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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essay) 단편소설

편애

by 산꽃피는캐나다 2012. 12. 13.





 

편애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처음 찾은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산다는 곳을 물어물어 갔을 때, 나는 그 동네가 어려서 살던 곳이라 착각할 정도로 비슷하다고 느꼈다.

들어가는 길에 집 담 밑으로 개울이 졸졸거리며 흐르고, 매미 소리 같은 것이 울렸다. 포프라 나무사이로 바람이 불어왔고 콩밭이 있었고 흰 꽃들로 얼룩진 목화밭도지났다.

나의 마음은 17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나는 기쁨으로 전율하였다.

나는 커다란 대문을 삐걱 소리를 내며 열고 들어갔다.

“할머니 저 왔어요.”

나의 목소리는 감격에 차서 울음 반이 되었다.

할머니는 대청마루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래 정말로 네가 찾아 왔구나.”

 

나의 손을 잡는 할머니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너를 보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할머니 저 두 그랬어요.

할머니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파서 길을 운전하며 가다가도 눈물이 뺨으로 흘러 내렸어요.

이렇게 만나다니 꿈만 같아요.”

“순이야, 아마도 마지막 떠나는 날 서로 보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나도 서럽게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내 가슴도 여간 아프지가 않았어.”

 

“그런데 할머니가 가시는 날 일부러 저의 꿈에 나타나셨나요?

저는 그동안 살아가면서 그것이 너무나 알고 싶었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복사꽃처럼 환하게 하늘로 떠나시며......,

저를 찾고 있는 것이 너무 이상하여 꿈에서 깨어났던 것 이예요.”

“그래 순이야 내가 떠나는 마당에 어떻게 너를 찾지 않겠니?

정말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내게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부터 내정신과 육체의 죽음이 교차되는 순간까지 온 영혼을 다하여 너를 부르고 찾았단다.

그때 나는 보았어.

너는 밤중에 내 목소리를 듣고 일어나 무릎을 꿇고 내게 빌고 있었어.

지금 그곳에 갈수가 없어요. 어떡해요 할머니 나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라고 절규하는 네 목소리를 듣고 있었단다.”

 

“순이야

몸은 태평양 건너 멀리 있었지만 ,마음만은 어디든지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나도 그때야 알았단다.”

“할머니 저도 그날 일은 너무도 생생하여 사는 동안엔 잊을 수가 없었어요.”

 

“순이야

우리의 다정한 마음은 죽음 끝에서도 서로 통한다고 나는 믿는다.”

“저도 그래요, 할머니”

“우리의 사랑이 다 불타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렇게 만나서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할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솜털처럼 따뜻하였다.

그랬다.

나는 그녀가 간 뒤에도 단 십분 만이라도 만나길 언제나 소원했었다.

그녀는 내가 살면서 가장 나를 사랑해 준 사람이고 나의 사랑을 가장 아프게 가져간 사람이었다.

내가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해도 , 나는 신에게 그녀를 나의 할머니로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녀 무덤 앞에 작은 풀꽃으로라도 다시 피어나서 그녀를 만나보기를 원하였다.

 

그녀는 내 어린 시절,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수분이었고 흙이었다.

무르익은 복숭아처럼 달고 진실한 마음을 내 머리에서 발끝까지 부어준 특별한 분이었기에

내 마음속에 이슬처럼 맺혀서 그분을 한없이 찾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제 내 손을 잡고 어려서 놀던 텃밭을 가보자고 하였다.

집 마당을 돌아가 우물이 있었고 반대편에는 아름다운 텃밭이 있었다.

탱자나무가 가시를 달고 별 같은 탱자 꽃이 울타리에 눈꽃처럼 가득히 피고 지고 있었다.

“순이야 이 탱자를 먹어보렴.”

“그건. 너무 시어요. 할머니.”

“그럼, 한번 깨물고 한쪽 눈을 감고 뱅글뱅글 돌아보렴.”

“그랬어요. 생각이나요 할머니”

나는 그 탱자울타리 밑에 눈물겹게 서있었다.

 

그 밭에는 아직도 윤기가 반들반들한 보랏빛 가지들이 탐스럽게 달려있었다.

그 나머지는 쑥갓 고추 상추 파 마늘도 골마다 줄지어 심겨져있었다.

“순이야 너는 이 밭을 지날 때면 도 가리를 틀고 앉아 있는 뱀이 무섭다고 내 치마 끝에 매달리곤 했어.”

할머니는 그때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놀라 넘어지는 그 뱀을 할머니는 친구라고 하셨지요.”

할머니는 예전처럼 또 웃으시었다.

“새벽이면 이 대나무 숲에서 잠을 자던 잠자리나 호랑나비도 생각이 나겠구나.”

“할머니 저기보세요 왕잠자리가 아직도 자고 있어요. 어서 잡아주세요.”

나는 할머니가 밭을 돌보는 동안 그 텃밭에서 사금파리로 그림을 그리던 어린시절이 다시 그리워졌다.

할머니는 22살에 남편을 잃었고 시아버지와 같이 살았다고 하셨다.

나는 방안에 사진으로 걸린 얼굴이 긴 상 할아버지나 상 할머니를 본적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는 언제나 혼자였었다.

할 머니는 나를 데리고 산에도 올라가고 바닷가도 내려가고, 논을 휘둘러보았고, 밭을 돌아다녔다. 누구보다 아름다운자태와 깨끗한 용모는 할머니가 다니는 길목을 환하게 비추었고 나는 그런 고운모습의 할머니와 다니는 것이 꽤 자랑스럽고 기뻤다.

할머니는 싱싱한 계를 고추장에다 막 버무려 요리를 하셨는데 지금생각해도 그 맛은 군침이 도는 것이었다.

“순이 가 계 맛이 단단히 들었구나.

오늘 배꾼이 고기 잡아 들어오기 전에 우리도 뒷강 변으로 가보자.”

할머니는 나를 꽁지에 달고 산을 오르고 다시 내려가 펄떡펄떡 뛰는 생선과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계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텃밭에 나가 쑥갓이나 시금치나 아욱을 뜯었고 새우나 조개를 넣고 된장을 풀어서 할머니는 맛있게 국을 끓이셨다. 생굴과 송송 쓴 파를 많이 넣고 찐 계란은 할머니가 자주 만드는 맛있는 요리였다.

“아! 이 맛있는 것을 다시 먹어 볼 수 있다니!”

나는 금시 입이 함박꽃이 되었다.

“그래 그동안 못 먹어본 것 많이많이 먹어라.”

할머니는 내 옆에서 예전처럼 밥 먹는 나를 기분 좋게 바라보고 계셨다.

할머니는 다락으로 한쪽 무릎을 짚고 한번 쉬였다가 올라가시더니 함지박에 감을 들고 내려오셨다.

“할머니 그 함지박은 제가 캐나다로 가져갔었는데요.”

“그랬었구나. 그래서 이것 하나만 지금 내손에 남아있구나.”

할머니는 한숨과 미소를 지어보였다.

“할 머니 ! 얼마 전에 시골에 잠간 들렸었는데 할머니가 쓰시던 물건은 하나도 없었어요. 장롱부터 놋그릇, 수저가락까지 아무것도 없었어요. 심지어 벽시계도 골동품 장사들이 이 동네를 다 뒤지고 돈을 많이 주고 다 사갔다고 했어요.

제 가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할머님이 다락에다 먹을 것을 담아 저를 주셨던 그 함지박, 다 떨어진 함지박 박에 없었어요. 저는 그 함지박을 보자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날정도였어요. 그래서 그 함지박을 소중히 안고 다시 캐나다로 갔어요.”

“그랬었구나.”

“함지박에는 항상 너를 줄려고 사탕도 담고, 산자도 담고 부수게도 담고, 감자도 담고, 사과도 담고, 감도 담았었지.”

할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 나의 손을 잡았다.

“순이야 그 장롱이 없어졌다면 그 장롱 속 밑에 감춰 논 돈도 못 찾았겠구나. 쯧 쯧!”

할머니는 가느다란 신음 소리를 내었다.

나는 갑자기 할머니를 부르며 울음이 터질 번하였다.

“할머니 알아요. 언니로부터 그 장롱 속에 감춰 두 엇던 돈 이야기는 다 들었어요.”

 

나는 행복했던 유년시절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내가 방학 때마다 시골에 가면 벼농사지은 것을 팔아서 떠나는 내손에 꼬깃꼬깃 접은 돈을 주셨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었다. 방학이 끝나면 언제나 나는 부자가 되었다.

나는 그 돈으로 공책도사고, 옷도 사고 만년필도 샀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줄 예쁜 구슬 핸드백도 샀었다. 할머니도 그 구술 핸드백을 동네사람들을 불러다 자랑 하실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할 머니는 저를 멀리 외국으로 시집을 보내니 보지 못해 서러워서 살수가 없다고 하셨지요? 저도 돈을 드리고 싶었어요. 저도 한번쯤은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보낸 그 돈을 장롱에 감추고 손도 대지도 않으셨다고요?”

 

“순이야

캐 나다에서 고생이 심 하다는 데, 누가 그러는데 미국 돈 1000불을 벌라면 굉장히 고생을 해서 벌었을 것이라고 하더라. 할미가 그 아까운 돈을 쓸 수 가 있다고 생각 허냐.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서 못쓰겠더라. 네가 한번은 꼭 온다고 하였으니, 그때 써줄라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래, 우리 새끼 오면 줄라고, 미국 돈을 꼬깃꼬깃 장 농 밑에다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두었지.”

나는 가슴이 맺혀서 할머니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할머니!

언니가 그러는데 할머님이 돌아가신 뒤에, 아버님이 그 돈을 장롱 속에서 찾아냈다고 했어요.

그리고 아버님은 돌아 앉아 눈물을 훔치셨다고 하였어요.”

“그랬었구나.”

할머니는 조금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다보았다.

 

“아버지는 만나보셨나요?”

 

“그런데 말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부모에 대한 정을 더 기억하더구나.

너의 아버지처럼 말이야

누구나 마찬가지지! 살 동안엔 너무 살기가 망하고 바쁘다보니까 자기 새끼들 거느리기도 온힘이 빠지거든!”

할머니는 우스운 듯 처음으로 호호하고 웃으셨다.

나도 할머니를 따라 웃었다.

나는 아버지의 곧은 심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뚝뚝함과 무심함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에 할머니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었다.

따뜻한 할머니를 만난 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 역시 할머니를 만났기에 그 순간이 그렇게 가슴이 벅차서 어쩔 줄을 몰랐으니까.

나는 할머니 곁에 오래오래 있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스르르 잠든 사이 할머니는 내손을 이불속에 가지런히 넣어주시고 조용히 떠나셨는지 다시 볼 수 없었다.

 

 

내가 죽어서 두 번째 만난사람은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를 찾느라고 기진맥진할 정도로 돌아다녔다.

하늘에서 하늘로, 구름에서 구름으로, 구름 동네를 지나 마을에서 마을로, 어머니는 대체 어디에 숨으신 것일까? 그러다가 생각해낸 것이 어디 산속에나 가서 혼자서 자유롭게 있고 싶다고 하신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심심산중 덕유산 골짜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골짜기 돌 들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 거기에 우거진 풀잎과 나무들, 단풍잎들은 바위에 떨어져 흐르는 물에 샤워를 하고 붉다 못해 핏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무주에서 구천 동까지 가는 길이 멀고 먼 9십리 길

거문고소리가 난다는 청금 대를 지나, 가을밤 연못에 비추이는 신비한 달이 있는 추월 담에 다다랐다. 달빛아래 은빛 물줄기가 장관이라는 월하 탄을 지났다. 물이 맑아 거울 같다는 면경 담을 지나,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구천폭포에 이르러도 어머님의 모습은 찾을 수 가 없었다. 구천동의 경관을 안고 있는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에 이르러 밑으로 내려앉은 산하의 아름다움에 심호흡을 하며 나는 향긋한 풀냄새와 공기에 취해 버렸다. 한잠을 자고 일어나 산을 위아래로 차근차근 둘러보아도 어머님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 한 끝에 발걸음을 옮겨 단풍이 불타고 있을 내장사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아마도 어머님은 11월의 불타는 단풍구경을 하러 떠나셨을 거야.

아래서 멀리 올려다보니 돌 산 위로 붉은 단풍나무 잎들이 여기저기 손끝을 대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광경은 진달래꽃으로 단장한 봄 산보다도 더 화사하고 수려하였다.

그 단풍은 내 마음을 진품으로 적시더니 영혼까지 황홀하게 흔들고 있었다.

마침내 그곳을 천천히 기어올라 돌산 밑을 비스듬히 돌자니, 그 화사한 단풍나무 밑에서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반가운 분!

“순이야 이곳까지 찾아오느라 애 썼구나!”

어머니는 감격에 차서 내 손목을 꼭 붙잡았다.

어머니의 따뜻한 음성이 녹아내려 뜨겁게 심장 속까지 다리미로 대리는 듯 하였다.

나는 어머님의 손을 잡은 채로 별 같은 어머니의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너를 멀리 떠나보내고 네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어머니!

편지를 그렇게 받고도 답장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사느라고 많이 애썼구나.”

 

“세상을 살면서 사는 고통을 인고라 하였던가?

그래, 사는 동안은

사람들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단다.

나도 그랬었지

지금 와서 생각하니 무엇 때문에, 쓸데없는 곳에 마음을 두고 살았는지 알 수가 없구나!

신이 창조한 것 중에서 물질에 빠져 버려 헤어 날줄을 모르는 것은 사람들뿐이란다.

물질의 속임수에 걸려들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예가 되어 나도 그렇게 살았구나.”

 

 

“살면서 정작 필요한 것은 옷 몇 개와 이불하나 베개 하나 신발 두 개 숟가락 등인데, 우리는 사들이고, 자랑하기 위해서 살았더구나. 이리저리 치우느라 부산하고 정신만 없었지.”

“어머니, 그 물건들은 언젠가는 독소가 되어서 지구를 망하게 할 것 이라 생각해요. 해마다 만들어내는 새 자동차들을 생각해 보세요. 세상이 차 쓰레기로 꽉 차게 될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래, 나도 그런 생각을 하였다. 너무 많이 만든 독한 전쟁무기는 버릴 때가 없어 전쟁을 일으키고 남의 땅에다 쏘다 붓는 것이 아니겠니?”

어머니는 평화로운 옛날이 그리운 듯 먼 곳을 바라보았다.

“순이야

우리들의 유년시절이 그립고 행복하듯이, 이곳에오니 고생스러웠지만 내가 살던 지구의 세월이 그립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단다.”

어머니는 입술을 다문체로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그동안 할머니는 만나보셨나요?

아니다. 나는 아직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지 못하였단다.

그리고 내가 병으로 고통 하며 사는 동안 할머니를 원망하였단다.

이제야 그 미움도 사라지고 나도 정신이 드는구나.”

 

“어머니 미안해요

언제나 나는 할머니 편이었으니까요.”

“그래, 너는 언제나 할머니 편이었지? 내 속 타는 마음을 다 늘어놓아도 넌 항상

할머니 편에서 떨어질 줄 몰랐지. 너는 나의 섭섭함을 의식하려고도 하지 않았어.”

“할머니는 항상 혼자였어요. 난 그분의 영혼까지, 외로운 영혼까지 사랑한 모양 이예요.”

“그랬을까?”

 

“그분의 사랑은, 어린나이에 남편을 잃은 그래서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그녀의 사랑은 어머니에겐 질식할 것 같은 그늘이었으나 우리들에겐 고운달빛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그분의 사랑은

분리되지 않고, 직선으로 ,순수하게 비추이는 그런 자연의 아름다움, 바로 그것이었어요.”

“순이야

나도 알고 있단다.

그분의 사랑은 너무 순수하여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아무런 모사가 없었지.”

어머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옛 생각에 잠기셨다.

어머니!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는 언제나 혼자였어요. 긴 겨울밤에도, 뜨거운 대낮에도 그녀가 한숨을 쉬며 달빛을 바라볼 때도, 아니 그녀가 악착스럽게 방에 들어온 쥐를 잡아야 할 때도 그녀는 혼자였어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나는 혼자인 할머니 곁에 있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었어요.”

 

“아마도 몸이 약한 내가 아이 셋을 키우기가 힘들어 너를 할머니에게 보낸 것이, 너를 그렇게 만든 것 같구나.”

나는 자식들 중에서 왜 하필 나를 할머니에게 보냈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은 다물고 있었다.

 

“순이야 지금 말이지만,

내가 너를 키우지 못한 것이 미안하구나.

너를 보면 마음이 아팠었다.

그러나 네가 병들어 돌아 왔을 때 내가 특별히 돌보지 않았으면 너는 살수가 없었으니까, 자식들 중에서 맛있는 것을 감추어 먹이느라고 내가 혼이 났단다.”

어머니는 그때 스릴이 생각나시는지 호호하고 웃으셨다.

“알아요.

어머니 그런데 말예요 그 잠간의 편애 때문에

나는 형제들 사이에서 미운오리새끼가 되었어요.”

“나 는 언니와 오빠와 놀고 싶었지만, 그들은 나를 밀어내고 놀려대기만 했어요. 어릴 적 인형놀이 하는 것이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동생들과 인형놀이를 싶었지만 두 동생들이 꼭 합세를 해서 내 인형을 항상 마구 두들겨 팼어요, 나는 매 맞은 인형을 안고 훌쩍 훌쩍 울면서 잠이 들었어요. 놀이를 하고 싶은데 날이 새면 내 인형만 때리는 일은 반복 되었어요. 그때 일을 너무 아파서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나는 내 불쌍한 인형을 지금도 꿈속에서 만나게 되요.”

“그랬었구나!”

 

“저를 살려 보겠다고 몰래주는 눈깔사탕이나, 파인애플 주스, 참외나 수박등이 형제들을 몹시 화나게 만들었나 봐요.

갑자기 나타난 오리새끼하나가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어머니는 저를 보호하느라 애가 타셨겠지요.

어머니! 요즈음에 왕 따라는 말처럼 저는 언제나 외톨이였어요,

아세요, 내가 왜, 정다운 할머니만을 그리워하면서 살았는지?

아마 어머니도 기억 하실 거예요? 옆집 조그만 두 예쁜 영자와 영돌 이 말 이예요.

하루는 영돌 이 엄마가 병든 애하고 놀지 말라고 꼬맹이들을 데리고 갔지요.

어찌된 일인지 동생들도 언니도 그 뒤부터는 저하고는 놀지 않았어요.

저는 홀로 절단된 체 신발이 널브러진 현관 유리창에 갇혀서 밖에서 마음껏 뛰놀고 있는 형제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그래 나도 기억이 나는구나.

내가 너를 살리려고 애가 탔을 때, 철없는 네 형제들은 편애 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르지!”

어머니는 잠간 긴 한숨을 후후하고 내 쉬였다.

 

“그런데 어머니 제가 그 후에 느꼈던 속마음을 지금 다 털어놓아도 될까요?”

 

어머니는 궁금한 듯 나를 바라보셨다.

“그래, 나도 진실을 듣고 싶구나.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딸 이예요. 그것만을 믿어주시면 좋겠어요.”

나는 그동안 내가 느꼈던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서로 오해를 풀 수 있는 말이 듣고 싶었으니까

나는 언니나 오빠가 공주나 왕자처럼 단장을 하고 찍은 어릴 때 사진을 바라볼 때마다, 내가 태어난 세상은 다른 것처럼 느꼈다고,

나의 어린 세상에는 할머니만 존재하였다고,

나의 어린 세상에는 왜 어머니는 없었냐고?

 

어머니는 산후병을 앓고 있었고 어머니가 완쾌된 후에도 나는 시골에 왜? 돌 맹이처럼 남겨져 있었냐고,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갔다가 다시 무더운 여름 아저씨의 자전거에 실려 나만 왜 어머니 곁을 다시 떠나게 되었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고,

큰딸과 큰아들 동생들은 어머니 곁에서 사랑받고, 나는 왜 어머니 곁에서 살 수 없었는지를 ?

 

내가 건강을 찾았을 때 나는 심한 사춘기를 앓았다.

나는 배반당한 자신에 분노하였고, 견딜 수 없는 자아를 찾기 위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자살을 꿈꾸기도 하였으나 그곳엔 언제나 할머니가 존재하였다.

사춘기가 막을 내리고 내가 더 철이 들면서 벽은 헐리고 어머니는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고 나도 어머니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우리는 속말을 다 할 수 있는 다정한 친구가 되었으니까

어머니는 나의 순수함을 사랑하였다.

그 순수함은 바로 달빛 같은 할머니로부터 전달된 것이었다.

지독한 결벽성, 자연의 순수함 그것은 할머니로부터 키워지고 길들여 진대로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캐나다로 온 후로 가난에 시달리면서 나는 무엇인가 받아드려지지 않는 부분이 마음에 남아있었다.

어머니는 캐나다에서 사는 나의 가난을 마음아파 하셨다고 했다. 나를 보낸 뒤 눈물바람으로 길목을 다니셨다고 하셨다.

 

그러나 어머님은 나의 가난과 눈물바람을 아파하시면서도 그동안 내가 일해서 번 돈을 그대로 가지고 계시다가 떠나셨다.

나는 아직도 왜 그러셨는지? 그 우물 속 같은 마음을 모른다.

 

어느 자식을 더 돕고 싶었을까? 어느 자식이 더 귀하게 느껴졌을까?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땅을 사시고 사업을 하려 했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내가 어려서 할머니에게 맡겨졌던 것처럼 ....... 어머니는 여전히 다른 자식들을 편애하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어머니의 눈에서는 물기가 번지였다.

“순이야, 난 좀더 살았어야 했어

너를 만나기 위해서 난 좀 더 살았어야했어.”

어머니의 슬픈 목소리는 곧 내 가슴을 처량하게 울렸다.

나는 왜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지 못하고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하고 곧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어머님은 말씀하시었다.

“나는 너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무심한 것, 네가 떠난 자리가 얼마나 큰 빈 공간이 되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어머니는 목이 메었다.

나 역시 올라오는 뜨거운 사랑이 다시 가슴을 메웠기에 나는 찬물을 들이키며 식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머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절대로 편애한 적이 없단다.”

 

편해한 적이 없음을!

거듭거듭 하늘에 맹세코 그런 일이 없었음을!

어머니는 강조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0년을 더 살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8년 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세월은 바람소리를 내며 비를 뿌리며 나뭇가지에 새를 날리고 꽃들을 피우며 흘러내렸다.

 

결혼 후 참으로 30년 만에 다같이 만나는 형제들의 모임이 있었다.

우리는 흰머리가 물결을 이루는 나이가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방안에서도 차 속에서도 계속되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되었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같이 보내었다.

그리고 가슴에 남아있던 그리운 이야기의 매듭도 풀기 시작하였다.

거기에서 나는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가장 사랑한 분이 누구였는지 알게 되였다.

.

내가 그토록 믿었던 사실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형제는 말하였다.

자매도 말하였다.

“나는 할머니를 더 사랑하였어.

나도 어머니보다 할머니를 더 사랑하였어.”

나의 가슴은 터지고 있었다.

내가 믿었던 어머님의 편애는 폭죽이 터지듯 흔적도 없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들에 대한 지독한 어머니의 편애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그들도 편애를 느끼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혼란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하였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 순간에 이 세상을 떠나며 가장 고독했을 한 여자의 모습을 기억하였다.

그토록 자식을 아끼고 사랑한 그 사람

바로 내 어머니이었음을......,.

나는 쓸쓸하였다.

회오리바람이 불고간 뒤, 떨어진 낙엽의 들판에서 바람소리만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녀에 대한 알 수 없었던 감정도 자책 속으로 휘말리기 시작하였다.

 

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가?

내가 믿고 있었던 어머니의 편애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그녀는 가장 현명하고 헌신하였음에도 고독한 관계만을 지니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이 내게 복 바치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목젖까지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순간 울먹이면서 죽음 속에서 깨어났다.

물속에 깊숙이 가라않았다가 부상하는 낙지나 가오리처럼 흐느적거리다가 사흘 만에

전신을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나는 깨어났다.

 

나는 간호원에게 내가 대 수술 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나게 되였는지 묻고 싶었지만 물을 힘이 없었다.

내손을 잡고 있는 창백한 남편의 눈 속에 눈물이 고여 있음을 보았다.

후에 의사나 간호원들은 내가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며 내손을 잡고 기뻐하였다.

 

나는 다시 세상에 돌아왔으며

죽음 속에서 만났던 분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편애에 대한 진실을 설명할 수 없었기에, 바다깊이 가라앉히고 그냥 묻어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 왔을 때, 나는 방안에 누워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 속에서 스스로 편애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지나친 사랑이

편애 속에 구속 되어 살고 있었음을.........


  사진글 최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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