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장 새야 새야 파랑새야(작은누나)
작은 누나
큰누나가 시집을 간 후에 작은누나가 집안 살림을 도왔다.
누나는 어여쁜 모습이 어머니의 젊은 때와 같았다고 하였다.
원산에 있을 때 누나는 한 청년을 사랑하였다.
청년은 가끔 뒷담에서 고개를 내밀고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나를 불러내었다.
“얘야! 누나 좀 불러줘.” 나는 방에 뛰어 들어가 손짓으로 누나를 놀라게 하였다.
이 청년은 남쪽에서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가는 길에 원산에서 몇 달 머무는 동안,
누나와 눈이 마주치고 첫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누나에게도 그 청년은 첫사랑 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청년은 아버지를 찾아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내가 자네 신분을 어찌 믿는단 말 인가?
더구나 독립운동을 합네 하고 떠도는 자에게 딸을 줄 사람이 있다고 믿는가?”
아버지는 완강히 거절하였다.
아버지는 청년이 돌아 간 후부터 작은 누나를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야단을 쳤다.
“만주로 독립 운동하러 간다면 독립운동이나 할 것이지. 누구를 고생시키겠다는 것이야!
정신상태가 틀렸다. 상대도 하지 말 것이야.”
그러나 청년은 아버지 몰래 또 찾아와서 만주로 도망가자고 한 모양이었다.
작은누나도 같이 간다고 하여 아버지는 화가 나셨고 집안이 온통 난리가 났다.
작은 누나는 떠나지 못 하였고 청년은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났다.
청년이 떠난 후 작은누나는 우수에 잠겼다. 그렇게 행복해 했던 작은누나는 그때부터 밝은 웃음소리가 없어졌다.
누나가 남으로 내려와서 사귄 동에 살 때에 동두천에 있는 부자 집 외아들하고 결혼을 하였다.
부모는 늙었고 외아들이 관리할 농토는 너무 많았다.
하루는 일을 끝내고 일꾼과 매부가 우마차를 타고 언덕을 넘어오고 있었다.
갑자기 언덕 위에서 보이지 않던 자전거가 나타났다.
“우우! 와와!” 우마차가 자전거를 피하다가 낮은 논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작은 매부도 곤두박질하는 우마차에서 떨어져 바퀴에 머리를 다치고 불행하게도 그곳에서 즉사하였다.
결혼 일 년 만에 어여쁜 작은 누나는 아이를 임신을 한 체 남편을 잃었고 과부 가 되었다.
그때 아버지는 슬픔에 차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셨다.
“차라리 잘 알지도 못하는 놈 따라서 만주로 보낼 것을......,
내가 잘못 했다! 잘못 했다! 이 아비가 잘못했다!” 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 뒤로 작은 누나는 딸을 낳았고 누나를 사랑해주시던 시아버지도 돌아가셨다.
누나는 시어머니와 딸과 여자 셋이서 한집에서 살았다.
일 년 후에 불행하게도 시어머니마저 몸져눕고 돌아가시자, 딸을 데리고 무섭다고 우리 집에 와서 살았다.
우리 집과 자기 집으로 왔다 갔다 하며 큰집을 지키려던 작은 누나는 눈에 띠게 건강이 나빠져 갔다.
언젠가 나는 작은 누나와 칠봉 산을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날 누나는 처음으로 웃음소리를 내며 행복하게 웃었다.
소나무가 우거진 계곡의 촉촉한 물소리를 들으며 산 봉오리까지 두릅을 따며 올라갔다.
꼬부라진 소나무가 여기저기 서있고 잡풀이 우거진 산속은 평화스러운 기분이 가득히 떠돌고 있었다.
그 산봉우리에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산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누나는 내 머리를 쓸어 주었다.
“선평아” 누나는 손끝으로 잡풀을 뜯고 있었다.
풀 향기를 코끝에 대고 맡으며 누나는 내 이름을 조용히 다시 불렀다.
“선평아!” 이 누나는 언제나 외롭다. 누나는 누구를 사랑할 자격이 없나봐!
왜 다 나를 두고 떠나가는지 모르겠어. 내가 늙어서 더 외로워지면 어떡하지?
우리 선평이 가 같이 살아줄래?”
누나는 나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선평아! 너는 모르지?
내 가슴속에서는 타지 못한 불씨가 있는 것을!
가끔 가슴 속에서 불이 나는 것도 아마 그 불씨 때문 일거야!”
누나는 처음으로 속마음을 누구에게 얘기 하고 싶었던 것일까?
누나는 아직도 그 청년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누나가 점점 슬퍼지는 것을 보았다.
추수할 가을이 오고 밤나무에도 낙엽이 물들면 사귀동네는 점점 아름다워졌다.
칠봉 산은 소나무로 꽉 차 있었고 그사이로 바람소리가 씽씽 울리고 지나갔다.
누나는 그 칠봉산 밑자락에 있는 밭에 앉아서 콩을 따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누나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신기하게 듣고 있었다.
“새 야 새야 녹두새야 청포 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누나는 하던 노래를 멈추고 눈시울을 닦아내고 있었다.
"누나 그게 무슨 노래야?" 하고 묻자 누나는 조용히 대답하였다.
"녹두장군의 노래란다. 녹두장군은 동학운동을 하시던 전 봉준 선생님이 하도 작아서 녹두라는 별명이 붙었단다.
파랑새는 일본군이고 녹두밭은 전 봉준 선생님이 이끄는 농민이야,
그리고 청포장수는 조선의 민중을 이야기한단다.
전 봉준 선생님이 관군과 일본군에게 잡혀서 처형을 당하시자,
호남지방의 여인들이 애로를 띤 노래를 아이들을 재우며 자장가로 부르게 되었단다.
언제나 외로움으로 숨도 작게 쉬며 살았던 누나
누나는 녹두장군의 노래를 부르면서 누구를 생각하였을까?
독립운동을 하러 떠난 못 잊을 사람은 아니었을까
“누나 걱정하지 마! 내가 친구 해줄게.”
나는 누나가 안쓰러워져 일부러 더 씩씩하게 말했다.
머리가 비상하다며 아버지가 귀여워해주던 어여쁜 작은 누나였다.
누나는 혼자 큰집을 지키며 사는 것이 너무 무섭고 두렵다고 하였지만 누가 같이 자면서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감기를 시름시름 앓더니 손을 쓸 새도 없었다.
딸 하나만을 달랑 이 세상에 남겨 둔 채 하늘나라로 가버리고 말았다.
“작은 누나는 사는 게 너무 두려워서 이 세상을 떠난 것일까?”
“산 위에서 누나가 외롭다고 구원을 청하였을 때 좀 더 도와줄 수 있었을 것인데......,”
나는 너무 어리고 아버지 어머니는 너무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고 계셨다.
꽃 중에도 길고 오래 피는 꽃들이 있다.
짧게 피지만 너무 아름다운 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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