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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시절

그리운아버지

by 산꽃피는캐나다 2020. 12. 23.

            최춘호 수학박사

 

 

 

그리운 아버지

 

나의 아버님의 이름은 최춘호 씨이고 호는 우찬이 시다.

고려 때 군부정승을 지내시던 대호군파로 전해져 온다.

증조부이시던 최병조 씨는 부인 우 씨께서 첫아들을 낳고 일찍이 돌아가시자,

둘째 부인 전주 이씨를 얻어 두 아들과 딸들을 낳게 되었다.

돌아가신 첫째 부인 우씨에게서 난 장남 최장열 씨는 이 씨로(계모)부터 보리 한 말을 받아 들고,

대동리 김씨와 혼인을 하여 오막살이(고사리 우리 집 터)에 정착하게 되시었다.

최장열 씨는 가난에 시달리시다가 마음을 정하고, 수 백 리를 걸어 다니며 또 뒷산 밑으로 펼쳐있는

서해바다에서 배를 타고 다니시며, 목화장사를 시작하시었다.

그때가 1880년대쯤 되었는데 목화와 포목장사를 하시던 할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아들로는 최귀항 씨, 최귀익 씨, 최귀서 씨로 셋이 있었고 최귀항 씨는 함안 이 씨인

이 귀공 씨인 나의 할머니와 최귀익 씨는 이천 서 씨와 최귀서 씨는 탐진 최 씨와 결혼하게 되었다.

이때 동네 뒷산 아래 서해 바다로 일본해적이 들어와 강도 짓을 하여서 항아리에 돈을 숨기는 것이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고 한다. 엽전이 부피가 많고 항아리마다 가득 채우고 움직이기도 힘들었다고 할머님은 자랑하시었다.

1900년 초까지 장사를 하셨고 오막살이에서 세 가족이 같이 지내시다가

1925년에 김제 군에서 이름난 집을 짓게 되시었다.

재목은 바다를 건너 안민 도에서 배로 실어 날랐으며, 짓는데 반년이 더 걸린 대들보와 큰 재목으로 지어진 집이었다.

5년 후에 주위의 땅을 더 사시고 앞과 옆으로 똑같이 큰집을 건축하여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을 분가시키셨다.

장사하시는 동안 사들인 땅이 많아 그때부터 고사리의 부자 집으로 불리 우기 시작하였다.

장남의 며느리였던 나의 할머님은 돈을 많이 벌어오시는 시아버지와 뜻이 맞아 사이가 무척 좋았으나 세 살 아래 인 철없는 남편과는 공방이 들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할머니는 아들과 딸을 낳았고 임신을 하고 있었다.

운명의 신은 부유하게 잘 지내신 우리할머니를 시기한 것일까?

그 유명한 스페인 감기가 동네를 휩쓸기 시작하였다. 스페인 감기가 얼마나 지독하였는지 그때 죽은 사람이 일차 대전 전사자보다 많았다는 기록이었으니...... 일주일 사이에 할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잃게 되었다.

그때의 절박한 심정보다 더한 절망의 날들은 없었다고 할머님은 말씀하시었다.

10월 24일날 남편을 잃고 12월 26일 날 아버지 없는 우리 아버지가 유복자로 탄생되었다.

기구한 운명을 지고 가야했던 할머니의 연세는 꽃다운 22세였다고 한다.

그때는 일제 시대였는데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가 면에 하나씩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려서 서당공부를 하시었고 상 할아버지는 신학문에 반대를 하시었는데

홀로 된 며느리가 자식을 공부시켜야 한다고 우겨서 진봉면 진봉 초등학교로 보내게 되었다.

학생 수는 30명씩 4학년까지 있었고 전교생이 100명쯤 되었으며

고사리에서 10명이 십 리를 걸어서 책가방을 등에 매고 다뭇 상궐에 있는 학교를 힘들게 다니셨던 것이다.

나도 시골에서 재미로 십 리를 걸어본 적이 있어 차가 없을 때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세 분이었고 두 분은 한국사람이었으며 한 분은 일본인이고 학습은 일본말로 하였다고 한다.

아버님은 초등학교를 마치시고 김제에 있는 김제중학교를 다니시고 일등으로 졸업하시게 되었다.

아버님은 서울로 올라와 서울에서 두번째로 좋은 학교에 합격하여 경복 고등학교를 다니셨다.

당시 아버님에게는 잊혀지지 않던 하숙 생활의 고통이 있었다.

불은 때는 것 같은데 얼어죽을 것 같아서 부엌 아궁이를 가서 조사해 보니, 아궁이 속에 촛불이 켜 있더라는 이야기이다. 얼마나 땔감이 어려웠으면 그런 일이 있었고, 겨울 찬방에서 아버님은 한잠도 못 주무시고 날을 밝히셨을 것이다.

이때 아버님에게는 혼자만의 부끄러운 비밀도 있었다.

반에서 결혼한 고등학생은 혼자였던 것이다.

상 할아버지는 많은 농토를 돌보지 않는다고 고심을 하셨지만,

그 반대를 물리치고 아버지는 영리하신 홀어머니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히로시마에 있는 히로시마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시었다.

당시 아버님이 겪어야했던 굶주림은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추억이 되어있었다.

전쟁에 물자를 대느라고 돈이 있어도 먹을 것을 사 먹을 수 없는 어려운 시대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체격이 좋으셔서 다른 사람 두 배는 드셔야 했을 것이다.

하숙집에서 싸준 점심은 아침에 다 먹어도 허기가 나서 배를 물로 채우다가, 학교도 빠지고 농사일을 하루 종일 도와주고 밥 한 끼를 얻어먹은 날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 뒤로 배고픈 이야기가 고향에 전달되어 어머님이 콩을 볶아 붙여주신 것을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하시면서 일본인의 인종차별도 있었지만, 배고픈 설움이 제일 견딜 수 없었다고 하셨다.

일본에서 전쟁의 사태가 위험하게 돌아간다는 소식이 나돌던 때,

영리하신 할머니와 어머니가 꾸며넨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 는 전보를 받게 되어서 한국에 돌아오시게 되었다.

그 뒤 한달 후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가?

히로시마가 원폭으로 하늘에 선명한 광채로 휘덮인 것이다.

당시 거기에 있었던 아버지의 친구들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원폭의 후유증으로 하나같이 젊은 나이에 길을 떠나셨다고 말씀하셨다. 일본에 있던 일본 친구들도 알아보니 같았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어머니의 염려가 없었다면 아버님도 일찍이 세상을 떠났을 것인데, 덕분에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고 아슬아슬하게 그곳을 떠나게된 것을 기뻐하시었다.

돌아오신 후 해양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시다가, 인하공대를 거쳐 한양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하시었다.

그 후에도 70세가 넘으시도록 전주 우석대학원에서 다시 강의를 하시었고 50년 세월을 교단에서 보내셨다.

아버님은 2남 5녀를 두셨으며 자녀들이 결혼하여, 후손까지 합하니 전부 22명의 후손을 두시고

1995년 11월 25일날 먼길을 떠나셨다.

어디를 가시던지 수학 책을 가지고 다니시던 아버님.

 

“아버님은 남은 여생을 어디에서 지내고 싶으신 가요?”

하고 남편이 물은 적이 있었다.

“글쎄! 원 고사리에 가면 할아버지가 지으신 70년도 더 된 고향집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네. 그 고향집으로 가서 산언덕도 올라가고 조용히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네”

산과 여행을 좋아하시고 자연의 모습을 감탄하시던 아버지는 지금 어디로 가신 것일까?

지금 고향 하늘이 그리워 풀꽃을 키우시려고 떠나신 것일까?

캐나다의 자연을 유달리 좋아하셨던 아버님, 아버님과 같이 거닐었던 산길에서 오늘도 그리움에 젖는데, 한번 간 세월은 돌아올 줄 모르니 삶의 의미가 결국 외로움과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아버님과 다니던 길에서 보니 냇물은 아직도 청수로 흘러가나, 산속에 내 버려진 옛 수레는 세월 속에 녹슬어 있음이 왠지 슬퍼진다.

아버님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써보았다.

 

 

 

 

산 세월

 

 

 

세월은 같이 흘렀건 만 요.

흐르는 물결은 청수인데 바퀴는 녹슬었어요.

 

이 물결 흘러 넘쳐 어디로 가나요?

인생은 가다 오다 어디로 숨긴가요?

 

인생이 세월보고 가지 말고 놀자 했더니 듣지도 않고

떠나갔어요.

 

밥줄로 묶어놓고

바위로 눌러놔도

흘러가는 세월

 

인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세월 달래지 못하니

꽃이나 새, 바람, 구름 따라

이 산 저 산 다니면서

마음이나 붙이고...... 살아야 하나 봐요

 

꽃이나 새, 바람, 구름 따라

숲으로

아늑한 숲으로

갈 터이니

아버님은 그럼 산이 되세요,

저와 즐겨 놀던 산이 되어 주세요.

 

그리운 아버님

 

 

1998년 린 헤더 워터 산책길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코로나 덕분에 나가지도 못하여

새로운 사진도 올릴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지난시절의 글과 사진 속에서 만나는

오늘 하루도 고맙습니다

 

오늘은 2020년 12월 22일

산여울은

아버지보다 지금 2년을 더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사랑하시던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지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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