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꽃 (다투라)
최윤자
*
우리는 일요일 아침 꽃을 사려고 일요 시장에 갔다. 밤을 새워 자리를 잡고 장사하려고 몰려온 사람들 중, 건물 바깥쪽에 언제나 배가 불룩한 남자가 꽃나무를 늘어놓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머니날 선물로 목련을 반값에 샀다고 좋아서 들고 왔었고, 나도 울타리 할 상록수를 반값도 채 안주고 샀었다. 오늘은 남편이 정원에 심을 빨간 진달래 종류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코앞에 서 있는 노란 꽃나무를 보고, 남편은 놀란 듯이 서서 내 옆구리를 잡아 다녔다.
피마자 나무 같은 모습으로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내리고 있었다. 긴 손바닥만한 종 같은 꽃이 축축 늘어져 땅을 향해 보기 좋게 달려 있는 것이다. 고향의 반가운 호박꽃이 거꾸로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도 같았다. 영락없이 아리따운 종들이 수없이 달려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하도 이상한 꽃이라, 참 별 꽃도 다 보겠네.” 하고 말하려니까 남편은 벌써 흥정에 나서고 있었다.
주인은 값을 더 받을 작정인지 살 가격을 먼저 말해 보라는 것이다. 난처해진 남편이 나보고 잘 해보라는 듯 한 발짝 물러섰다. 할 수 없이 내가 나서서 15불만 주면 좋겠네요.” 하고 말하니, 주인은 심술이 난 듯 고개를 틀었다. 30불 이하로는 절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 때 중년 여인과, 딸 같은 소녀가 이 꽃을 들여다보고 가격을 물었다. 30불에 가져가시오.” 하니까 여인은 가격은 상관이 없는 듯, 놓을 곳을 소녀와 의논하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이 것도 경쟁이 생겼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 나도 모르겠다, 하고 얼른 30불을 주인 손에 쥐어 주었다. 남편은 나무가 커서 우리 차안에는 들어갈 수 없으니 파장하면 배달해 달라고 10불까지 얹어 주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렇게 해서 40불이나 주고 사 온 꽃나무가 그렇게 말썽을 부릴 줄이야. 이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꽃은 겨울에 밖에 놔두면 안되고, 화분에 다시 심어, 차고 안에라도 따뜻이 모셔 두는 꽃이었다. 일단 거실에서 키우기로 하고 끙끙거리며 2층까지 올려다 놓고, 참 잘 샀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꽃은 너무 커서 거실 한쪽을 다 차지하다시피 했고, 오고 가면서 몸이 부딪혀 종을 치고 다녔다. 저녁때쯤 되어 내 머리가 연탄 가스를 맡은 것처럼 빠개지게 골치가 아픈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요란한 꽃향기가 방안에 가득 차서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가 큰 유리창 앞 베란다로 옮겨 놨다. 조그만 스메쉬라 이름하는 개가 거기에서 살고 있는데, 축 쳐진 꽃을 다치게 할까 봐, 밑에 상까지 받쳐 놓으니, 베란다가 꽃으로 다 훤해 보였다. 참 잘 샀다, 보기 좋다며, 꽃을 보기 위해 커튼도 바짝 걷어 올려붙였다. 불까지 밖에 켜 놓고, 창 앞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신나게 보는 구경거리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차고로 가기 위해 문을 열 때마다 이 꽃향기가 얼마나 지독한 지, 흘러 들어오는 냄새가 골치를 때리는데는 어이가 없었다. 아이고, 나 못 살겠네, 이 놈의 꽃 때매---.” 남편도 골치가 아픈 모양이나 억지로 참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이틀이 지나갔다. 이번엔, 참지 못한 남편이 꽃을 팔아 치우는 편이 낫겠다며 끙끙거리며 가게로 내려갔다. 가게 안에 놓으니 가게가 다 훤하게 꽃으로 덮어 보였다. 손님들이 드나드는 입구에 놓았다. 꽃을 파는 값은 49.99불로 붙이기로 했다.
외부에서 일을 보고 저녁에 들어오니 꽃은 팔리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꽃향기가 가게 전체에 진동하고 있었다. 향기가 좀 나갈까하여 문을 열어 놓았다. 바람결에 지독한 향기가 더 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난 골치 아파서 누워야지. 가게 일도 못 보겠네.” 하며 돌아서니까, 꽃이 그렇게 냄새를 피울게 무엇 이 담!” 남편도 신경질이 나서 한마디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남편은 그 꽃을 팔려고 선전이 대단하였다. 그런데, 손님이 파는 이유를 물으면 이 꽃은 골치가 아프고 알레르기가 있어 할 수없이 판다는 말을 빼지 않고 하는 것이다. 내가 팔 생각이면 제발 그 소리는 하지 말라고 하여도, 결국에는 영락없이 골치 아프다는 소리가 나오고 마는 것이다. 참말로 꽃을 팔겠다는 것인지 안 팔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 아닌가?
저녁에는 가게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니까, 사서 부모님께 선물하라고 설득까지 하였다. 한 아이는 꽃을 좋아하니, 내일 꼭 데려 오겠다고 하고 갔다. 다음 날이 되어 약속대로 같이 왔다. 이 엄마는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며 힐끔힐끔 꽃을 훔쳐보더니 염치없다는 듯 힐긋 웃고 나가 버렸다.
이젠 더 이상 꽃 냄새를 맡을 수도 없으니 밖으로 내놓고, 누가 들고 가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말자고 했다. 꽃값은 내려서29.99불로 붙여졌다. 꽃은 손님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환하게 서서, 오고가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모르는 꽃 이름을 대답하느라, 종업원도 우리도 손님에게 설명해야하는 입씨름까지 했다.
아래로 숙인 별스러운 꽃 다 본다는 둥, 희한하게 예쁘다는 둥, 신기해서 왔다갔다하는 사람, 무슨 꽃이 이래,. 하고 한마디 내뱉고 가는 사람, 그 중에 중년 남자가 유난히 가격표를 들여다보고 꽃을 보고 또 쳐다보고 하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살 사람이 왔구나! 나는 기뻐서 남편에게 떠맡기고 싸게라도 팔겠다고 밖으로 나갔다. 좋은 가격으로 드릴게요. 꽃이 참 예쁘지요. 마땅하게 놓을 자리가 없어서요.” 손님은 한 발 물러서서 하는 말이, 이 꽃이 집에 있습니다. 흰 색 인데, 노란 색도 있나 싶어 들여다보는 것뿐입니다.”
아 그러세요.” 나는 안으로 들어오면서 참 원수 같은 꽃이구나. 이 꽃을 어찌한단 말이냐. 버릴 수도 없고 그냥 주자니 돈이 아깝고! 이 골치 아픈 꽃을!
저녁에 스티븐 이라는 친구가 왔다. 꽃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스티븐은 남편이 안됐는지 일요일 아침에 트럭을 갖고 올 테니 싣고 가서, 돈으로 물리던지 다른 꽃으로 바꾸어 보자고 했다.
정작 일요일이 되자, 실망스럽게도 나타나지도 않았고 하루가 또 지나갔다.
생각 끝에 남편에게 제안을 했다. 저 꽃은 여름 내내 피는 꽃이라니 정원에 묻고 봅시다. 겨울에 파기 싫으면 죽든 말든 상관하지 말아요.” 세 달만 꽃을 본다고 해도 40불을 90일로 나누면 하루에 50센트로 꽃을 감상하고 버리는 것이니 정원에 심자고 했다. 남편은 겨울에 파헤치는 것이 걱정스러운지 좀 더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참말로! 귀찮은 꽃, 귀찮은 꽃이구나.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남편은 할 수 없이 삽을 들고 정원으로 들어갔다. 꽃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자리에 심어졌다. 가게 카운터에서도 잘 보이고, 정원이 훤하게 노란색 꽃나무로 모양새가 달라져 보였다.
진작 그럴 것이지. 남편도 커피 한 잔 들고 오더니 정원이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 찬 것을 보더니 입이 함박꽃이 되었다. 참 좋은 꽃이다. 고상하고 깨끗하고 예쁘다. 정원이 다 달라 보인다...... 안 팔길 잘했다. 꽃은 차를 타고 가면서도 눈에 띄고 우아한 모습으로 바람결에 종들을 흔들고 있었다. 정원의 색채가 빨간 제라니움과 노란색이 어울려 찬란한 꽃밭으로 춤추고있었다. 분위기 있는 정원 !. 길 가던 손님들이 꽃을 보려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름 내내 이 꽃으로, 손님들과 즐거운 대화가 꽃향기처럼 진하게도 퍼져나갔다.
청초한 비가 내리고, 몇 번의 서늘한 바람이 불고 나니 가을이 깊어졌다. 겨울에는 어떻게 살리나? 차고도 추우니, 꽃 가장자리로 판때기 집이라도 지어 줄까? 천이라도 칭칭 돌려 감아 줘야 되나? 남편은 그런 궁리까지 하고 있었다. 하루는 플라스틱 유리를 사다가, 피라미드 모양으로 온실을 지어 꽃을 덮어 주었다.
아침이면 커피를 마시면서 창 밖으로 아직도 피어나는 꽃을 바라본다.
피라미드 유리 상자 속에서 잘 살아 주기를 바라며 겨울을 보낼 것이다.
여자손님이 급하게 가게로 뛰어 들어와 남편을 찾았다. 무슨 일이 있어요?”하고 물었다. ”제 남편이 날마다 귀찮게 해서요. 저 피라밋 상자가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미스터리에게 물어 보지 안는다 구요?”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가 끝날 때도 됐는데.......”
* *
유리상자 속에서 다투라는 겨울을 보내었다. 가엽게도 꽃나무는 추위와 비좁은 구석에서 몸살을 하였다. 서리가 내리자 바들바들 떨다가 얼어붙었는지 가지가 축 처지고 잎사귀도 형편없이 얼어 버렸다. 눈이 내리자 우리는 희망 없이 다투라가 죽어 가는 것을 보았다.
봄이 되었을 때 유리상자를 들어내고 보니 생각대로 나무줄기는 다 죽어 말라버린 노란 막대기가 되어 있었다. 엉기성기 죽은 잎사귀가 썩은 것처럼 비틀어져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공들여 만든 피라미드 상자도 -15도 정도 되는 겨울 날씨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역시 온대식물은 더운 지방에서 살아야 하나보다. 남편은 미련이 남았는지 톱으로 죽은 나무 밑을 몽땅 땅까지 잘라 놓고, 속까지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들여다보면서 겨울에 파서 안으로 들여놓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봄빛이 스물 스물 땅 속으로 기어드는 날이었다. 정원을 돌아보던 남편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다투라가 살았다. 다투라가 살아있다. 이것 좀 봐. 손가락보다 큰 싹이 나온다. 나도 정신 없이 뛰어 나갔다. 죽은 나무 옆으로 땅속을 밀고 여기저기 용을 틀듯 솟아 나오는 힘찬 생명을 보았다. 그것은 가슴을 메우는 감격이었고 승리였다.
겨울 내 내 몸뚱이는 죽었어도, 뿌리는 땅속에서 단단한 새 생명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저한 생명의 이치를 그때야 눈으로 보았다. 살아난 꽃나무를 목마르지 않도록 물을 열심히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다투라는 날씨가 더워지자 밤사이에 쑥쑥 몰라보게 올라 왔다, 손바닥보다 큰 잎사귀를 달고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였다. 잔 잎사귀를 속아내면서 뾰족뾰족 잎 새 모양 솟아 나오는 꽃 봉우리들을 보았다.
귀한 노란 꽃은 화사하게 심금을 울리면서 곧 피어날 것이다.
반가운 그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면서......
드디어, 향기를 진동시키면서 초록 잎 사이사이로 우아한 종들을 달기 시작하였다.
살렸군요! 살아났군요! 손님 중에는 기뻐서 흥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다. 생명의 느낌이 귀하다는 것.
애써 공들여 키운 정은 이 말 못하는 식물에게도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 * * * * *
나이를 먹은 탓일까? 정원에서 잡초를 뽑자면, 가끔 꽃을 열심히 만지고 키우시던 어머님이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대방동 한옥 집에는 그분이 키우시던 여러 가지 꽃들이 계절마다 다투어 피어났다.
분꽃, 장미, 홍 초, 국화, 난초, 다알리아, 채송화 ......
꽃나무를 다듬으며 이민 가는 딸을 못 잊어 하시던 어머니
내가 번 돈을 헤푸게 쓴다고 느꼈음일까?
그분은 진지하셨다.
아니 나에게 꼭 부탁한다고 말씀 하셨다.
돈을 헤프게 쓰지 말고 한 푼 한 푼 저축하여라. 처음에는 저축하고, 생활의 기반이 잡히면 그때 쓰거라. 그렇지 않으면 고생이 길어진다.
엄마는 돈에 색깔이 있다고 믿는다. 쓰는데 따라서 은 색깔도 되고 금 색깔로도 변한단다.
꼭 붙잡고, 될 수 있으면, 금색갈이 되도록 쓰거라.
가난하게 살지 말고, 잘 살거라......
슬픔 너머로 , 철모르는 딸이 잘 살아 주기만을 원하셨던 어머님의 이 말씀이 잊혀지질 않았다. 어머님이 일찍이 떠나셨기에 잊을 수가 없었는지 모른다.
일요시장(flea Market)은 나에겐 즐거운 곳이다.
이것저것 볼 것도 많고, 할머니네 시골에서 열리던 장 속처럼 푸근한 곳이다.
돈, 몇 푼 가지고도, 이것저것 살 수 있는 곳이다.
다행히도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일요일마다 장이 열린다.
어머님도 이곳에 사셨더라 면, 나와 같이 손잡고, 상추도 사고, 양말도 사고 사과도 사고 꽃도 사고 이것 저것 구경하며 즐겁게 다녔을 것이다.
일요시장에서 사온
부드럽고 우아한 꽃
다투라가
올해에
내 가슴속에
화사한 금빛으로
피어난 것을 나는 보았다.
(산꽃피는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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