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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너의아버지의 나라는한국

제94장 알라스카 하이웨이

by 산꽃피는캐나다 2023. 3. 14.

 

94장 알라스카 하이웨이

 

알래스카 하이웨이는 여름밤에도 환한 빛 이 있었습니다

알래스카 란 거대한 땅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상상할 수 도 없이 펄 쳐진 그 대지위로 길이 나있습니다. 그 길의 이름이 알래스카 하이웨이인 것입니다.

알라스카엔 높이 선 산봉우리, 끝도 없이 우렁차게 흐르는 강물이며, 거기엔 5000개 의 얼음이 흘러내리는 글래시어가 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러키산맥의 벤푸로 가는 길의 글래시어는 소품일 뿐입니다.

30,000 게의 옥 같은 호수, 얼어붙은 호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름을 붙이지 않은 호수까지 합치면  3억의 호수가 있다고 합니다.

알라스카에는 30,000도 넘는 곰이 살고 있으며 카리부가 사람보다 더 많이 살고 있습니다.

바다 위엔 빙산의 숨소리가 들립니다.

배를 타고 가면서 보면, 빙산은 쉬지 않고 바닷속으로 굉음을 내면서 떨어져 장관을 이룹니다.

흰머리 독수리의 명쾌하고 날렵한 날개 짓이 하늘 속으로 높이 나르지요.

얼음이 둥기둥기 떠있는 바다에서 뿜어내는 분수 같은 물길은 고래의 숨통에서 새어 나오며 자유로운 고래의 헤엄에서 우리는 이 영물과 같이 이 지상에 살고 있음이 영광이요 감동입니다.

왜 고래 한 마리가 죽으면 사람이 그렇게 난리를 부리는지 그것을 알 것 같습니다.

배를 타고 가자면 물속에서 뒤집어지며 아양을 떠는 오또 새의 몸짓이며 물개들의 미끄러운 인사를 받게 됩니다.

 

  벼랑에 흰 눈이 쏘다져 내리는 것은 눈이 아니고 셀 수도 없이 많은 흰 새 떼들이었습니다.

툰두라의 넓은 평야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큰 그리 질러라는 무서운 브라운 곰을 보고 그 한 가지만으로도 알래스카가 특별한 곳으로 느껴졌습니다. 왜 이리도 추운 장소에 동물이 사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속엔 큰 연어(킹 셀몬)들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멕킨리 산은 높이 치솟은 산봉우리가 순백색으로 하늘과 땅 사이를 지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면적의 5분의 1에 해당되는 이 땅에 인구는 1%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알래스카로 가는 길은 캐나다에서 시작하여 끝없는 대지를 양편에 끼고 먼 지평선을 만나듯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1973년대 한국을 떠나 무지의 나라 캐나다로 향할 땐 우리에게 젊음과 용기가 있었습니다.

1979년대 복스바겐 켐퍼로 하루에 7-12시간을 운전하여 밴쿠버에서 미국 서부 중부 동부 뉴욕까지 미국이라는 땅덩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충분히 시찰하고 16000 키로 미터이상을 돌아오는데 만 30일을 소비하였습니다.

그때도 우리에겐 청춘과 건강이 있었습니다.

  1997년 남편은 유수와 같이 흐르는 세월을 걱정하였습니다. 남편이 나이가 더하기 전에 꼭 운전하고 가고 싶어 하는 데가 있었는데, 유명한 알래스카 하이웨이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리가 붓고 허리가 휘일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여서 경비에는 걱정이 없으나 아이들이 아직 학교를 다니므로 장사를 끝내는 대는 큰 결단력이 필요하였습니다. 우리는 상의하고 고심하였습니다.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이 남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지요. 평균 수명 상 여자가 오래 살고 나는 남편보다 몇 년은 젊어서 더 살 것이 거의 확실하므로? 하하하

 일단 사업체만 팔고 세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그 다음 아이들이 지내던 아파트를 팔아 모터 홈을 새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여름을 기다렸습니다.

알래스카 하이웨이와 벤푸 쟈스퍼를 달리기 위하여 모터 홈을 제일 많이 예약하는 사람은 독일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산 모터 홈 차 상점에서도 우리가 알래스카를 갔다 온 뒤에, 여름동안에 10,000불 정도를 벌어 줄 수 있으니 자기들에게 차를 다시 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당에 서있는 많은 차들이 다 외국인들에게 일 년 전부터 예약이 다 되었다는 것에 우리는 놀랬습니다.

우리도 오랜만의 휴가이니 여름 내내 여행을 다닐 것이라며 그곳을 떠났습니다. ( 알래스카하이웨이를 가자면 충분한 여관 시설이 없기 때문에, 여관이 있는 곳에도, 가격이 비싸므로 잠을 잘 수 있도록 차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직업도 처분하고 집도 한 채 팔아서까지 준비하게 된 여행을 명목상 딸의 고등학교 졸업 축하여행이라 이름 지으니 딸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내 마음은 더 가벼워지고 신이 났습니다.

번쩍번쩍한 차는 24 휘트의 길이에 6명이 잘 수 있는 침대가 있고 부엌시설에 마이크로오븐과 냉장고 변소 목욕실 TV 에어컨 등이 있고 쉴 때는, 그늘을 만드는 텐트까지 돌돌 말아서 꼭대기에 붙여진 것이었습니다.

K선생님부부와 우리와 딸아이까지 5명, 희망에 찬 알래스카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으니 이날이 1997년 6월 27일 금요일 아침 10시였던 것입니다.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 의 노래가 아니고, 그런 시원한 심정으로 알래스카로 부릉 부릉 엔진을 밟았던 것입니다.

 

 1일*6월 27 일 금요일

롭슨 국립공원 (Mountain Robson National Park)

  차에 기름을 채우는데 보통 차에 30불이면 될 것을 차가 크니 100불이나 들이켰습니다.

밴쿠버를 떠나 캠룹스( Kamloops)에서 점심을 먹느라 잠깐 쉬고, 달려가니 록키 산의 웅장한 대문 롭슨의 눈 산 위로 저녁놀이 뜨겁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메도( Meadow)라는 켐프 장에 들게 되어 14.50 불을 내고 어두워지자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따스한 불가에 앉아 젖어 보는 낭만의 시간, 불길은 어두움을 소리 내며 태우고 , 고요하고, 축축하게 젖어드는 밤, 잠을 청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2일 *6월 28일

  밤중에 통통거리며 소나기 빗방울이 차를 두들겼습니다.

아침에도 날씨가 젖은 채로 있어서 산행은 취소하고 북으로 계속 달리기로 하였습니다.

차창으로 보이는 풀을 뜯고 있는 어미 곰과 새끼 곰의 모습은 대자연에 펼쳐진 아름다운 화폭이라고나 할까요?

또 월프(Wolf)도 보았는데 차도 빠르고 월프 도 빨라 휙 하고 지나가 버려서 그 아쉬움이 컸으나 그 성큼성큼 달리는 모습은 아직도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녁을 체친(Chetwynd)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한국의 젊은 부부가 하는 캠핑장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젊은 부부는 북쪽까지 와서 멋있는 침대를 손수 나무로 멋있게 만들었고 용감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 우리의 젊은 시절을 기억나게 해 주어서 기분이 백 점이었습니다.

그들로부터 모기와 앞으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한마디의 가르침이 모기의 왕국에서 얼마나 인생살이를 도와줬는지 알래스카를 가려는 사람에겐 너무 중요한 것이나, 좀 뜸 들여서 나중에 가르쳐 줄게요.

 

  3일 *6월 29일

  아침에 일찍 문을 여는 A&W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였습니다.

하루 중 아침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사 먹기로 하였습니다.

알래스카가 0으로 시작되는 다산크맄( Dawson Creek)으로 가지 않고 피스강(Peace River) 위에 있는, 사람이 만든 가장 큰 호수 428킬로미터로 긴 윌스톤호수(Williston Lake)와 베넷댐 ( Bennett Dam)을 보기 위하여 허드슨호프(Hudson`Hope)로 달렸습니다.

차가 잘못하면 지옥행을 할 것 같은 상봉으로 길이 올라가고 파노라마식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호수와 댐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산을 내려가니 거기서부터는 넓고 넓은 평야가 나왔습니다.

포트 샌 죤( Fort St John)이라는 곳은 오일을 파내는 큰 도시로, 평야 위에 중장비회사나 공장 모텔과 호텔로 시내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겨울에 바닥이 얼면 늪지대로 중장비를 끌고 들어가서 오일을 파기가 쉬우므로 겨울에 돈 벌려고 온 사람들로 호텔 모텔이 차는 도시였습니다. 이곳에는 잘 아는 친구가 모텔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포트넬슨( Fort Nelson) 까지는 막막한 대지 위에 활주로를 만든 것 같은 길 하나가 지평선너머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 길이 다산크릭에서 시작된 알래스카하이웨이이며 마지막도시는 미국 땅 훼어뱅크(FairBanks)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대망의 먼 영토에 와 있는 느낌이 듭니다.

지구상에 이렇게 넓은 땅덩어리가 사람의 흔적도 없이 길 한 폭으로 연결된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 길은 1942년 일본군의 침략을 막으려고 군대를 동원해서 초속도로 만들어진 길입니다.

이 넓은 땅을 보고 느끼는 감회는 무엇인가요?

일본이 왜 그런 무지한 전쟁을 하려고 하였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뿌렸던 파이오니아 정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이 땅이 대답해 줍니다.

인디언과 백인이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배반과 죽음만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나대로의 해답도 얻게 되었습니다.

  작은 섬 같은 한국을 쥐고 왜 갈라놓고 휘 들르는지?

대답이 정답이던 아니던 상상과 이해력으로 머리에 거미줄까지 친다는 것입니다.

미국인과 한국인의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 땅입니다.

이 여행 후에, 많은 사고를 늦게나마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에 가졌던 사상과 관념이 지워지고 새로운 영국인과 미국인과, 캐나다인의 발견이라든가, 인간의 욕심과 자유주의 사상과, 세상의 흐름을 발견한 샘입니다.

독일인이 이곳을 여행만 하고 가도 그들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열심히 더 일하고 잘 살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무한한 능력을 부여하는 땅이 알래스카 하이웨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한국인들이 돈을 열심히 벌어서 여럿이서 같이 부담하여 이 여행만은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상 알래스카로 떠날 때만 해도 우리는 정년퇴직을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돌아와서 다시 일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거리낌 없이 많은 나이에 다시 일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순전히 돈 때문에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건강 때문에 돌아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나이에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어떤 능력을 얻은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과는 아무 관계없이 편안하게 내일을 이끌어 감을 느낀 것입니다.

이것이 무한한 능력을 주는 알래스카하이웨이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톤 주립공원 (Stone Mountain Provincial Park)

  다음도시 Fort nelson에 도착하자 길은 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려한 모습의 스톤 산(Stone Mountain) 공원을 지나게 되었는데 물속에 있는 커다란 무스를 보았습니다.

흥미 있는 절구깽이 같은 동물은 우리를 보자 정검 정검 물을 사방으로 튀기며 산속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공원은 잔잔하고 깨끗이 자란 일일 종대의 나무들이 산 아래서 위까지 그 날씬함을 자랑하고 서있는데 그 속에서 있던 두 마리의 흑 곰에게 반갑다고 우리는 손을 흔들었습니다.

사람을 만날 수가 없으니 곰이라도 반갑다고 인사를 해야지요!

 

  문초호수주립공원( Muncho Lake Provincial Park)

  거기서 얼마 안 가서 우리는 찬란한 호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호수는 가지가지 꽃들을 피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곳입니다.

청 옥색 호수! 옆으로 하얀 돌들로 깔린 산을 깍 아 논 넓은 벌판 돌밭이 있었는데, 태평양전쟁 때 군인들을 위한 물건 보급지로 쓰였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스톤 쉽(Stone Sheep)이라는 뿔이 머리양쪽으로 뻗어 올라간 귀족 같은 산양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산양은 길가로 나와, 한없이 먹을 것도 없는 아스팔트를 핥고 있었습니다.

겨울에 눈 위에 뿌려 논 소금기를 소금이 필요한 산양이 온 식구들을 데리고 나와 핥고 있는 것입니다.

 

  몇 분 후에는 나무만큼이나 키가 큰 무스가 나무 가지를 물고 밑에서 위로 가지를 흩어 내리니 순식간에, 잎사귀를 죄 뜯기고 옷을 다 벗은 겨울나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입이 큰 대식가는 이곳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물 중의 하나입니다.

문초 호수를 보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모기가 얼마나 달려드는지 정신없이 도망쳐 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유명한 알래스카 모기와의 싸움은 시작된 셈이지요.

 

  리아드 온천 주립공원( Liard River Hot Springs Provincial Park)

  우리는 말로만 듯 던 노천 온천장 리아드로 가는 중입니다.

하나도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리아드에 도착하니 경사가난 듯 술렁대고 있었습니다.

자연 노천 장으로 향하는 길엔 향나무로 10분 정도 물길 위로도 끝없이 연결시켜 놓은 나무 길입니다.

밑으로 물결이 김을 뿜으면서 흘러가는데 희한한 것은 풀들이 자라고 5 센티미터에서 10 센티미터의 물고기가 더운물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본 노천 자연 온천장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처음입니다.

지금 생각만 해도 다시 가고 싶은 곳 중에 하나이니까요.

산 위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천이 위가 가장 뜨겁고 밑으로 갈수록 식어지는데 중간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속에 목까지 잠그고 앉았습니다. 양쪽 물가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제각기 나풀거리며 잎사귀를 냇가에 떨구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 심신을 이렇게 녹이고 따뜻하게 풀어주는 이 자연수에 인간은 어떻게 감사를 해야 좋을까요,

무심한 저도 이런 때는 신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이곳에만 흐르는 따뜻한 기후 때문에 꽃들이 피고 사람들 사이로 나비가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행잉 가든이 위쪽으로 늘어져있으며 열대지방의 식물도 키우며 이 공원에만 100가지. 종류의 새가 날고 있다 합니다.

류머티즘에 좋고 냄새도 많이 나지 않아 일 년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를 바로 이 모든 것들이 답해 주고 있었습니다. 캠프장이 대만원 이어서 8불을 주고 파킹 장에서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4일 *6월 30일

  리아드 강줄기를 따라서 고대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우아한 철교다리가 인상적입니다.

다리가 보이는 식당의 앞에서 아침을 먹게 되었습니다.

커피 맛이 향기롭고, 아늑하게 고전 식으로 장식한 그리움이 깃든, 산속의 별장 같은 집이었습니다.

이날 지나던 공사 중인 하이웨이는 정말 말이 아니었습니다.

큰 산을 허물고 산의 흙더미 위로 여러 대의 중장비 탱크들이 무섭게 산등을 올라 내리고 있었습니다.

먼지가 하늘 위로 쏟아져 올라가는 것을 구경하면서 처음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모기들은 창에 아주 눈처럼 날아와서 빈틈없이 달라붙었습니다.

몸이 꼬이고 움츠러질 정도입니다.

차창밖에는 차를 정리하고 보내는 아가씨가 두꺼운 옷으로 빈틈없이 피부를 가리고 헬멧을 쓰고 있었습니다.

돌아다니는데 헬멧 위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모자 위에서 솔솔 나오는 연기는 과연 무엇이던가요?

기가 막혀서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기향을 모자꼭대기에 달고 있는 예쁜 아가씨가 기다리는 차에게 손짓 발짓 할 때마다 모기향이 떨어질 듯이 끄덕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모기들 때문에 큰 일 났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겨울에 망가진 도로를 고치는 이 비포장도로는 한 없이도 길게 생각되었습니다.

드디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앞 유리창이 돌에 맞아 깨진 것입니다.

어찌 이런 생각지도 않은 일이요? 모기와 먼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다행히 가져간 질긴 덕 테이프로 더 깨지기 전에 발랐습니다.

다음 도시가 나오기까지는 얼마를 더 가야 될지 모릅니다.

  그 사이 다들 모기에게 일곱 여덟 방은 물린 모양입니다. 긁다가 한국 젊은 부부가 가르쳐준 비방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옷을 희게 하는 자벡스를 큐 팁에 발라 모기 물린 자국에 찍어 바르는 것이지요.

한 번을 바르니 가려움증이 신기하게 가셔 버리고 다시 가렵지 않은 것입니다.

알래스카 가는 사람은 옷을 이중으로 입어야 하고 살균제로는 조금 강하지만, 고통을 이길 수 있으므로 자벡스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나무가 잔잔히 둘러친 그림 같은 호수를 보았습니다.

호수 앞에는 깨끗한 새로 지은 상점이 보였습니다. 사진을 찍을까 하고 내렸습니다.

텅 빈 가게는 이상하게도 굳게 잠 겨 있었습니다.

옆으로 호수로 내려가는 길을 내려가다가 비명을 지르며 차 속으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무엇에 그리도 놀랬을까요? 수 십 마리쯤 되는 모기 때의 공격이었습니다.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왜 그 상점이 문을 닫았는지 상상이 되었습니다.

대체 여기에서 사는 동물들은 이 모기를 어떻게 견디어 낼까요?

차 속으로 숨지도 못하고 몸으로 견디는 이 불쌍한 동물들, 너무 불쌍해집니다.

  후에 딸아이는 친구에게 보낼 포스트카드를 사서 내 코앞에 대고 깔깔대었습니다. 포스트카드의 그림인즉 한 심각한 사나이가 큰 장총을 겨누고 있었는데 알래스카 모기 한 마리를 겨냥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아로라(Aurora)

  왓산 (Watson lake) 시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시는 모기가 적어져 견딜 만합니다.

하늘에서 전류가 눈과 얼음에 반사되어 너풀거리는 광채가 내려오는 아로라의 신기한 모습을 직접보고 싶었습니다.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우선 그것을 실감 나게 상영하는 특수 장치를 한 극장을 찾아가서라도 먼저 보기로 하였습니다. 길고 하늘하늘한 실크 천을 휘감고 무희가 춤을 출 때마다 무대의 조명에 따라 보라 빛 청 빛으로 내려오고 올라가는 것 같은 이 광채의 황홀한 장면을 후에 알래스카 다닐 리 근방에서 자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 북해도에서 자주 보였던 이 빛을 본 여성이 임신을 하면 태아의 머리가 좋고 행운이 든다고 하는 전설 때문에 요즈음 북해도에서 보기 어려움으로 일본여성들이 신혼여행을 이곳으로 찾는다고 합니다.

 

  화잇홀스( Whitehorse)

  유콘 주의 수도입니다.

오랜만에 도시를 만나는 이 반가움. 시내에 98 여행(Travel)이란 캠프 장에 차를 세우고 밤에 택시를 불러 타고 칸츄리 연극 트란틱 홀리스 (Trantic Follies)를 보러 갔습니다.

뮤지컬로 풍자적인 옛 금광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로 화려한 옷과 후렌치 캉캉 덴서들의 노래와 춤이 열광의 갈채를 받았습니다. 저녁 11시에도 이곳의 밤은 밤이 아니고 환한 저녁이어서 밤길을 걸어서 신나게 캠퍼로 돌아왔습니다.

 

  5일 *7월 1일

  이곳엔 맥도널드까지 있어서 그곳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습니다.

길은 포장하느라 또 난리인 곳을 지나야 했지요. 1942년에 시작된 도로가 55년이 지난 지금에도 먼지로, 차 번호판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 포장된 도로라고 하나 겨울에 무너진 길은 여름의 짧은 몇 달 동안에만 복구사업이 가능하기에 아직도 입을 수건으로 막아야 되는 먼지 길도 있습니다.

 알래스카하이웨이의 길이는 2436 키로미터 입니다.

그러나 알라스카를 다녀오자면 왕복으로 6000키로 미터 이상을 갔다 와야 합니다.

서울과 부산의 거의 열다섯 배가되는 셈이지요.

그 중의 1900 미터가 캐나다 쪽에 속해 있습니다.

캐나다의 닷산 크릭(Dawson Creek)에서 시작하여 미국의 알라스카 훼어 뱅크(Fair Banks)에서 끝이 납니다.

16000명의 미국군대와 캐나다의 토목건축회사가 하청을 받았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의 물자공급을 위하여 만든 도로인데 시간을 단축시키려고 밤낮으로 24시간 동안 얼음을 깎아 내는 강추위와 찌는 더위에서도 공사는 계속되었습니다. 길은 급한 나머지 돌산을 파괴하는 대신 산 위로도 올라가고 숲과 나무를 불도저로 무조건 밀어내어 만들었습니다.

  1942년 11월에 이 장장 긴 거리 공사가 완성되어 차가 그런대로 굴러가기까지는 전쟁용으로 얼마나 급했던지 단 8개월이 걸렸습니다. 보통 5년 이상 걸려야 하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먼지와 더위로 고통을 당하는 중에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만큼 넓은 옥색호수가 하늘과 어울려져 하늘인지 호수인지 끝을 알 수없이 수려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어째서 이곳은 이렇게 넓고 크기만 할까요?   하얀 모래사장도 호수를 끼고 한없이 펼쳐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가는 길가로 피어있는 자주색 풀꽃, 알래스카의 유명한 상징으로 피어난 화이어 위드( Fire Weed)도 길 따라 끝이 없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곳이 캐나다에서 제일 높은 산 5951미터나 되는 로간산( Logan Mt)이 있는 쿨레인 국립공원(Kluane National Park)의 시작입니다.

공원엔 4500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8개나 있으며 2000개의 글래시어가 있고 170종류의 새와 동물들의 터전이며 산의 반이 언제나 얼음과 눈으로 덮여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가까운 쉽 산 (Sheep Moutain)에서 등산을 하였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계곡을 따라 올라가 마음을 펼쳐보고 돌아왔지요.

지금도 한이 된다면 이 쿨레인 공원에 며칠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엔 아름다운 하이킹 코스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였습니다.

 

  다람쥐의 경주

  이곳을 지나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희한한 다람쥐의 경주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건 장난도 아니고 웃을 일도 아니었지요. 차가 달리는 앞으로 뻗어간 아스팔트 위로 다람쥐가 길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연속되는 돌진들. 버려진 도시 샴페인 (Champagne) 근방입니다.

차가 더 빠른지 내가 더 빠른지 두고 보자는 듯, 길에는 가다가 죽은 다람쥐의 죽음으로 장사진을 치고 있습니다.

차가 빨리 달리는 것이 좋은지 천천히 가야 할지 도무지 분간이 서지 않는 곳입니다.

말할 수도 없이 도망가고 밀려오는 다람쥐들, 내 생전에 이런 수많은 다람쥐의 죽고 사는 전쟁터를 보기는 처음입니다.

대체 여기엔 얼마나 많은 다람쥐가 살고 있으며 무슨 이유로 이렇게 요란을 떨면서 죽어가야 하는지 물어볼 데가 없어 답답합니다. 10 마일이 더 지나자 조용해졌습니다.

  이곳의 나무에 대해서 한마디 하여야만 하겠습니다. 나무의 크기는 가는 부지깽이만하고 잎사귀들은 볶아 논 파마머리가 풀려서 빗질도 안 한 듯 찌든 괴상한 모습입니다.

나무들은 긴 겨울과 짧은 여름의 프라이팬에 볶아 논 모양입니다.

이런 나무들이 광야를 덮고 덮어서 끝도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고생하며 사는 나무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고생은 했어도 돌아다니기라도 하는데 저 나무는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져서 저렇게 찌 들리고 고생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사는 동안 마음을 바르게 먹고 정직하게 살아야지요.

 

  비버크릭(Beaver Creek)에서 통나무로 잘 지은 잡화상이 있어 들리게 되었습니다.

문 입구에는 곰이 딸아 오면 절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말 것이라는 큰 표시가 눈에 보입니다.

다 보상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로 곰을 데리고 가란 말인가요? 아득한 문제입니다.

가게에서 화장실을 들렸는데, 필요할 때 쓸 수 있게 수건을 여러 개 잘 접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또 글자가 있는 데, 수건을 집어 가면 다음 사람은 어쩌자는 것이요? 집어 가지 마시오. 라고 적혀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인데도 포장 안 된 알래스카 하이웨이 같은 말씀이지요.

얼마나 가져가면 그렇게 적어놨을까요? 나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충분히 이해하고 남습니다.

 이젠 캐나다 땅이 끝나고  알라스카 미국 땅 토크(Tok)에 도착하였습니다.

사워도 없는 곳에서 20불씩이나 주고 잠을 자다니 이런 일 은 일찍이 캐나다에서는 없었는데 좀 다른 곳에 와 있는 기분입니다.

 

  6일 *7월 2일

  알래스카 하이웨이가 끝나는 도시 훼어뱅크로 가면서 처음으로 모기가 없는 호수 가에 나와서 라면도 끓이고 한가한 시간을 즐겼습니다.

훼어뱅크는 큰 도시입니다. 여기에서 식료품을 사고, 시나 강( Chena River)을 구경하는 관광선을 탔습니다.

50년의 관광역사를 가지고 이 강을 흘러가고 있는 배는 1500명 정도를 지금 싣고 갑니다.

너무 상업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어 마음을 감동시키지는 못하였으나 인디언들의 고기 잡는 법, 설매 타는 개들을 연습시키는 것이며 짐승가죽으로 만든 옷들의 설명 등을 하는 곳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강가로 펼쳐있는 아름다운 미국인들의 별장을 구경하였습니다.

옛 대통령부인 낸시의 별장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훼어뱅크 시내로 들어가 밀렸던 빨래도 하고 코인을 넣고 시원하게 사워도 하고 대대적인 시내 큰 캠프장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7일 *7월 3일

  아침 일찍 앵크리지로 가는 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산줄기를 따라 난 길 한편은 계곡이 아슬아슬하게 내려다보입니다.

비행기와 화잇 래프팅( 센 강물 따라 고무보트 을 타고 내려가는 것) 타는 곳이 보이고 유원지와 새로 지은 호텔 등이 보여 멈추기로 하였습니다.

용기를 내어 여기까지 온 김에 처음으로 조금 사나운 조디악(고무보트)을 타 보기로 하였습니다.

물살이 세지 않은 조디악은 마운트 롭슨에서 타 본 적이 있으나, 지금 저 절벽 밑으로 흐르는 니나나 (Nenana) 강물은 사납기도 하거니와 색깔이 눈 녹은 물이라 회색으로 굽이치며 무시무시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같이 간 K선생님 부부는 질색을 하고 안 타고 쉬겠다면서 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2시 반까지 기다리는 사이에 찌개도 끓이고 점심을 단단히 잘 먹었지요. 죽어도 잘 먹고 가는 것이 좋겠기에, 사고가 나서, 죽어도 괜찮다고 쓴 데에 사인을 마쳤습니다.

대절된 버스는 40분쯤 강줄기를 타고 내려가 강가 돌자갈 위에 우리들을 내려놓았습니다.

신발서부터 고무로 방수된 400불이나 한다는 옷을 입히고, 두 뗏목으로 나뉘어 8명에 노 젓는 선수가 타게 되었는데 사고가 날 경우 비상대피 설명을 하였습니다.

남편과 딸아이는 아주 신이 난 얼굴입니다. 난 추운 강바람에 점점 추어 들어 오그라져 빨리빨리 내려갔으면 하는데 이렇게 두 시간을 사나운 물을 휩쓸고 돌아 내려가는데 강 바위 위에서 사진을 짤 각 짤 각 찍어댑니다.

  스릴과 서스펜스 스피드 3S의 영화에서나 있는 재미를 여기서 맛보았지요. 이나나강의 여행의 사진은, 지금은 즐거운 용기의 추억 물이 되었습니다. 사진은 우리가 버스로 돌아왔을 때 벽에 잘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사진기술도 좋았고 기계도 좋았겠지만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사진을 확대하고 운반했는지 신기하였습니다. 그들은 비둘기를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은 뒤 날개 꼭지 위에 필름을 매달아 새를 날려 보냈습니다. 새는 몇 분 후에 사무실로 필름을 정확하게 배달해주었지요. 모든 일은 새와 사람이 궁합이 잘 맞아서 이렇게 잘 되어가고 있었고 사진은 비싼 가격에도 다 팔리는 의심 없는 장사였습니다.   6시가 넘어서 다닐 리 공원으로 들어가 잠을 자려했으나 초만원이라 내일 8시간동안 다닐리공원을 구경하는 표를 사 가지고 다시 뗏목을 타던 부근의 캠핑장으로 와서 밤을 보내었습니다. 그날 밤 남편은 밤이 한 시간 반밖에 안 된다 하여 밤을 보러 일어났다가 우리는 빼놓고 의리도 없이 혼자서 사방이 화사한 북극의 하늘에서 마른번개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아로라를 보았다 합니다.

 8일 *7월 4일

  다닐 리 공원은 차가 금지된 지역입니다.

오직 자체 내에서 움직이는 골동품 탱크 같은 버스로 운영이 되는데 5시간, 8시간, 11시간자리가 있고 가격도 다르므로 우리는 지루할 것 같아 8시간자리를 택하였으나 나중에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11시간자리를 탈것을 하고 후회하였습니다. 툰드라지대의 산 속은 참 볼 것도 많았고 처음으로 광야에서 커다란 그리질러라는 갈색의 곰을 보았습니다. 카리브가 곰 주위에서 왔다갔다 하였으나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8시간 사이에 해가 쨍쨍 비치고 큰 우박이 차를 다 쳐부술 듯이 비바람이 몰아쳐 나갈 수도 없었고,

해가 봄처럼 따뜻한가 하면, 호랑이 장가드는 날처럼 한 고개를 넘을 때마다 가지각색으로 변덕을 부렸습니다.

이것은 오늘이 특별한 날이 아니고, 평범한 다닐 리 공원의 보통일기로,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두툼한 코트를 준비하라고 한 모양입니다. 다닐리 공원 안에 있는 멕킨리산은 노스아메리카에서는 최고봉이며 여름에도 눈으로 덮여있습니다.

우리는 이 산을 바라보며 이 끝도 없는 대지 다닐리 공원에 서 있습니다.

이곳엔 다 있는데 큰 나무가 없는 것이 좀 안 됐습니다.

 내가 나무가 될 거나?

 내가 그곳에 가게 되면 해가 되고 싶네.

겨울 눈 산을 어리어리하게 데우는

아침 햇살이 되고 싶네.

 내가 그곳에 이르면 달도 되고 싶네.

산언덕 비추이다 홀로 떨어지는

아릿아릿한 고운 달빛이 되고 싶네.

 내가 그곳에 홀로 가게 되면 숲이 되고 싶네.

바다와 하늘 중간 여운에 걸려있는

거룩한 숲이 되고 싶네.

 알래스카 맥킨리 산 다닐 리 공원에서 지는 해 서서히 흐르는 하늘을 보려 하니

 내 숨결 물과 같이 섞어 내 영혼 땅에 묻어

 여기에 없는 것 그리움 하나 그것이 되고 싶어

큰 나무가 되어 서있고 싶네.

 오늘의 도착은 칸텔(Cantwell)이라는 도시 비싼 캠프장에서 밤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9일 *7월 5일

 앵크리지 (Anchorage)로 가는 길에 파이오니어 크릭 (Pioneer Creek)에서 다리를 건너다 상점과 사람들이 다리 주변에서 낚시를 하 길래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낚시에 전문가인 k선생님이 낚시를 하려고 준비하는 사이, 다리 위로 가서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게 웬일인가요? 물결 속에 놀랠 만큼 큰 알래스카의 킹셀몬 ( 연어 중에 제일 큰 종류 )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먹이에는 상관하지도 않고 올라가는 수많은 연어에 우리는 잡을 엄두도 못 내고 바라만 보았습니다.

연어는 주어진 운명을 다하려고 바다와 노래를 부르다가 신의 부름으로 자기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 슬픈 흐름을 거슬러 묵묵히 새끼 낳을 염원으로 올라가는 연어를 곰이 잡아먹고 사람이 잡지요.

 

  산다는 것은 전쟁입니다. 사람과 동물과의 전쟁, 사람과 사람과의 전쟁,.

그러나 이 힘이 약한 물고기의 생명이 고향 찾아가는 모습에서 인간의 단면을 봅니다.

연어는 바다에서 강으로 가는 3개월 동안 먹지도 않고 여행을 합니다.

가장 맑고 깨끗한 고향의 물길 속에 서로 알을 낳기 위한 자리싸움이 쉬지 않고 진행되지요.

모래를 파느라 몸이 상하고 영양부족으로 몸이 다 헤어지도록 알을 낳고 지키다 생을 마쳐 결국에는 새끼들의 밥이 되어주는 연어로부터 배우는 철학은 무엇일까요?

 

 앵크리 지는 1964년 큰 지진의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엄청난 모습을 보려고 갔으나

지진의 모습은 이제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변해버렸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잊고 그 위에 다시 도시를 세웁니다.

찾아간 지진공원 ( Earthquick Park)이란 곳은 그 위에 흔적을 지우고 새로 정돈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먼지로 누런 담요를 덮은 듯한 차를 세척하고 정비소에 가서 오일을 바꾸고 정비를 마친 뒤 한국 식품점을 찾았습니다. 길가에서도 쉽게 한국간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땅 알래스카(GREAT LAND ALASKA)란 영화를 보기 위하여 시내에 있는 익스피어리언스 극장(Experience Theater)을 찾아갔습니다. 화면이 큰 입체 영화이어서 비행기를 직접 타고 멕킨리 산 위를, 그 넓은 툰드라지대를, 폭포가 쏟아지는 계곡을 따라, 아름다운 풀꽃들이 흐트러진 벌판 위를 내가 달리고 있습니다.

  어미 곰이 새끼 곰에게 물고기들을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장면이라든가, 수많은 카리부의 이동, 그 외에도 화산이 터지던 장면과, 금을 캐러 온 희망을 걸고 모여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의 실제사진이 소개되었습니다.

관광객을 위하여 항상 상영되는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포태지( Portage)로 가니 저녁이 되어 위티어 (Whittiar)로 가는 첫 기차를 예약하고 어떤 빵장수 할아버지의 소개로 근방에 있는 Wonder Lake에서 잠을 잤습니다.

처음으로 돈 내지 않는 자연 캠프장에서 잠을 잔 것입니다. 신나는 달밤입니다.

 

 10일 *7월 6일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안개에 덮인 원더(Wonder) 호수가 사랑스러운 햇살과 열애에 빠져 뿜어대는 입김이 호수 가를 하늘하늘 두르고 있습니다. 새벽의 낚시를 하는 동안, 나는 이 아련한 호수 가를 걸었습니다.

 

 늦잠 깬 아침

젖은 계곡

 산은

구름까지 데리고

호수 속에다 그림을 그립니다.

 그들의

속 이야기

바위틈으로 조랑조랑 시를 씁니다.

 물가에

혼자 남은 꽃잎 하나

하늘을 바라보더니

더없이 기쁘기만 하다고요

 

  아침에 예약한 시간에 맞추어 포태지( Portage)에서 기차를 타고, 어두운 밤중 같은 굴속을 두 번이나 지났습니다.

기차 속에서 한국사람을 반갑게 만났는데 비행기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도 배를 타고 바다의 빙산을 구경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위티어(Whittiar)에 내리니 날씨가 화창하였습니다.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 Prince William Sound)로 가는 26 GLACIER CRUISE라는 관광 호를 타게 되었습니다.

바다 물은 유리알처럼 투명하였습니다.

바다 끝에는 눈 산이 청초하게 산맥에 산맥을 연결시키고 있는 장관입니다.

오또가 거꾸로 배를 내밀고 누워 두 손으로 간지럽게 장난하는 귀여운 모습, 배는 천천히 글러시어 입구로 다가서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점점 얼음산 밑으로 기어들어 얼음산이 떨어지는 모습을 눈앞에 보았는데 사람들은 떨어 질 때 마다 와우! 와우 하고 신바람이 났습니다.

이 얼음벽이 쾅쾅 소리 내며 바다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은 이 알라스카의 특이한 장관입니다.

  글 레시어 주변 바다엔 떨어진 얼음덩이로 배가 더 들어갈 수 없게 막고 있었습니다.

배는 여기저기의 글레시어를 구경시키며 이번에는 절벽에서 쏘다져 내리는 폭포수를 향하여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절벽 앞으로 흰 함박눈이 내리는 줄 알았습니다.

새하얀 함박 눈 이 , 눈이 아니고, 절벽에 붙어있는 수천 마리의 새떼라는 것을 알았을 때, 기가 막혔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의 밥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 벼랑에 집을 짓는 영리한 새들이,

그 많은 새의 식구들이 먹을 것을 이 얼음 바다 속에서 어떻게 다 찾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새들아! 너희들 사는 것도 고달프기는 나 같은 인간이나 다름이 없겠구나.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고, 자연을 사랑하고 보는 것, 지금은 사는 것이 즐거우니 어찌하겠느냐?

미국의 시인 Robert Frost의 시를 어느 분의 책에서 읽었습니다.

 

 운명의 신이 나를 잘못이해하고

반만 내 원을 들어주어

나를 데려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더 좋은 세상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이 고생스러워도 살아가며 보고 싶은 것이 많고, 사랑하며 살고 싶은 곳입니다.

배를 탄 글레시어 구경은 셋이서 미화 600불 정도가 들었으나 그만한 가치를 가져 다 주었습니다.

이것을 빼놓으면 서운한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기차를 타고 포태지( Portage)로 와서 러시안 강으로 고기를 잡으러 가는 길에 저녁이 되어 전기 불이 있는 캠핑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전기 불이 연결된다는 것은 우리에겐 가장 중요하니까 밥도 해야 하고 커피도 마셔야 하고 모든 것이 편리하므로.

 

  11일 *7월 7일

  아침을 왜 그리 달덩이만큼 큰 판 케이크를 주는지 바이킹족이라도 다 먹지 못하겠습니다.

주인은 인심 좋다고 자랑하고 싶은 모양인지 주위를 미소 지으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러시안 강으로 갔으나 물결이 너무 세차게 흘러 시워드( Seaward)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항구였습니다.

갈매기가 떼를 지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흰머리 독수리까지 빙빙 날고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과 옥색바다 위로 큰 배들과 작은 고깃배들이 수도 없이 떠 있었습니다.

끝없는 해변 가로 끝도 없이 모터 홈이 널려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렇게 많은 모터 홈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어쩐 일일까요? 알래스카 하이웨이로 오면서 다른 차나 모터 홈을 만나는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운이 좋은 하루, 열대쯤 되는 모터 홈이 길가에 있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미국에서 온 모터 홈 의 대 행진이었습니다.

거기엔 의사며 간호사며 차 기술자까지 동원된 모터 홈 그룹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는 모임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어느 곳은 가 도 가도 차가 없어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모터 홈이 몰려와 있으니 상상이 안 되었습니다.

 

  모터 홈은 이곳에 오래 머무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일찍 와서 자리를 잡고, 때를 기다려 고기 잡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7월이 지나면 알래스카의 연어를 맘대로 잡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차 속에는 연어를 잡아서 불에 살짝 굽는 기계며, 깡통으로 만들거나 유리병에 넣는 넨킹 하는 것까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연어를 잡기 위하여 몰린 사람들로 시워드(Seaward)는 바쁜 곳이 되었던 것입니다.

 

k 선생님 부부는 고기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바다에 떠있는 동안 멀미에 고생을 한 적이 있어서 다른 관광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딸아이가 바다의 카이약을 하고 싶어 해 찾아갔으나 바람이 거세다고 빌려주지 않아 케나이 후조드 국립공원( Kenai Fjords National Park)에 있는 Exit 글레시어의 모습을 직접 가서 보기로 하였습니다.

길이 험하여 차가 다 부수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얼음산이 땅 위로 나와 있어 이 얼음 사이로 올라가 얼음의 매혹적인 푸른색을 들여다보고 시워드 (Seaward)로 다시 돌아와서 찬란한 남색 밤하늘에 떠있는 별빛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12일*7월 9일        

 시워드( Seaward)에는 생선을 잡으면 처리해서 냉동까지 시켜주는 공장도 있었습니다.

바다 위로 큰 파이프가 보였는데 기름을 운반하는 파이프라인이라는 것이고 배가 와서 원유를 실어 나르는 것입니다.

 시워드를 떠나 앵크리지로 다시 달렸습니다.

앵클리지에서 아리스토릭칼(Arthistorical) 박물관에 들려 생각보다 많은 것을 구경하였습니다.

발전하고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나이에 관계없이 흥미 있는 일입니다.

글렌 하이웨이(Glen Hwy)로 해서 집으로 가기로 했는데 12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산은 높고 절벽이고 유레카(Eureka Summit) 고개를 넘어서기까지 마음을 태웠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과 글레시어의 경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마타누스카 글레시어 (Matanuska Glacier)가 바른쪽으로 장엄하게 펼 쳐 있어 가던 차들이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길은 험하고 안 좋았으나 관광 길로 신이 났지요.

편편한 길로 내려 달리다 글렌날렌 (Glennallen)에서 차를 세우고 기름을 넣었습니다.

 

  한쪽 빌딩마당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시골 장이 열렸거나 잔치가 벌어진 모양입니다.

한적한 길을 달리다 사람들을 보았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요. 참견을 하고 가야지 어찌 그냥 떠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던 판인데, 딸아이를 데리고 그곳에 가니 이게 웬 떡인가요?

경사 났네! 경사 났네! 하고 돌아야 할 모양입니다.

유명한 오일파이프라인 설립기념일 30년을 축하하는 잔치가 거기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떡 해놓고 돼지머리로 벌어질 시골 대 잔치가 여기에서는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연어 바비큐로 되어 나오고 수프, 주스, 콜라, 살라다, 과일, 디저트, 빵, 과자 할 것 없이 공짜로 오가는 사람에게 금 빼지까지 선물로 주고 있었습니다.

 장거리여행에 음식도 하기 싫어 신통치 않았는데, 입에 녹는 제대로 된 연어 바비큐나 닭튀김을 만나고 보니 입이 함박꽃이 되었던 것이지요. 저도 좋아하면서

“엄마 공짜가 그렇게 좋아! 좋아!”

하고 딸아이는 놀려대었습니다.

이렇게 구경 잘하고 가는 길에 여기 주안상 보아놨으니 피로나 풀고, 영양보충이나 하고 가시지요 하는 듯 한 대접이, 알래스카 여행 외에 또 어디에 있던가요?

유럽에 가니 중국집에서 먹는 물도 인정머리 없이 푼돈을 받아 가던 판인데요, 하여튼 먹었으니 파이프라인 이야기나 하고 길을 떠나야겠습니다.

 

 트란스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은 미국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훼어뱅크 북쪽으로 용감한 자들이 가끔 시도하는, 한번 빠지면 꼼짝도 못 하는 길이 나있습니다.

이 길은 북극 얼음 바다에 붙어있는 푸르도배이( Prudhoe Bay)가 종착역입니다.

여기저기 얼음 속을 캐고 꺼낸 검은 오일 (여기서는 오일을 검은 다이아몬드라고 한다)을 발디즈(Valdez)라는 배가 닿는 항구까지 1300키로 미터를 파이프라인을 놓은 것이지요.

산도 넘어야 하고 얼음 바닥도 지나고 나무도 잘라내고 평지도 지나고 22개나 되는 큰 강물도 지나고 300개나 되는 개천도 지나고 호수도 지나고 북극으로 갈수록 땅속으로 가지 못하고 지상으로 기둥을 박아가며 가는데, 겨울에 박은 기둥이 여름에는 푹 빠져 버리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시설이었습니다.

파이프라인은 반 이상이 지상으로 나와 있습니다.

된다. 안 된다 말도 많아 전 세계의 엔지니어를 불러들였습니다.

당시 유행가로서 나온 노래가 알래스카로 가자! 알래스카에 가면 일확천금이나 하는 것처럼 노동자에서부터 엔지니어까지 전 세계로부터 용감한 젊은이들이 비자를 받느라 애를 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파이프는 전부 일본에서 특수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보다 더 힘든 종합 테크놀로지가 요구되었다고 합니다.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은 인간이 지구상에 이룬 테크놀로지의 성탑이라 하였습니다.

파이프가 얼지 않게 하려고 가지가지 전기시설과 의견이 대두되었습니다.

실제로 채택된 것은 일정한 거리에 펌프 스테숀을 만들고 오일이 그곳을 지날 때마다 뜨겁게 데우는 장치를 하여서 계속 더운 오일이 지나가게 하였습니다.

대작은 1977년에 끝이 났는데 소비한 돈은 8 빌리온이나 되는 당시로는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그래도 기차나 차로 일일이 나르는 비용보다 절약되므로 지금 미국에 있는 파이프라인의 길이는 기차 길 보다 더 길다는 것입니다.

 종창 역인 벨디즈에서는 배로 실어 나르는데 , 새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엑산회사의 배가 바다에 질질 흘려 생물들을 죽인 사고도 발생했습니다.

알래스카는 여러 번의 돈 벌 기회를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금을 찾아 젊은이들이 스캐그웨이( Skagway)를 지나 유콘까지 갔으며 알래스카하이웨이 때 캐나다의 주민과 미국군인까지 보수를 받았으며, 이 파이프라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의 힘과 돈은 무제한의 역사를 꿈꾸고 이룹니다.

먼저 지나갔던 토크(Tok)에 들려 밀린 빨래도 하고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13일 *7월 9일

  아름다운 도시 헤인즈 (Haines)로 간다니 마음이 들떠서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계속 드라이브를 하여서 다시 캐나다 국경을 넘어 쿨레인국립 공원에 이르게 되지요.

길고도 색채가 고운 호수를 지나면서, 솔디어 섬밑 (Soldier`Summit)을 올랐습니다.

길을 놓을 때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양쪽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북쪽에서 길을 놓으며 내려오던 불도저 소리와 남쪽에서 올라가던 부대들이 서로의 불도저소리를 듣고, 반갑다고 숲 속에서 춤추던 곳이 바로 솔디어 섬(Soldier`Summit)이고, 마지막으로 같이 뚫었던 곳입니다.  

서로 만나 손 벽을 치고 감격했다는 곳이지요.

이곳이  알래스카 하이웨이 개통식 하는 장소로 정해졌습니다.

산 위로 20분 정도 올라가면 기념비가 세워진 곳으로 쿨레인 호수를 지나면서 하이웨이 상에서 보이는 언덕 바위 위에 있습니다. 환상적인 바다같이 넓은 쿨레인 호수 전면이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여기서부터 헤인즈로 가는 길은 무시무시하였습니다.

하이웨이 상에 정말 가 도 가도 아무도 없고 깊은 산과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기만 하니 무서울 수 밖 에요...... 한때는 구름이 몰려와 온 계곡을 휘 덮다가 없어지니 그것도 무서웠습니다.

험하게 펼쳐진 산봉우리 사이사이로 글레시어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저녁은 오는데, 미국 국경이 닫혔으면 밤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하나요?

산 밑에 정착하고 있는 모터 홈 하나를 만났을 때 그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요?

구세주가 따로 없고 여기에선 인종도 가리지 않고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알았습니다.

거의 하루 종일 달리다가 이젠 캠퍼를 하나라도 만나서 안심이 되고 밤길도 환하니, 계속 달리기로 하였습니다.

길은 점점 좁아지더니 검문소 같은 국경이 나왔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니 사람이 나와서 친절하게 그냥 가라고 합니다.

 계곡은 흐르다가 바다를 만나고 집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젠 헤인즈에 왔구나! 캠퍼도 보이고 어두움이 이젠 무섭지가 않습니다.

해변 가에 붙은 캠핑장으로 들어가서 살금살금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 한밤중이므로 돈은 아침에 내기로 했습니다.

 

  14일 *7월 10일

바닷새들이 빽빽거리며 울고 날아서 잠이 깨였습니다.

상쾌하고 화창한 바닷가의 아침을 맞이하는 마음은, 산 위에서 새벽 해를 보는 심정입니다.

알래스카의 가장 아름다운 항구도시를 보려고 미국국경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수선을 부려 바닷가의 새벽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보니 새들이 수면을 나르며 물에 머리를 뒤집어 넣고 재주를 부리며 세수를 하고 있습니다. 웨이터는 맛있는 빵과 향기 나는 커피를 딸아 주었습니다.

푸른 기상의 아침 바다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가까운 호수의 공원을 들리기로 하였습니다.

절벽 밑으로 길이 나 있습니다. 길옆으로 강물이 바위에 굽이치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강물 속에는 여행자들이 물속에서 훌라이 휘시로 춤추는 연어를 땡 기며 신나게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쇠창살로 막아놓고 세운 기둥엔 오늘까지 잡아 올린 연어가 16000마리라고 적어놓고 있었습니다.

강을 따라 올라가니 눈빛 맑은 소녀 같은 호수가 있었습니다.

헤인즈의 산맥은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높은 산봉우리가 눈앞에 서 있는 듯 감명적입니다.

흰 모자에 흰 블라우스를 걸쳐 입고 초록과 남색치마를 입고 있는 정결하고 수려한 산 모습에 마음이 황홀합니다.

도저히 산을 오르지 않고는 길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산은 이곳의 입구에 들어오면서부터 인상적이었고 청초한 하늘과 맞닿아 멋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리레이산(Mt Riley)으로 향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멋진 산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여행 중에 이 멋진 모습의 산맥을 보며 하이킹 없이 그대로 떠날 수는 없지요.

산의 입구 찾기가 어려워 헤매었으나  잔 소나무 속으로 길을 찾아내었습니다.

사정없이 뛰어올랐습니다. 2시간 반 만에 잣나무가 없어진 상봉에 오르기까지는 땀이 비 오듯 하였습니다.

사방팔방으로 눈 산의 화려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산은 깨끗하다 못해 화려한 색채를 지닌 것처럼 보입니다.

봉우리 사이엔 글레시어가 폭포수 속으로 쾅쾅 굉음을 내며 떨어지고 있습니다.

산과 산 사이에 펼쳐있는 바다는 움직이지 않는 비단입니다.

이제 막 대림 질이 끝난 청록색 천이 널려있습니다.

걸려있는 구름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바다의 한편은 토해내고 있는 그 은색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상봉 바위틈에 앉아 경치에 취해 있는 두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헬리콥터를 몰고 시애틀에서 왔다며, 이웃동네에서 왔다고 반가워했습니다.

매킨리 산으로 간다기에 다닐 리 공원의 곰과 멋진 산 이야기들을 펼 쳐주었습니다.

바쁘게 서두른 5시간의 산행이었으나 신비의 물 색깔이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헤인즈에의 나무들이 알래스카에서는 가장 큰 나무였습니다.

  헤인즈는 작은 항구도시로 인구가 2000명이 살고 있는 예술가의 도시요, 관광의 도시입니다.

다운타운엔 상점이 연결되어 있고 선물들, 그림들로 깨끗한 시가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림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도시처럼 참 예쁘지요. 상점의 남자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여행 왔다가 , 도시를 잊지 못하고 아예 짐을 싸들고 여기에 와서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아저씨였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든 예술가들이 상점을 하고 산다는 이 멋진 도시는, 밤이면 관광배가 들어와 찬란한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밴쿠버 아일랜드에 있는 비슷한 예술가의 도시가 생각이 납니다.

한 예술가가 벽에 그림을 그린 것이, 지금은 동네 전체의 집들이 그림으로 꾸며져 있었지요.

우리는 밤배를 타고 스캐그웨이(Skagway)에 도착하였습니다.

 

 15일 *7월 11일

  스캐그웨이는 옛날에 금 캐는 사람들을 화잇호스( Whitehorse)까지 실어 나르던 기차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관광기차로 천길만길 되는 아슬아슬한 절벽을 칙 칙 폭 폭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여기엔 53킬로미터나 되는 미국과 캐나다 경계를 지나는 어려운 칠코트(Chilcot ) 산행코스가 있습니다.

옛날의 금 보따리를 짊어지고 줄지어가던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어 산행 가들이 꼭 가고 싶어 하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요. 아직도 금이 있다면 나보다도 다른 어떤 분이 죽기를 각오하고 갈 것인데, 금은커녕 들어가는 입장료를 내야 하는 판이니, 그래도 시간과 체력만 있으면 가고 싶은데, 아들의 튼튼한 등이 필요한 곳이라 지금은 남겨두고 가기로 했습니다.

 스캐그웨이에서 화잇호스로 넘어가는 길은 아슬아슬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산맥의 정상을 오르니 지도상에는 작아서 이름자도 없는 호수가, 돌 속에 있었는데 위험을 무릎 쓰고 차를 세워달라고 애원했던 곳입니다.

보석으로 따지면 비취반지입니다.

“사진을 찍었으니 사진을 보시지요. 얼마나 예쁜지 요? ”

 “나 이곳을 마음에 지니고 원 없이 떠나갑니다.”이번엔 캐나다의 국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국경 검문소엔 높은 곳에 요녀 같은 젊은 미인이 혼자 미소로 앉아 있어 놀랄 지경입니다.

무섭지 않아요? 하고 남편이 물으니 노! 노! 노 !노라고 하면서 권총을 빼어듭니다.

위급하면 쏘아댈 모양으로

“알았어요! 제발! 그만둬요! 아가씨!”귀엽고 친절한 아가씨는 잘 가라고 손까지 흔들어 주었습니다.

 

  얼마 달리다, 사람들이 서있는 호수 옆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에메랄드호수!

“누가 이 호수를 아름답다 했던가요?”

바로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이, 사랑스럽고 아름답다고 탄복할 것이니, 내가 시인이라면 시를 쓰고 싶은 심정입니다.

에메랄드호수는 한 가지 보석 색깔이 아닙니다. 두 가지 색깔도 아닙니다.

세 가지 색깔도 아닙니다. 네 가지 색깔도 아닙니다. 다섯 가지 색깔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살살 퍼져 색칠을 해놓았습니다.

 남편은 이것을 보다가 오색 청 농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문자를 써본다고 하여서, 맞는 것 같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대답하였습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었으나 색깔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는 유콘 강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샛길로 들어가서 금을 캐고 가야 하겠습니다.

혹시 눈먼 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사금을 흔드는 접시를 들고 강가로 나갔습니다.

물가로 풀들이 머리를 풀고 서로 간지럽다고 언덕에 비벼대고 아양을 떨고 있습니다.

금가루는 앞에 간 사람이 운 좋게 다 가져간 모양입니다. 금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걸립니다.

아무도 안 오는 좁은 길이라 냄새를 피우며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맛이 꿀맛입니다. 

배 타느라 잠 못 자고 등산하느라 피곤하여 모두 낮잠을 자기로 하였습니다.

기차게 단잠을 자고 테스린(Teslin)을 지나 왓산 레이크 (Watson Lake)에 다시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사인포스트를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하이웨이 옆으로 사인포스트가 줄줄이 세워졌는데 1996년에 조사하니 3만 개의 사인이 걸려 있었다 하니 지금은 더 많을 것입니다. 1942년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놓던 군인이 향수병에 걸려 고향 가는 길목을 표시해 논 것이 시작이라 합니다.

지금까지 오고 가는 여행자들이 전통으로 걸어 논 자동차 번호 판이며 자기 나름대로의 기억 물을 달아 논 것이 지금은 세기도 힘든 것입니다. 밤 11시쯤 그린벨리(Green Valley) 캠프장으로 찾아 들어갔습니다.

 

 16일 *7월 12일

  오늘이 떠난 지 보름하고 하루가 더 지났습니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밥을 사 먹을 데가 없어해 먹느라 7시에 출발하였습니다.

날씨가 뜨겁고 귀까지 멍하고 어지럽습니다. 길은 먼지투성이고 여기까지 오면서 유리창은 덕 테이프를 세 개나 붙였습니다. 세 번이나 돌에 맞아 깨졌다는 결론이지요.

다행히 유리창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고마울 뿐입니다.

길이 군데군데 아스팔트를 고치느라 먼지투성이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리아드라는 온천장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언제 또 올 가 싶어 맘껏 놀다가 가야겠습니다.

얼마 전 신문엔, 이곳에서 곰과 사람과 자리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하려던 엄마가 죽고 도우려던 사람이 물리고, 여행객이 총을 가지고 나와서, 곰을 죽여서 끝이 났습니다.

이곳은 사슴도, 곰도, 사람도, 식물도, 물고기도 모두 좋아하는 곳이라, 곰에 대한 주의사항을 지켜야 합니다.

  사냥하는 친구의 남편으로부터 들은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을 가다가 자연온천이 있는 곳에서 무스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돌아다니다 뼈가 쑤신 동물들이 오다가다 들리며 물을 마시고 관절을 푸는 곳, 그곳에서 영락없이 찾아드는 동물을 잡기가 가장 쉽다는 것입니다.

불쌍한 동물을 생각하면 그곳에서 잡았다며 친구가 준 고기는 목에 안 넘어가서 아직도 냉장고 속에 있습니다.

아주 배고프면 그때 먹어야겠습니다.

 하이웨이를 달리다 보니 이번엔 산양(Stone Sheep)이 할아버지에서부터 귀염둥이손자까지 나와서 아스팔트 위를 핥고 있습니다. 소금기와 같이 자동차기름이나 먹어 몸 상할까 걱정이 됩니다.

엄마 무스와 새끼 무스가 사이좋게 물속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가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는데 월프( Wolf)가 산밑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훠트넬슨( Fort Nelson)에서 좋은 캠프장을 찾아 지친 몸을 쉬기로 하였습니다.

 

  17일 *7월 13일

  아침 7시에 출발하여 끝도 없이 펼쳐진 길을 달립니다.

지나가는 구름의 모습도 지나가는 바람의 모습도 이 대지 위에선 신선하고 자유롭습니다.

집 생각이 납니다. 두고 온 강아지가 보고 싶습니다. 아들 녀석도 그립습니다.

집이 가까워 오는 까닭인가요? 여행을 하면서 일주일은 너무 짧고 10일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보름이 되면 집이 그립지요. 집이 좋던 안 좋던 우리의 몸이 집의 잠자리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한 이틀만 더 달리면 집에 갈 것입니다.

  어느 사이 또 한 번의 유리창이 돌에 맞은 것 같습니다.

차가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달립니다.

이젠 포트 센죤을 지나고 닷산크릭도 지나서 그랜패리로 가고 있습니다.

이 도시도 오일로 이루어진 도시일 것입니다.

팀 홀튼에 들려 도넛과 커피를 마시고 힌톤으로 해서 자스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지도상에 보여서 그 길을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 이게 웬일인가요? 길이 점점 어수선하고 포장을 고치느라 말이 아닙니다.

되돌아가기는 이미 너무 멀리 달려왔고 답답하고 가슴 조이는 일입니다.

거기다가 물 사태가 터졌습니다. 앞에 가는 차들이 물속을 해 매며 건너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트럭 한대가 중간에 서서 고맙게도 안내를 해주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물살은 점점 세어지고 있습니다.

경찰이 와서 길을 못 가게 막기 전에 건너가야 할 것인데 일초를 다투는 시각입니다.

다행히 건너게 되었습니다. 야! 하고 환성을 질렀습니다.

아마 건너지 못하였다면 우리는 그 먼지를 다 쓰고 하루 종일 온 길을 되돌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하늘이 도왔습니다. 

거기에서 배운 교훈은 남편의 말대로 “군자는 대로 행이라”는 말을 다음엔 명심하기로 하였습니다.

쟈스퍼에 있는 한국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고 자스퍼 캠프장에서 하루 밤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18일 *7월 14일

  벤푸로 가는 길을 신나게 달려서 루이스 호수 (Lake Louise)에 도착하였습니다.

책방에 들려 책 두 권을 사고 이리저리 돌아보았습니다.

루이스 호수는 복잡하지만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옛날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이 더 그리워지는 곳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가 1974년 이민 온 지 일 년 후였습니다.

한국에서 그림으로만 보았던 이 호수를 찾으려고 말도 안 통하던 시절 애를 태웠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호수는 조용한 그림이었습니다.

처음 본 순간부터 호수에 마음을 잃었습니다.

내가 딸을 낳았을 때 가장 아름다운 호수의 이름을 기억하였고, 딸의 이름은 루이스가 되었습니다.

 

대학시절부터 등산을 좋아하는 제가 한국에서 본 캐나다 달력 속의 호수그림

이상한 청 옥색 루이스 호수와 록기 산맥을 실제로 보기 위하여 여기까지 이민을 왔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요?

 

  지금은 사랑스러운 딸 루이스를 데리고 루이스 호수에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옛 시절로 돌아가 본다는 것도 행복한 일입니다.

골든 (Golden)을 지나서 레벨스톡(Revelstoke)을 지나 그 장장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 밤중에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집으로 들어서니 우리 강아지가 울면서 울면서 펄쩍펄쩍 뛰며 우리를 맞이하였습니다.

 

  알래스카 하이웨이의 여행은 희망의 여행입니다.

쉬운 여행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여행도 아닙니다.

인생의 길 같은 여행이라고나 비유할 가요? 나는 이 여행이 다른 여행과 조금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 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생각을 더해 주는 여행입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여행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적어도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던 여행이고 이것이 나이와 관계없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유럽여행에서 중국여행에서 미국여행에서 사람들의 역사와 그 많은 것을 보고 희생 속에 세워진 무지한 인간역사에 가끔 실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알래스카 하이웨이의 막막한 대지를 달리고 난 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땅은 이상하게도 우리에게 삶의 두려움과 걱정을 지워버립니다.

새로운 삶과 자유의 길을 보여 주는 길

알라스카 하이웨이

알라스카 하이웨이

젊음과 나이에 상관없이 가보기를 권 합니다.

( 1997년 밴쿠버신문에 올렸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