶으려고 짐을 내려 논 순간,  내짐 하나를 꺼내어 자기 짐 속에 넣고,

아빠 짐도 한 가지를 더 빼내어서 자기 짐 속에 쑤셔 넣습니다.

참으로 이 무서울 것 없는 젊음이 부럽습니다. 3배 정도의 짐을 더 지고도 끄떡없이 올라가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우리 팀은 앞에 가던 젊은 부대 팀을 앞서, 호수3개를 지나 무사히 땀이 비 오듯 하면서 5시간 만에 호수가 앞에 있는 베이스 캠프장에 도착했습니다.   

 

 호수는 백조의 호수를 연상하듯 청순한 모습입니다. 

흰 눈을 허리까지 두른 산들이 조용하게 앉아서, 호수만을 연모하고 있는 듯합니다.

구름에 걸린 햇빛은  산의 중간 골짜기만을  눈부시게 비치고 있습니다. 

이 넓은 하늘빛 호수에  백조가 날라 와춤을 춘다면 그 이상 극치의 풍경은 없을 거라고 상상해 봅니다.

우리는 나무로 만든 오작교 같은 다리를 건너,  호수 앞에 섰습니다. 

흩트러진 붉은 돌 맹이 사이로 넘나드는 물결이 발밑에서 여운을 남기고 돌아갑니다. 

물빛은 맑은 하늘색이고, 산 밑으로 가면서 잉크 빛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멀지 않는 숲 속에 20불을 주고 캠프 자리를 잡았습니다.

큰 나무들이 울창한 숲 사이사이로 올라가면서, 산을 비벼  여기저기 조그맣게 잠자리들을 만들었습니다.

호수 앞산에 펼처 진 클라식 숲 속의 캠프장의 그림입니다.

중턱자리에 텐트를 치고 방 하나를 마련하니 이곳이 우리가 3박 4일을 살 오두막이 되었습니다.

뒤쪽엔 지퍼를 열면 망사로 된 창까지 달려있습니다.

신발과 짐을 놓을 수 있는 지붕이 달린 여분도 있습니다.

모기가 우리를 한방 물어보려고 밖 창살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입니다.

곰이 나타날지도 모르기에 저녁을 해먹으러 쉘터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집 쉘터엔 두 개의 책상이 있고 한쪽으로 싱크대가 있고 그 옆으로 음식을 할 수 있는,

램프를 놓을 부분이 있을 뿐입니다.  미리 온 사람들 옆에 하이 하이를 하고 끼어들었습니다.

불을 켜고 램프에 아이들이 저녁을 맛있게 준비할 모양입니다.

나는 빈 물병을 가지고 호수로 내려갔습니다.

바위틈으로 찰랑대는 옥색의 물을 뜨자니 정갈한 하늘을 기분 좋게 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준비한 정수기로 물을 걸러서 다시 빈 병에다 옮기는 것이 오늘 내 당번입니다.

가져온 음식이라곤 부피를 주리느라, (쓰레기는 어디에도 버릴 수 없고 다 싸들고 가야되기에) 가벼운 라면이나, 봉지 속에 들어있는 슾이나, 크렙디너 그런 것 들입니다.

 옆에 있는 영국에서 온 사람이 이런 때는 한국 라면이 좋다고  가르쳐줍니다.

마음이 통하여  반가운 일입니다.

집에선 입에 대지도 않는 크랩디너로 배를 달래고, 쉘터 가운데 걸어 놓은 빨래  줄에다 가져 간 음식은 다 걸어놓았습니다(음식은 절대로, 텐트에 초코릿 바도 두어서는 안 됩니다. 곰이 냄새 맡고 친구하자고 찾아올지도 모르니까요)

 노래를 부르며  밤 산길을 걸으니 어느 사이 우리 집, 작은 오막살이에 도착했습니다, 

맨 아래는 딸아이  다음이 나, 그리고 아빠, 아들이 제일 위에 자리에 누우나, 사방에 짐으로 꽉 차고 좁아져서 한 소금 잠을 잘지가 정말 의문이지요. 들어 눕자마자 고단했는지 코부터 골아대는 사람이 있으니 이를 어쩌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제일 먼저 자는 게 수라는데 오늘저녁 잠자기는 다 틀렸습니다. 

 모두들 어깨를 이쪽저쪽으로 뒤 집기도하고, 어찌나 뒤척대는지 모르겠습니다.

청청한 깊은 산중, 오막살이에 밤은 깊어만 가는데  내가 코를 고는 것도 아닌데, 죄 없는 엄마한테 만 딸아이가 킬킬거리며 발로 밀고 못살게 꾹꾹 찔러 댑니다.

 아침이 되니 잠을 못 잔 탓인지 배가 살살거리고 아픕니다. 날씨는 아름답고 청명하여 딸아이와 손잡고 호수가로 나가니 기분이 펄럭일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해준, 좀 맛이 ? 죽 같은 아침을 먹고,  장대한 모습의 블랙터스크를 올라 갈까합니다.

짐 속에 몰아넣어서 쭈굴쭈굴한 떡이 되다시피 한, 빵 조각을 찢어지지 않게 하나씩 떼어내는데  할머니가 빗 던 송편 같아서 웃음이 납니다. 집에서 이런 걸 먹으라면 다 도망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못난 빵 조각을 잘 모시고  햄을 넣고 치즈 한 조각을 붙여 만든 점심을, 배낭에 넣고 즐거운 풀밭을 향해 산행 길을 올랐습니다.

 상록수 잎 들이 아침이슬에 반들거리고, 무더기로 핀 보랏빛 루파인 꽃이 조롱조롱 달려 웃고 있습니다.

카메라맨들이  산꽃에 매혹되어 찾아 올만도 합니다. 이곳은 산의 중간에 있는  벌판입니다.

작은 키의 전나무들과 꽃밭이 시원하게 펼쳐 있고,  벌판이 끝나는 지평선너머로 ,

눈 산들이 겹겹이 띠를 두른 듯 펼 쳐있고, 산들의 원조가(불랙터스크) 뒤에 우뚝 솟아 자리 잡고,

넓은 벌판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돌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키가 작은 나뭇가지 위에서 기웃기웃 거리는 은빛의 새들과 반갑다고 눈길을 주면서  평온을 가로 질러갔습니다. 평온이 끝나자  산의 중간을 후비어서 만든 길이. 왼편으로 산의 원조인 불랙터스크라는 푯말이 보이면서  높아졌고, 

눈 산으로부터 흘러내린  물살이 한곳에 모여서 숨을 몰아쉬더니, 아득한 경사로 다시 펄쩍 펄쩍 뛰어내렸습니다.

선반처럼 꽂혀 있는 돌 틈 사이에선  몸을 비집고 나온, 목이 가느다란 노란, 산꽃들이 곤두박질하면서 내려가는 물살이, 퉁기는  물방울에 , 얼굴을 씻고 있습니다.

 산은 점점 경사지고, 무너져 내린 돌산의 표피가 장사진을 치는 곳에 올라섰습니다.

거의 2000미터쯤 올라온 모양입니다. 거대한 산들이 나른하게 늘어져 있고 겉옷들을 다 벗은 채 여기저기 낡은 흰 솜옷 을 걸쳐 입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사이로 거칠게 타버린 검고,  붉은 꺼칠꺼칠한  피부를 내보이기도 합니다.

 장관입니다. 

산들이 줄지어 늘어선 선 중간에 옛날부터 최 상봉이었던 산봉우리 하나가, 비바람에 비늘을 다 벗고  남은 뼈대(불랙터스크)가 우뚝 서서 호령하듯 가슴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뒤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온 호수가 옥색 물감을 안고 있었는데, 휘말려온 구름 밑에서 색깔이 변했는지, 

북 청 색 아름다운 바닷물 되어 심장을 흡수해 버릴 듯. 이젠 길도 없이 흐트러진 돌산을 기어오르자니, 산의 표피가  떨어진 돌밭은 숨통을 막을 듯 가파릅니다.

더 갈 수 없는 산과 산의 능선에 도달했습니다.

산은 나무 한 점 없이 사방으로 문 열린 지대.

불어온 맞바람이 앞길을 막아 선체, 한꺼번에 휘몰아 밑으로 밀어 내리려고 합니다.

코앞에는 거대한 불랙터스크가 막아서고, 고개를 숙이고,  옴 추리고, 바위 뒤로 숨어 버리니 바람이 견딜 만 합니다. 

이런 희한한 경치를 2틀만의 산행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신은 땀 흘려 올라가는 자를 위하여 숨통 트이는 경치를 높은 곳에 숨겨놓으셨습니다.

아들은 돌산 불랙터스크를 올려다보더니, 반했는지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합니다.

나의 말림이 젊은 혈기에 통할 리가 없습니다.

남편은 산에 존경심을 나타내면 산이 좀 봐 줄 것이라며,  불랙터스크 밑에서 둘이서 큰절을 하였습니다.

아들이 큰절을 끝내고 산 밑으로 떠났습니다.

우리는 바람지대로 나와서 외투 모자를 뒤집어쓰고, 카메라만 메고 아슬히 돌산 밑으로  멀어져 가는 아들을 보았습니다. 

점점 멀어지더니. 아들의 모습은  높은 바위를 어떻게 기여 올랐는지 아니면 뒤로 돌아갔는지 없어져버렸습니다.

먼저 있던  검은 두 사람의 형체가 번 갈아서 바위 밑을 오르려고 뱅글뱅글 도는 것을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남자들의 연인인지  젊은 여자가 바위에 다리를 포개고 , 갈 길을 포기한 듯 앉아있습니다. 우리도 거기서 아들을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갔던 사람의 형체가 아직도 바위 밑을 오락가락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들이 떠난 지 20분이 되었는데,  그들이 올라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애쓰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때였습니다.  밑에  있던 여자가 귀 창을 뚫을 듯 소리치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꼭대기에 사람이 올랐습니다. 손을 흔들고 있어요. 저것 좀 보세요.”

 우리가 고개를 처 들고, 구름이 몰아가고 있는 바위를 올려 다 보았을 때 , 바위 위에서 손을 흔들며 움직이는 실체를 보았습니다.

이젠 남편이 흥분하여 소리쳤습니다, 아들이다!  아들이야!”

 그때서야 나도 아들의 걸음걸이를 알아보고 소리를 냈습니다.   

야! 우리아들 저게 바로 우리 아들 이예요. 그녀의 감격은, 이제 우리의 감격이 되어 산을 울렸습니다. 

잠깐 사이, 아들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씽씽 불어대는 찬바람에 우리는 장갑을 끼고 옷들을 더 꺼내서 입고  기다렸습니다. 이젠 아들의 힘찬 모습을 보았으니 추위도 견딜만합니다. 

만년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옆 산을 보니. 어느 때 든 비가 오 면, 눈이 되여 날려 덮일 것 같습니다.

1시간쯤 지난 후에 내려온 아들은  나르듯이 구르듯이 우리에게 달려왔습니다.

 멀리 아련히 보았던 블랙터스크의 신비함! 을 직접 만 저 본 것은 벅찬 일이었습니다.

먼 산 아래로 길이 있어 저 높은 곳을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몇 년을 가슴에 새기더니  오늘이 왔습니다,  무거운 짐과 텐트를 짊어지고 올라가 준 아이들 덕입니다.

나는 불랙터스크 밑에  설 수 있던 감격의 날을! (2100미터) 상봉에서 손을 흔들어대던 아들의 모습을! (2345미터) 기쁜 날로  새길 것입니다.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텐트에서 또 하루 밤을 보냈습니다. 피곤한 탓인지 딸도 아들도 군소리 없이  단 잠을 잔 것 같습니다.

 

 *파노라마 리지

 

 남편과 나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쉘터로 내려갔습니다.

커피 물을 끓이고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영국사람, 어제 만났던 부부가 들어 왔습니다.

이분은 벤쿠버아일랜드의 일주일간 하는 산행, 세계적으로 유명한 웨스트코스트도 같다왔다고 합니다. 

젊은 중년이지만 신기하여, 일주일 분 음식하며,  많은 짐을 어떻게 지고 갈 수 있었냐고 물으니 비밀이 있다면서 웃습니다.

적게 먹고 적게 지고, 일인용 제일 가벼운 텐트 속에서 겹쳐 잔다고 합니다.

우리도 중요한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오늘 가려는 파노라마리지를 어제 간다고 하였는데 어떤가를 물으니 눈이 많아서 끝까지 가지는 못하였으나, 가는 길에 꽃들이 많고, 정말 파노라마경치가 거기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산허리를 파내어 낸 길을 따라서 물살계곡을 몇 개를 건너갔습니다.

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올려다보니 산 전체가 꽃입니다.

이곳은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풀들이, 눈이 녹는 8월 한달 동안에 서로 다투어 피느라고  요란스럽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하루 밤에 찬  서리를 맞고 나면, 온통 고개 떨구고, 자지라 진 풀들에, 산은 몹시도 슬퍼 할 것입니다.

다홍  패인트 부러쉬의 아름다움과, 청보라 루파인의 신선한 모습이, 바이올렛, 데이지의 순박한 모습도, 이름 모르는  신선한  꽃들이 머리를 흔드니 영혼까지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산 깊은 곳에서 남모르게 한 달, 아니 몇 날을 살다가는,  꽃들도 아름답게 피고 가는데,

남은 인생, 꽃이 곱게 살아 보라고하니 가슴이 어립니다.

꽃길이 다 끝나자 눈앞에 넓은 골짜기가 나타났습니다. 

골짜기는 물 빠진 바다처럼 넓은 진흙땅처럼 양쪽 산 사이에 널려있습니다. 

진흙땅 북쪽으로 지평선을 따라가듯  아련한 헬렘 계곡의 숲이 보이고, 남쪽으론  맑은 호수 불랙터스크가  구름을 안고, 계곡 밑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북쪽엔 헐벗은 붉은 돌산이 능선으로 서있고,  뒤로 하늘을 오르는 한 눈 산이 보입니다. 

우리는 그 험한 돌산을 넘고, 눈 산을 넘어 가야합니다.

부스러진 천태만상의 바위 위로 한 발 한발 올라가는 것도 촉각을 세워야하는 일입니다.

구들장처럼 무참하게 풍화된 조각들 사이에서, 흙 한 톨 만 있다면  뿌리를 박고 낮을 드는 생명. 이 순수한 자주 빛 별꽃 을 보자니  마음이 아련해집니다.

혼자 피느라고 애쓴 가엾은  꽃 한 송이가 지금, 심신 잃은 인간의 영혼을 한없이 달래주려 합니다.

 

 돌산을 겨우 오르니, 눈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8월의 눈부신 태양 속에서 산을 휘 덮은 만년설은 어설프게 발이 조금씩 빠져도 될 정도로  녹아 있습니다.

아들이 먼저 발자국을 미끄럽지 않게 파주면,  발자국을 따라 지팡이를 눈 속에 꼭꼭 찍으면서 힘들여 올라갑니다.

하늘은 푸르고 땅은 흰 광채입니다.

지독한 노동이 이곳에 있습니다.  거위걸음으로 겨우 등성이에 오르자 이게 웬일입니까?

끝나는 것으로 믿었던  산이었는데, 위로 또 하나가  펼쳐있는 것입니다.

아들은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하면서, 한 고개 만 더 넘으면 될 것인데, 여기서 포기할 우리 부모님이 아니라고 오히려 웃습니다.

발목에 쇠뭉치를 달고 한 발 한발 움직이는 중세기 노예를 연상합니다.

정말 이곳이 나의 에베레스트 산 이구나! 하면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리하여 넘어간 산 위에, 또 눈 산 하나가 가로막혀 있음을 알았을 때 심정은 착잡하였습니다.

나는 아들에게 더 못 가겠으니 너나 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남편과 딸이 옆에서 깔깔대고 웃습니다. 아들은  위를 보고 오는 게 좋겠다면서, 혼자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눈 위에 서서 다시 정상에 오르는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시

간이 흐른 후에  아들이 올라오라고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을힘을 다하여 그곳에 도달하니(2050미터) 아래로 눈 녹은 풀 산이  보이고 끝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희망에 차서 그 산으로 내려가, 그림책 속에서만 보던  호수를 만났습니다.

 선녀만이 볼 수 있고 선녀만이 살 것 같은 수려한 자태,  눈 산 아래 구름에 가린 색깔이, 윤택한 사파이야 보석처럼, 여기저기  깔려있었습니다. 파노라마리지에서 본 이 호수의 모습

가리발디호수! 나는 이 보석물결들을 다 꺼내어 가슴속에  간직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 주위의 작은 섬들을 구경하러 호수 가를 거닐었습니다.

두 남녀가 우리 앞에 오더니 팔짝 팔짝뛰며 반갑다고 하였습니다.

놀라서,  자세히 보니, 낮에 산 위에서 만났던 젊은 산행 가였습니다.

우리는 내려오고 젊은이들은 바위에서 눈 산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냥 내려간다고 하자,  그러지 말고 용기를 내면, 잊지 못할 추억이 저곳에 있으니 파노라마리지로 올라가라고 남편은 권하였습니다. 

용기를 주자, 젊은이들이 마음을 바꾸어 눈 산을 오르는 것을 , 감격스럽게 돌아다보았습니다. 

좁은 바닥에서 그들을 다시 마주친 것입니다.

그들은 내려오면서 잠 간 눈보라를 만났으나, 한없이 즐거웠고, 남편덕분에 잊지 못할 구경을 하였다고, 오래된 친구나 부모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습니다.

 

  밤이 되니 비가 천막위로 통통거리며 내려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산들에 취하여 하루를 더 보내고 4일째 아침에야  우비를 챙겨 입고 하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얇은 비는 하루 종일 내렸지만 무사히 내려왔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기쁨이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기쁨이고

 눈을 뜨고 본다는 것도 기쁨이고

 지금은 눈을 감고 생각한다는 것도 기쁨이고

 이 글을 쓴다는 것도 기쁨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타락하지 않은 정직한 노동의 무게가 무엇일가?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성취감이라는 것이, 내게는 이 3박 4일의 산행이,  몸과 영혼을 동시에 맑게 닦아주고, 아이들과 정을 나누었던 "행복한 선물"로 생각되었습니다.

 아들과 딸이 떠나면서 내년엔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웨스트코스트로 일주일을! 하고 웃었습니다.

떠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젊음이 몹시도 부러운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을 다시 만나서 내가 태워야할, 소중한 시간들이 아직도 남았기에, 부지런히 걷고,  몸을 더 단련시켜야 된다고, 나는 돌아오는 차 속에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산 독수리

 

 산 그리며, 마냥 그리며

 홀로 가는

 산 나그네

 

하늘이

드리우니

구름 위에 서있구나

 

구름자락 하늘자락

안고 가는

산 나그네

 

물소리  바람소리

베개 새긴

산 나그네

 

산 오르며 오르며

원이 없다하였거늘

 

산 그리며 그리며

가야된다 하였거늘

 

고운 눈, 사슴 눈

가는 길을 멈추는가

 

불타는 숲 바라보며

산마루에 앉았는가.

 

 

자연이 산이 되고

부모님도 산이 되니

믿을 곳이 산이라오.

 

하루해를 산을 가오.

 

저무는 해 버려두고

돌 계곡을 넘어가오.

 

산 나그네

산 나그네

행복을 찾았는가.

 

산 독수리

빛나는 산 독수리

숲 속에서 떠올라

안개계곡 스치며 하늘 속을 도는구나!

 

가리발디에서 산여울

11월15일 목요일-11월29일 2001년 코리아나 신문 벤쿠버 Koreana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