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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너의아버지의 나라는한국

제3장 일본의 한국 영아 신식교육시대 ?

by 산꽃피는캐나다 202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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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일본의 한국 영아 신식교육시대 ?

 

그 당시에 각 마을에 서당이 있었고 서당에선 한문으로 보통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서당에 다니던 시절

아버지의 세상에서는 장난감도 없고 과자도 없었지만 이야기 속에는 행복한 추억들이 남아 있었다.

밥을 하고 밥 솟 마지막에 남아있는 밥 누룽지가 최고의 간식이고 과자인 때가 있었다.

아이들 중에 힘쓰는 고 삼이가 대장이 되었다.

애들아 내일은 누룽지를 가지고 언덕 밑 왕 소나무 밑으로 전부 모인다. 알겠지?

대장 고 삼이는 누룽지가 딱딱하지 않고 질퍽하면 몹시 싫어하였다. 너희 엄마는 누룽지하나도 제대로 못 만드느냐? 하고 머리통을 한 대 박아 주었다. 아이들은 낄낄 웃고 고 삼이가 조금씩 나누어 주는 누룽지를 먹고 놀았다.

초가집 처마 끝 새집을 털고 다녔다.

불을 지피고 구워 놓은 새 다리를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철이야! 용이야! 우리  놀러 가자~

아이들은 여름이면 까불면서 산으로 들로 돌멩이처럼 굴러 다녔다.

팔랑개비처럼 날아다녔다. 하얀 얼굴에 눈이 큰 우리 아버지도 그 속에 있었다. 아버지는 10살 때에 건강한 체격에 이미 사서삼경을 외우고 있었다. 서당 선생님의 칭찬으로 신동으로 입 소문이 나 있었다.

 시대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지(1895년) 훨씬 지난 후였고

일본은 이미 머리 좋은 한국아이들을 자국으로 데려가서 교육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선전하고 다녔다.

 하루는  낮 선 순사 2명이  소년을 찾아왔다.

“네 이름이 군상이냐?”

소년은  겁먹은 모습으로 순사를 바라보았다.

순사는 소년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사서삼경을 그 어려운 것을 외운다는 소문을 듣고 너를 데리러 왔다. 우리하고 같이 가자.”

그 당시 칼을 찬 순사는  아이들에겐 무서운 존재였다.

겁이 난 소년은 손을 빼고 손 살 같이 부엌을 통하여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당황한 순사도  급하게  뒤를 따라 옆집 대문으로 들어섰다

칠성이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무슨 일인지 숨 가쁘게  물었다.

순사는 방안을 들여다보며 말하였다.

"저 방에 숨어 있는  아이를 데리러 왔소.”

“왜 그런데요?”

 일본정부가  아이들을 찾고 있는 중이요.

일본으로 데려가서 현대교육을 시키려고 하는데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데리고 가야 하오.

아주머니 어서 애를 데리고 나오시오.”

칠성이 어머니는 방문을 열까 말까 안절부절못하면서 한 손으로 치마 자락을 움켜줬다.

“군상이 아버지 가 알아야 할 것인데요......,

“부모에게는 나중에 소식을 전할 것이니 애나 내어 주시오.

순사는 방문을 열고

“너 일본으로 가서 학교 다니고 싶지 않으냐?

빨리 나오너라.”

“학교요?”

소년은 학교를 보내준다는 말에 이번엔 서슴없이 방에서 나왔다.

타박타박 먼지 나는 골목길을 지나 신작로를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칠성이 어머니가 뒷 산길로 군주 씨 부부가  솟을 굽는 읍으로 급히 내달렸다

“아이고! 군상 아버지 큰일 났어요.”

“웬일이시오? 아주머니!”

 “글쎄 군상 이를 일본으로 공부시키러 간다고 지금 막 순사가 데리고 갔어요.”

“뭐라고요?

“읍내 기차역으로 갔어요.

안심하라고요. 아주버님한테는 연락을 한다고요

 “그래요 내 자전거로 빨리 갔다 오겠소.”

그는불 때던 쇠 꼬챙이를 내동댕이치고  마당을 가로질러 급히 빠져나갔다.

햇볕이 훅훅  땅에 꼬치 도록 더운 날이었다.

소년을 태운 기차는 기적소리를 울리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군주 씨는 무조건 기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열차 안에 있는  순사들과 부닥쳤다.

“내 아들은 어디로 데리고 간다고?

딱 벌어진 그의 체격에  무섭게 눈매가 쑥 올라갔다.

당신들 정신이 있어?

내 아들은 내가 키워요 이 조선에서”

화가 난 그의 얼굴이 열기를 품어서 벌겋게 달아올랐다.

 “대체  애들마저 다 데리고 가면 이 조선은 누가 지킬 것인데?

내 아들은 신식 공부를 안 시켜도 좋으니 걱정도 마시오.

힘이 장사로 소문난 군주 씨는  노발대발하여 격투를 하다시피 아들을 끌고 기차에서 내렸다.

순사는 그를 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덩치가 크고 아무도 당할 수 없는  장사였다.

순사는 혀를 끌끌 차며 어이가  없다는 듯 군주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정 그때 일본으로 데려간 한국 영아들은 신식 교육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인가? 이 군상씨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대로 믿고 있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일본이 전쟁에서 이겼다면  이 영아들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을까?

부모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데리고 가는 무법

한국 영아 신식교육

아마 그것은  한국의 젊은이들을 데리고 가 혹사시킨 전쟁시대의 이야기가 더 가까운 대답이다.

일본 탄광 속에 숨져간 한국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전쟁시대 자기나라도 먹을 것이 부족한 시대에 한국 영아들을 교육시킨다는 그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제4장 박식한 고승의 가르침

 

한국은 80%가 산으로 아주 아름다운 땅

산속의 경치 좋은 곳엔 어디서나 불교의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전성기를 맞이했던 불교는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의 원효대사의 불심으로 더 번성을 이루게 되었다.

고려시대는 나라를 몽고족의 침임을 막기 위하여 위대한 불교의 팔만 천이백오십팔 판의 대장경이 만들어졌고

일본이 가져가려고 온갖 재주를 부렸으나 사찰에 조용히 숨겨진 대장경은

유네스코에 오른 한국의 위대한 경전으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이조시대엔 유교를 정부에서 장려하여 불교가 하향 길을 걸었지만

입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싸운 불교 승려들의 노력으로 불교가 다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서당공부가 지루해 질 무렵 소년의 두뇌는  더 많은 지식과 배움을 열망하고 있었다.

이곳을 떠나자.  다른 세상이 분명히 있을 거야

 스스로 스승을 찾을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밥을 굶으며 허리를 움켜쥐고 거리를 헤맸었다.

지나가다 동네로 들어가  하루 종일 일을 해주고 먹을 것과 쌀이나 보리를 받아 들고

스승 있다는 곳을 물어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속엔 불경을 연구하는 박식한 고승이 머물고 있었다.

절에서 심부름을 해주며 지식을 얻어 들었다.

아버지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불경과 상식과 인간의 법도에 대한 것들이었다.

고승을 따라 산길을 오르던 아버지는  꿩이 날개를 접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고승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사람이 비산이라는 극약을 어디서 구하는지 아느냐?”

“......,”

고승은 아버지에게 신기한 꿩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꿩이 알을 낳고 키우기 위하여 안전한 곳에 집을 짓는다.

꿩은 뱀들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변에 비산이 있는 곳을 찾는다.

위험을 냄새 맡은 뱀은 그 부근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꿩이 비산이 섞인 돌을 찾아내고 그 부근에 알을 낳고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니 그 지혜가 신기하지 않으냐?

그래서 사람은 비산을 구하려면  꼭 꿩 집을 찾는다.

짐승도 자손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점에 있어서는 인간과 똑같은 것이다.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이치를  분석하고 정리하여 그 유용성과 도덕성을 배우는 것이다.”

아버지가 절에 있는 동안  어떻게 마음속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가를 스님은 가르쳐 주었다.

비를 맞고 열병에 걸려 있을 때 스님은 소엽(들깻잎 말린 것)과 창출 뿌리 말린 것을  그에게 주었다.

 그가 봇짐을 다시 메고  남쪽 소나무 숲 속에 있는 깊은 암자를 찾았을 때

벚꽃이 만발하게 핀 정원을 걸으면서 스님은 혼인날을 점지하는 법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4월과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어느 달이든 달 중에는

  평균적으로 비가 오지 않고 눈이 오지 않는 날들이 있다.

결혼식 날이나 중요한 날을 잡으려면  이 비가 오지 않는 날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날 자를 적어두어라. 나중에 긴요하게 쓰일 때가 있을 것이니 그때 쓰도록 하여라.”

사실상 아버지가 한의사를 할 때에 소문을 듣고 좋은 결혼 날을 받기 위해 아버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평균적으로 눈이나 비가 오지 않는  날을  혼인날로  행복하게 쓰도록 점지하여 주었다.

 

제5장 1900년대 의 학문과 문화

 

옛 중국에는 봉 삼의 진일 십으로 시작되는 구단 법이 있었다.

실로 이 구단 법은 모든 셈을 하는데 기본이 되었다.

아버지는 구단 법을 통달하였다.

훗날  남한에서 아버지는 큰형을 불러 앉혔다.

원산 상업중학교 다닐 때  주판에 일등을 한 수재아들이다

"오늘은 너와 내가 내기를 해보자꾸나.

선생님이 가르쳐 준  신식 구구법과 내가 아는 구단법과 한번 내기를 해보자!"

아버지는 정말  실력을 겨루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신기하여 문제들을 적어놓고 시작하여 시간을 재었다.

신식과 구식의 계산법 대결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

주판에 일등 한 형을 꺾고 아버지가 이길 줄이야

봉삼의 진일십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계산법이 그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기”를 이렇게 모아보아라.

이것이  귀신이 접근하지 못하는  방도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도를 통하게 되면 빠르게 움직이며 벽 위로 걷는

위험한 축지법과 둔갑법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력이 통달된 몇 사람 정도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대부분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삼신 령 에게 정한 수를 받쳐놓고 복을 달라고 빌었다.

그들은 또 무당을 열심히 믿고 있었다. 일이 잘못될 때는

무당을 불러들였고 굿을 하여 악령을 멀리 쫓아 보내야만 속이 시원하였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논어 맹자 사서 칠 경 의학 서적 등을 통달하려고 전념을 다하였다.

그러나 학문은 대중화가 되지 못하였고 평민이 배우는데 안타깝게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종교는 이미 1800년대 후기에 입성한 천주교가 100여 년 간의 학대 속에서도

새 학문이 되어 죽순처럼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1885년 외국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과 경신고가 있었고

1910년부터 1920년 사이 경기 경복 서울 용산 학교와 진명여고 숙명여고 등 여자들의 학교가 설립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학문들은 그렇게 배우기를 열망하던 아버지가 안타깝게도 들어갈 수 있는 자유의 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