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저서 my book산꽃피는캐나다

어머니(귤과선인장)

by 산꽃피는캐나다 2020. 12. 6.

 

 

몇 번의 초조한 가을비가 창 밖을 뿌리더니 수수한 겨울이 다가왔다.

소리 없이 다가서는 눈발 속에 겨울눈이내리고 상점마다 조그만 귤이 들어있는 상자가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어머님이 무척이나 즐겨 드셨던 새콤하고 달콤한 귤이다. 그 날들의 겨울밤은 재미있었다.

뜨거운 온돌방에 이리저리 비벼 앉으며 온 식구가 이불 속에 다리를 뻗자면 자리다툼이 나고 까르륵 웃음꽃이 터졌다.

어머님은 소리 없이 밤참을 들고 오시고 김치에 얹어먹는 찬밥이라도 꿀맛이었다.

아버님은 퇴근길에 군고구마나 군밤을 사 가지고도 오셨다. 밤에만 깎는 생 고구마도 맛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나간 세월 속에 이 겨울밤들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같은 동네에서 약국을 하는 언니와 형부는 이 저녁 모임에 즐겨 참석하였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귤이나 어느 땐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샌비 과자를 들고 추위도 잊고 밤 마실을 나왔었다.

유난히 입이 짧으셨던 어머니는 귤을 보면 입이 함박꽃이 되셨다.

“아무래도 어머니 시집을 잘못 오셨지요. 요 앞에 점잖은 귤 장사도 많은데......로 시작되면

“차라리 귤 장사한테 시집갔더라면 실컷 귤이나 먹고 이 고생은 안 하는 것을, 이미 늦었으니 너희들이나 잘 보내주마......” 하신다.

이렇게되면 나는 참외장사한테 시집을 가야되고, 오빠는 젓갈장사한테 장가를 들어야한다.

시어머니가 젓갈장사를 해야한다는 등...

어머님은 진담 반 농담 반 이렇게 말씀하신다.

“윤자야 너도 시집가서 친정에 오려거든 귤 한 보따리나 잊지 말고 사오너라......”

이 말에 진심이 섞였기에 지금까지도 조그만 귤, 황금색 귤을 볼 때마다 가슴 어리게 어머님을 생각한다.

한 번쯤 귤을 사다드려야 했었는데, 내가 캐나다로 이민 온지 3년 만에 길을 떠나시고 말았다.

너무나 정신 없이 돌아갔던 이민 초기, 나는 유리창에 기대서서, 창 밖 바다 앞에 서있는 기차만 보아도 향수병에 걸렸었다.

또 기차길 옆 바다와 연결되어 서있는 생선 공장에는 언제나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나르며 마음을 산란하게 하였다.

나는 바다를 넘어가는 날개를 단 흰 갈매기를 부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날이 많았으나 편지 한 장 띄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서랍 속엔 일주일이면 오고 늦어도 열흘이면 날라 드는 어머님의 일기장 같은 편지들이 쌓이고 있었다,

그 편지를 보면서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 없이 나의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다려지도록 편지가 늦어지는 날들이 있었다.

내가 너무 무심했었구나! 긴 편지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하였다.

언니한테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의 위암에 대한 엄청난 소식이었다.

그래서 편지가 점점 늦어지고 있었구나! 눈물은 밤에도 흐르고 낮에도 흘러내렸다.

비행장으로 아이를 안고 나가는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이종사촌이 온다해도 단정히 차려 입고 나가시던 어머님이었다.

딸이 먼데서 오는데도 대청마루에서 발을 굴리시며 애태우고 기다리셔야 했던 것이다.

어머님은 하얀 얼굴 가날픈 몸매로 내 손을 잡고 기뻐하시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외국만 가면 호강하는 줄 알고 보따리 하나에 돈 200불 들려보낸 이 에미를 얼마나 원망했느냐?

에미가 너무 몰라 그랬으니 용서하거라”

“아니에요. 무식한 건 저예요. 입을 때도 없는 파티 복만 해 가지고 간 것은 어떡하고요?

외국에선 다 잘 산다고 사실을 잘못 전했거나, 우리가 잘못 안 거예요”

내 눈 속에도 어머님의 눈 속에도 눈물이 점벙 점벙 하였다.

 

2 년 만에 만나는 어머님과 나는 꿈길을 걷는 듯 하였다.

나는 어머님을 안고 이렇게 속삭였다.

“어머니 좋아하는 귤은 못 사왔어도 잣죽을 드신다기에 여기 꿀을 사왔어요.

캐나다 산 꿀을 드시면 좋아지실 거예요”

어머님은 위암인지 모르고 계셨다.

가엾은 어머니는 혈색을 잃기 시작했는데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리라 생각하고 계셨다.

추운 겨울 속에서도 어머니가 키우는 꽃은 청초한 모습으로 방안에 가득히 피어나고 있었다.

어머님은 빠르게 시드는 새빨간 선인장의 초롱꽃을 뜯어내시면서

“윤자야”

하고 정답게 부르셨다.

“왜요?”

“글쎄 이것 좀 보아라. 이렇게 예쁜 꽃들이 수도 없이 나오는구나.

물 만 먹고도 이렇게 꽃들은 사는데...... 나도 오래 살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어머니는 밤이면 울고 , 낮이면 어머니 방만 들락거리는 내 마음을 알고 있었고, 나도 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내가 캐나다로 돌아 온지 일년도 못 채우시고 어머님은 먼 길을 떠나셨다.

코스모스가 별처럼 피어나는 가을 날 이었다.

어머님의 흙 묘 앞에서 마른 풀꽃을 잡아뜯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순간을 맞이했다.

세상에서 빛이 떠나가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마지막 순간만을 기다려야했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인간은 수명이 영원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인사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마중할 차비를 하고 서 있는 것이다.

어머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던 과일 한 번 사다드리지 못한 채 나는 그 시간들을 놓치고 말았다.

 

아름다운 시간들

그것이 오늘에만 있는 줄 모르고, 잃어버렸다.

 

나는 해마다 겨울이 오면 어머니가 키우시던 새빨간 초롱꽃을 피우는 선인장을 부엌 선반 위에 올려놓고 감상한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새빨간 아름다운 초롱꽃이다.

어머님의 따뜻한 마음이 와 닿는 꽃이다.

 

 

작별하고 떠난 지

겨우 삼 년 만에

이 어쩐 일이시오?

 

그동안 받은 편지

수십 통이 넘었건만

답장 못한 서러움

강물인들 마다할까?

 

화사한 가을빛

나래나래 내려앉은 앞마당에

국화꽃 분꽃 채송화는 어디 가고

 

호젓한 이곳에서

풀꽃이나 키우시니

무심도 하시지요.

 

답답한 고향 하늘 반기거나 말거나

나일론 옥색 치마에

착하신 엄마 손 한번 잡아 보면 원 없겠네.

 

가을빛, 속 타는 빛

그리움만 가득하니

지난 세월 훌훌 털고

후생에 지고 가는 이 소원 한 번 들어주시지요

 

천 리 길 멀다 하여

찾아온 하늘가엔

깃털 터는 흰 구름만 여기저기 흩어지나

이 동산에 남은 햇빛 아직도 따스하니

 

어머님 좋아하시던 밀감 하나

어서 들어 보시지요.

 

1989년10월

 

'저서 my book산꽃피는캐나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꽃  (0) 2020.11.29
산꽃피는캐나다 책속의 사진들  (0) 2015.01.06
산에는  (0) 2010.12.06
두사자상  (0) 2009.04.08
산의 노래  (0) 2009.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