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빅 글레시어
글레시어 국립공원은 자스퍼와. 레벨 스톡크 국립공원 사이에 있다. 위대한 상봉은 항상 만년설 눈으로 뒤덮이어 있다. 깎아지른 산맥에, 소복한 눈을 이고 있는 산! 청신함이 빛나도록 아름답다. 미국이 캐나다 정부와 이곳을 같이 발전시켜 돈을 벌려고 혼신을 다하였으나, 자연 그대로 유지하려는, 캐나다의 생각 깊은 사람들이 거절하여, 자연 그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주로 산행 가들 만이 신나게 오가는 곳이다. 이곳은 한여름에 산행할 수 있는 하이킹 코스가 여럿이 있다. 수려한 산을, 돌아본 산행 가들이, 감탄사를 아끼지 않는 곳이다. 여름방학이 되자 , 하루를 드라이브하여 이곳 캠프장에 와서 여장을 풀었다. 항상 구름과 바람이 넘나들어 기온이 고르지 않은 이곳은, 밤중에 비가 내렸다. 아침이 되니 커튼이 반쪽 열린 것처럼 검은 구름 사이로, 청명한 하늘 이 얼굴을 내민다. 글레시어를 보기 위하여 산길로 향했다. 높은 경사가 있는 산이다. 오르고 오르자, 새 눈으로 분칠 한 산이, 벽이 되어 훤칠하게 나타난다. 숨어서 밤사이 열심히 모양을 낸 산! 돋아난 바위와, 돌 틈 사이로 비집고 나온, 잔 나무들은 아직도 거뭇거뭇하니 분칠 하기가 좀 어려웠나 보다.
반대편으로 돌아보니 그쪽은 해가 더 머물다 가는지 초록 산맥과 산맥이 하늘과 땅을 덮을 듯 겹겹이 둘러서 있다. 초록의 산줄기 사이로 물줄기들이 골짜기마다 긴치마 허리끈을 내리는 것처럼 흘러내린다.
장대 같은 나무숲을 지나 점점 키가 작아지는 숲으로 기어올랐다. 안개 덕분인지 숨결이 거세어진다. 앞으로는, 돌산이 비늘을 사르르 다 쏘다 내어, 바닥에다 깔아 놓고, 대장이나 된 것처럼 위세를 부리고있다. 그 돌산 위로 안개가 몰려오고, 얇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휘 몰아 치는 차가운 바람, 장갑을 끼고 비옷을 꺼내 입었다. 부근에, 우리가 찾아온 글레시어가 있을법한데 보이질 않는다. 앞에 가는 두 사람은 비옷 준비가 안된 터이라 더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비가 반쯤 눈이 되어, 철덕 철덕 옷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손끝이 시리고, 몰아치는 눈바람으로, 한 발씩 더디게 움직인다. 위로부터 떨어진 돌조각을 밟고 거의 오르니, 경사진 흙산이 시들어진 풀들에 엉기어 미끄럽게 앞을 가로막는다.
앞서가던 두 젊은이가 더가질 않고 기다리고 서있다
글레시어가 안나오는데요.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그러나 휘몰아오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탁하게 덮여버린 산은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가..... 참, 아깝네요 , 조금만 더 가보면 어때요? 힘을 내어 같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흙으로 된 길은, 절벽처럼 가파르고 물기를 먹어 미끄럽다.
올라가던 젊은이가 원체 젖고 추워서 견딜 수 없는 굳은 얼굴이 되어 있다. 내려가야겠다면서 이젠 뒤돌아 정신없이 내려가고 있다. 더 올라가자니 눈이 점점 싸이고 있다. 펑펑 내리는 눈이, 지금 무섭게 싸이고 있다. 남편이 우리도 내려가지 않으면 미끄러워 사고를 당할지 모르니 조심해서 내려가자고 한다. 잠 간 사이에 내리는 눈으로 돌이고 흙이고 보이지 않고 눈밭을 이루고 있다. 할 수 없이 눈 비탈을 네발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다치지 않으려고 주저앉으면서..... 아주 천천히, 아니 다섯 발로 내려오는 격이 되었다. 눈이 차츰 비로 변하고, 비도 그치고 하늘엔 쪽빛이 나고 있다.
산은 이런 변덕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라는 듯 생색을 내고 있다. 산에게 속은 것처럼, 속이 상한다.
그러나 산을 오르자면 내가 산이 되고 , 산이 내가 됨을 느낀다. 산이, 가끔 올라오지 말라고 하면, 걸음을 아껴야 한다. 고집을 피우지 말고 산의 말씀을 듣는 것이. 내 나이에는 어울리는 것임을 안다.
그 후에, 캠퍼로 돌아와서 레벨스톡 케년 핫 스프링이라는 한국 분이 하는 온천에 몸을 담 그었다. 추웠던 몸이 녹아내렸고, 속상한 것은 잊어버리고 참으로 행복하였다.
먼 곳을, 하루 종일 달려서 잠까지 자면서 찾아갔으나, 억울하게도 끝을 보지 못했다.
구름과 바람과 하늘을 뒤덮는 눈의 난무만을 보았을 뿐이다.
몇 발자국 너머로 찾던 곳이 있음을 알았어도,
굉장한 글레시어를 바로 코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아쉬움이랄까?
우리를 골탕 먹였던 산에 대한 연민의 정이라고나 할까?
이산이 아직도 매혹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오르는 동안, 땀이 흘러 온몸을 적시고, 상봉에서는 머리 통속을 지나가는 추운 바람소리에 놀랐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다닐까?
내려오면서 생각하여 보았다.
머리통에 찬 바람 지나가고
육신이 물이 되어 흘러내려도
오르고 오르는 건
이 무슨 심사인가?
인생의 기운이
거기 있거늘
자유와 더불어
승리 퍼지며
목숨의 자랑이 있으니
산을 넘어가노라.
이 문장들은 다듬지도 않고 여기에 적어보았다.
아니 다듬고 싶지도 않다.
지금 생각하니 , 이산에 대한 숨은 심술이 있었나 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확인하고 싶어 하는
생의 실체 가운데,
서 있었다는 것이다.....
이젠 며칠 있으면 11월로 접어들 것이다.
빅 글레시어는,
하얀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겨울잠을 자고......
달빛이 상봉에 가득 한, 글레시어의 겨울밤을 그려본다.
어리어리하게 데우는 아침햇살 속의 눈 상봉을 그려본다.
우리의 생명도,
아름답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 준, 빅 글레시어에게
오늘 뜨거운 찬사를 보내고 싶다.
입성하는 겨울 하늘을 보며......
(2001년 8월의 산행을 그리며) 산꽃 피는 캐나다에 올린 수필
오늘은
2021 11월 21일
산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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