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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essay) 단편소설

영화 국제시장을보고

by 산꽃피는캐나다 2015. 1. 27.




밴쿠버 코귀틀람 영화관에서

국제시장을 보고

그동안 알고 있는 상식으로

저 자신이 스스로 밴쿠버의 초기 1970년대 이민사를 쓰게됩니다


국제시장에서 본  1970년대

바로 우리 나이의 이야기 이기에

또 우리하고 가까웠던 우리친구의 이야기 이기에

보고나서

무어라 할말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1970년초기  약사가 필요했던 밴쿠버에  처음 이민 가방을들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수소문끝에 남편과 같이 몇명의 한국 사람들과 만나게되었지요

그들도 우리와 같이  첫이민자들


용감하게 독일탄광에서 임무를 마치고

직접 수소문해서 이곳으로 이민온 한 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었지요


그들로 부터 들은소식은 독일 지하탄광에서 

모두가 깜해서 빤짝반짝 눈밖에 안보이는 청년들을 보고

독일을 방문한 박정히 대통령이  고맙다고 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는 

그당시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우리들도 나라를 사랑하는  같은 심정늘 나누게 되었지요


월남 전쟁에 참전했던사람들이 또 이곳에 오고 있었지요

캐나다

미국으로 왔던 의사들이 계약이끝나고 몇몇이 이곳에 왔었구요

목사로 조금 일찍 오신분이  교회를 통해서  서로의 정보를 주고받게 일하고 있었고

몇명의 약사와 그리고 서울대학교의 광산과와 지질학과를 졸업한 청년이있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군인부대에서 근무한 캐나다 사람과  결혼한 분이 한분 있었고요

그리고 미군부대에서 10년이상 근무한 분들이 자유롭게 몇분이 가족을 테리고 이민으로 왔고요

그리고 원양어선이나 해군선박에서 일하던 냉동기술가진 분이 캐나다 요구사항에 합격되어 들어왔지요.


그리고 몇년이 지나자 제일 한꺼번에 많이 들어온 수자는 100이 넘는 방직 공장직원들입니다

한국의 어여쁜 딸들이 해보지도 안은일 방직공으로 와서 열심히 일을 했었지요

돌아가지않고  위니펙에서 밴쿠버나 토론토로 이주하게 되었지요

그뒤로 친척초정으로 많이 들어오게되었고 그러나 한국외화가 부족한탓으로 돈은가져올 수가 없었지요


1980년후기에 투자이민이 시작되었고 그들은 돈을 가져왔기에 대부분이

힘든 일을하지 않아도 되었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낮설고 돈 몇푼 들고 오지 않았던 초기이민자들

그들이 할수 있었던 것은 살기위한 노동이었습니다


그당시 가장 용기있게 장사를 시작한사람들은

서독에서 온  젊은부부들 이었습니다


언어도 통하지않고 장사경험도 없는사람들이 밴쿠버 에서

밤을 새워가며 이민역사를 이룬 것은

1970년대의  바로 서독과 월남에서 온 젊은 이 들입니다

덕분에 한국사람들은 정부로 인정을 받았지요


우리도 밴쿠버에 미리 도착한 그 친구들 덕분에

직장생활을 집어치우고 아직까지 장사를하고 있습니다.



이젠 이민사에서 오고가며 가장 친했던 친구의 이야기를 하렵니다

바로 국제시장을 보니 그속에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광부로 건너갔던 청년 그리고 그곳에서 간호원과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돈을 벌기위하여 영화속의 주인공처럼 월남에 갔습니다

한국의 부모 형제들을 돌보고 부부가 국제시장 대신에 캐나다를 향해왔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을 초청하고 학교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밴쿠버 보다 더 추운곳 에드몬톤에 처음자리를 잡았습니다


에드몬튼에서 그 남편은 해보지도 않은  웰딩을하고  부인은 서독에서처럼 간호원을 하였습니다

추위를 벗어나 밴쿠버로 이사오면서 그분들이 장사를하고 싶다하여 우리를 찾아왔고

우리는 서툴지만 장사에 대한 상식을 도왔습니다

 누구보다도  정이 많아 오고가며 시름을 나누고 새 친구가 되었던 부부

우리가 만나는 멤버중에서는 가장 어렸지만

그친구는 월남전의 후유증으로 페암이 선고되었고 안타깝게도 지난해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미래가 보이지않던 암흑의 시대에 희망과 촛불을 켜주었던 젊은이

 고난의 삶이었지만

 이민속에서 행복을 찾는 삶이었습니다.


국제시장에서 이북과 이남분단 70년 

국제시장에서  여의도 광장의 이산가족을 보았습니다.

서로의 눈물나는 가족찾기를 보며 또 다른것을 느낌니다

이 영화는 셰계가 다 보아서 한국민의 분단의 가슴을 같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점으로 이영화를 만들어주신 분들게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그래서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큰 나라들이 동조하여 비무장 지대를 유네스코 헤리테지로 허락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전세계 관광객들이 아름다운자연  꽃들을보러 모여 들면

세계나라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누가 감히 그곳에 폭탄을 터트릴것이며

나 같은 적은 마음으로도 생각해봐도 

유네스코 헤리테지가 된다는그자체가

스위스같이 평화가 저절로 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으로 남한 북한도 서로 왔다갔다 하며 

서로가 전쟁 연습으로 그많은 무기를  팔고  사들일 필요도 없고

바다나  하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더 헤치는일도 없을 것입니다


앞으론

전쟁 무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전쟁무기로 돈 을 버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사람들이 더 노력하고 소리를내고 비무장지대가 유네스코헤리테지가 되도록

세계의 동심을 얻으면


새들과 나비들과 꽃들과 동물 바다물속까지도  평화가 올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땅에


2015년 1월25일

산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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